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10 오후 8:13:06 Hit. 11683
'재패니메이션'의 절정! <모노노케 히메>
그 감동과 환희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모노노케 히메 (もののけ 姬 Mononoke Hime)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장르: 판타지, 드라마 / 개봉: 1997 / 런닝타임: 135분 / 제작: 일본
"재패니메이션은 무엇?"
우선 이 작품을 들여다 보기전에 알아둘 것이 있다. '재패니메이션'은 Japan과 Animation의 합성어이다. 일본하면,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하면 일본이 떠오르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러한 합성어가 탄생된 결과라 볼 수 있다.
그간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만화를 생각하면 유아, 혹은 아동용 문화 컨텐츠로 사용하기에 바빴다. 그 시초는 애니메이션의 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실제로 해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시장인 '월트 디즈니사'의 만화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각종 캐릭터 상품화부터 시작하여, 유아들을 대상으로 동화적인 내용으로 일관되는 애니메이션이라 볼 수 있는데, 일본은 발상의 전환, 그리고 급속도의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즉, 그간 유아용으로 전락되어지는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이끌어내, '대중 문화'로 성공시키는데 공헌을 한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재패니메이션'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서있었다.
즐사마의 애니속으로 첫번째 시간에서는 <센과 치히로...>와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열거했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자연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원령공주>를 보기로 한다.
애니메이션의 논점이기도한, 이 질문으로 리뷰를 시작한다.
"자연과 문명, 그 사이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노노케 히메>(국내명, '원령공주')는, 일본의 무로마치 중세시대(1336년~1573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의 일본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실상 문명이 발전을 하면 할 수록, 자연은 그 만큼 파괴되고, 피해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중요한 시점을 두고, 감독(미야자키)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혹은, '당신이라면 어디에 서있겠는가'라고 나에게 되묻고 있는 것을 느꼈다.
여러분은 이 작품을 통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될지, 작품을 보고 판단하기로 합니다.
인간들에게, 자연파괴에 대한 경고를 한다.
"씻을 수 없는 재앙, 그것은 자연파괴에 대한 결과물이다."
'아시타카'는 북쪽 변방에서 숨어지내는 에미시 일족의 후예, 마음씨 따뜻하고, 용기있는 청년이다. 그런 그가, 마을을 향하여 돌진하는 거대한 멧돼지를 저지하려던 중, 오른손에 '재앙'을 받게 된다.
그 멧돼지는, '타타리가미(재앙신)'이었으며, 인간에게 받은 상처로, 인간에게 증오와 복수심을 품고 마을을 습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시타카가 마을을 지켜낸 대신에, 자신의 팔에 저주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아시타카는 자신의 재앙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서쪽으로 향하게 된다.
'시시가미'는,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잡아다가 녹용 좀 해먹으면 좋겠구먼..."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아시타카는 여행도중, '지코보'에게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된다. 서쪽 끝의 숲에는 '시시가미(사슴의 신)'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에 내린 재앙을 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장 사슴신의 숲으로 향한다.
모노노케 히메, '산'은, 자연을 선택한 유일의 인간으로 묘사된다.
"산(山)이 아니라, 산(san)이므로, 유의!"
한편, 제철소의 인간들과 대립을 하고 있는 들개들의 딸, '산(모노노케 히메)'은 '모로(들개의 신)'와 함께 인간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는다. 계곡에서 모로의 치료를 해주던 산은 우연찮게, 제철소의 부상자들을 도와주는 아시타카와 첫만남의 가지게 된다.
모로의 몸에서 총알을 빼내기 위해서 자신의 입을 사용했기에, 피로 붉게 물든 산의 입가. 아시타카는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어 보지만, 냉담한 반응뿐. 곧 자취를 감추는 그녀.
자연, 그리고 신들과 인간의 대립의 가운데에 서있는 아시타카, 그리고 자연을 선택한 산과의 아시타카의 복잡한 관계를 그린다.
"왠지 산을 보면, <정글 북>이 생각난다...혹시 남매가 아닐까?"
<원령공주>는 각인물들간의 복잡한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놀라운 점은 자연 vs 인간의 자리에서 중립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는 아시타카와 자연을 선택한 유일의 인간, 산과의 만남에서 엮어내는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먼 파워가 느껴지는 여성단체 ...는 훼이크고, 작품내의 제철소는 여성 상위 체계이다.
'에보시'는 제철소를 담당하는 여성 장부이며, 인간의 표독스럽고, 욕망적인 모습을 그대로 남아내고 있다.
'화승총'을 개발하여, 자연을 지키고 있는 신들을 끌어내리려는 목적으로 자연 신을 사냥하기에 앞장선다. 아시타카는 제철소의 부상자들을 옮겨주던 도중, 제철소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러던중 에보시가 총을 개발하여, 신들을 사냥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오른팔에 재앙을 심어준 그 멧돼지가 실은 이들에게 당한 자연 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연 vs 인간.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서막이
지금 막 열린다.
"난...인간이 싫을 뿐이고! 에보시를 갈아 마시고 싶을 뿐이고!!"
산은 낮의 일을 복수하기 위해, 단신의 몸으로 간밤에 제철소로 쳐들어 가지만, 결국 아시타카의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 나오게 된다.
들개 신들은 인간인 아시타카를 보자, 물어죽이려고 하지만, 산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는 목숨만은 부지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산을 구출할때 총에 맞은 상처 때문에, 아시타카는 결국 쓰러지게 되고, 산은 그를 모든 자연을 관장하는, 시시가미에게 그를 데려다 준다.
이로써, 산은 점점 아시타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혹시 자고 있는 척 하면서, 즐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시시가미는 죽어가는 아시타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아마, 아시타카의 모습에서, 산과 마찬가지로 비록 인간일 뿐이지만, 이 전쟁을 끝낼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체력이 회복이 될때까지 들개신 모로, 그리고 산과 함께 지내는 아시타카.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마지막 전쟁은 이제 막 시작하고 있었다. 시시가미의 숲으로 몰려드는 여러 숲을 관장하는 신들이 등장하고, 그들에게서도 의견 대립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인간들도 신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숲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싸움이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고향을 떠나올때 받은 펜던트를 선물하는 아시타카.
이제, 그녀와의 마음의 벽은 완전히 허물어진 것일까?
"이거...몇 캐럿임? 난 이미테이션은 취급 안하는데."
모로는 이제 곧 전쟁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산에게 아시타카를 데리고 떠나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들개신들과 함께 인간들에게 돌진하는 산. 결국 자기를 길러준 자연을 버리고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발전을 위해 자연파괴를 일삼는 인간 vs 그리고 자연을 지키려는 인간과 자연신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인간, '아시타카'.
"헥헥. 아나...산은 그렇다치고 넌 왜 내 등에 올라탔냐?"
분명히 말해두지만, 아시타카는 처음부터 그 어느 누구의 편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관하는 중립적인 모습은 더더욱 더 아니다.
오히려 양쪽 사이에서 이 싸움을 막고, 전쟁을 끝내고 싶은 쪽이 아시타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해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정말 불가능 한 것일까.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감독은 마치 나에게 묻고 있는 듯 했다.
"만약 당신이 아시타카였다면, 어떠한 결정을 내리겠는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은 불가능 해?"등등...
여러분께서 아시타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작품은 또 다르게 해석될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경고, 메세지, 철학이 담겨있는 재패니메이션의 절정, <원령공주>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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