2006-03-29 오후 6:56:22 Hit. 5747
시베리아 태생의 농부, 신비주의자.
혈우병(血友病)을 앓고 있던 러시아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병세를 호전시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궁정에서 총애를 받으며 세력을 휘둘렀다.
농부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노비흐는 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글을 몰랐으며 방탕한 생활로 인해 러시아 말로 '방탕한 사람'이란 뜻의 라스푸틴이란 성(姓)을 가지게 되었다. 18세 때에 개종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저기 떠돌다가 마침내는 베르호투레에 있는 수도원으로 가 그곳에서 흘리스트(고행자) 종파를 알게 되었다. 그는 흘리스트 신앙을 왜곡해 인간은 '신성한 냉정함'을 느낄 때 신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으며 이 상태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랫동안의 방탕 뒤에 느끼는 성적 소진(性的消盡)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그는 수도사가 되지 않고 포크로프스코예로 돌아왔으며, 19세 때 프로스코비아 표도로브나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결혼생활도 그를 붙잡아두지는 못했다. 그는 집을 떠나 그리스의 아토스 산, 예루살렘 등지를 떠돌며 농민들의 헌금으로 생활했고, 환자를 고치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으로 영적 지도자(starets)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렇게 떠돌다가 마침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고(1903) 상트페테르부르크 신학교의 장학관인 테오판과 사라토프 주교 헤르모겐의 영접을 받았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정 사교계에는 신비주의와 비술(秘術)이 유행하고 있었으므로 눈이 빛나고 비범한 치료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이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한 방랑자는 사교계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1905년 황실에 소개되었으며, 1908년 황태자의 출혈소동이 또 한차례 벌어지고 있을 때 황궁으로 불려갔다. 그는 소년의 아픔을 달래는 데 성공했는데 최면술을 쓴 것으로 추측된다. 황궁을 떠나면서 황제와 황후에게 그 소년과 왕조의 운명은 자신과 피할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로부터 10여 년에 걸쳐 황제의 집안과 국정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황제의 가족들 앞에서는 계속 겸손하고 신성한 농부의 모습을 보였으나 궁정 밖에서는 다시 예전의 방탕한 행각에 탐닉했다. 그는 자신과 육체적으로 접촉하면 정화(淨化)와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교하며 정부(情婦)들을 얻었고 또 많은 여자들을 유혹했다. 그의 행실에 관한 얘기가 니콜라이의 귀에 들어갔을 때, 황제는 그가 성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비난한 사람들을 러시아의 오지(奧地)로 좌천시키거나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완전히 쫓아냈다.
1911년에 이르자 라스푸틴의 추잡한 행실은 모두에게 알려졌다. 총리 P.A. 스톨리핀은 황제에게 그의 비행(非行)에 관한 보고서를 올렸다. 결국 황제는 그를 추방했으나, 알렉산드라는 몇 달도 안되어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아내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도,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았던 황제는 앞으로 라스푸틴을 비난하는 말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라스푸틴의 권력은 1915년 이후 절정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중 니콜라이 2세가 직접 군대 지휘를 맡아(1915. 9) 전방 부대로 떠나며 황후에게 러시아의 내정을 맡기자 라스푸틴은 그녀의 개인 고문역을 맡았다. 그는 교회 성직자 임명부터 각료 선출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력을 행사했으며(그는 종종 무능한 기회주의자들을 뽑았음), 때로는 군사문제에도 개입해 국가에 해를 입히기도 했다. 어떤 특정 정치집단을 지지하지는 않았으나 전제정치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맞섰다.
그를 죽임으로써 러시아의 재난을 막아보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마침내 1916년 펠릭스 유수포프 공(황제의 조카사위), 블라디미르 미트로파노비치 푸리슈케비치(두마 의원),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황제의 사촌)을 포함한 극보수파 무리가 그를 제거하고 추문에 싸인 군주제를 구하기 위해 암살을 모의했다. 12월 29~30일(구력 12. 16~17) 밤 라스푸틴은 유수포프의 집으로 초대되어 독약이 든 포도주와 차, 케이크를 먹었다. 그가 죽지 않고 멀쩡하자 놀란 유수포프는 총을 쏘았다. 라스푸틴은 쓰러졌다가 일어나 앞마당으로 도망쳤고 이번에는 푸리슈케비치가 다시 그를 쏘았다. 이렇게 해서도 죽지 않자 그들은 라스푸틴을 묶어 네바 강의 얼음 구멍에다 처넣었고 결국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살인사건은 전제정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알렉산드라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지만 몇 주일 뒤 제국의 모든 체제는 혁명에 휩쓸려 쓰러졌다.
....무서운 인간들의 피규어라 그런지 굉장히 정교하고 그로데스크하네요..ㅡㅡ;
동양에도 만만찮은 인간들 많이 있죠...쿨럭..
출처는 엠파스로 되어 있는거 같은데 퍼오기는 엽혹진에서 퍼왔습니다.
라스푸틴은 설명이 없길래 다음 신지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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