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5 오전 10:33:19 Hit. 295
전쟁전 상황요약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여러 번의 전투가 있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1949년 1월 18일부터 1950년 6월 24일까지 있었던 전투횟수는 총 874회였다.
그 예로 1949년 6월 7일에는 남한군이 북한군을 가장하여 38선 북쪽으로부터 2킬로미터 떨어진 한 고지를 점령하기도 하였고, 같은해 6월 17일에는 38선이북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태탄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6월 18일에는 은파산을 점령하였었는데, 이 전투 때에는 개인 화기뿐만이 아니라 포까지 동원되었다. 처음에는 이 전투에 남한이 더 적극적이 였으나 이후에는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변하였다.
북측의 주장에 따르면,
남한군이 침입한 횟수는 432회에 이르고, 그 가운데에 71회는 비행기 침입, 42회는 함대습격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충돌은 황해도 옹진 반도에서 강원도의 양양까지 걸쳐져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국부적 충돌이 아닌 말하자면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셈이었다. 그 가운데 옹진 반도, 개성, 의정부, 춘천 그리고 강릉부근에서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 이 지역들은 1950년 6월 25일에 인민군이 주 공격지역으로 삼았던 곳이었다
3년 1개월에 걸친 한국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화했고, 참전한 외국의 병력에까지 극심한 해를 입었으며 이때 사용된 폭탄의 수는 불분명 하지만 1차세계대전에 맞먹는다고도 하고 그렇지 못하다고도 한다.
한국전쟁은 그 밖에도 약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만 명이 넘는 전쟁 고아를 만들었으며 1천만 명이 넘는 이산 가족을 만들었다. 그리고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초래했다.
피 해 내용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 년 7월 27일까지 한국전쟁의 피해는 다음과 같다.
국가 전사자수 부상
한국 --- 227,800 명 --- 717.100 명미국 --- 33,747 명 --- 92,134 명영국 --- 710 명 --- 2,278 명터키 --- 717 명 --- 2,246 명 오스트레일리아 - 291 명 --- 1,240 명 캐나다 --- 309 명 --- 1,055 명프랑스 --- 2888 명 --- 818 명태국 --- 114 명 --- 793 명 네덜란드 --- 111 명 --- 589 명 콜롬비아 --- 140 명 --- 452 명 에티오피아 --- 120 명 --- 536 명 필리핀 --- 92 명 --- 299 명벨기에 --- 97 명 --- 355 명뉴질랜드 --- 34 명 --- 80 명남아프리카 공화국 - 20 명 --- 16 명 룩셈부르크 --- 7 명 --- 21 명 ( http://www.geocities.com 에서 )
< 공산군의 병력 손실 >
전투손실 --- 인민군 --- 520,000 명 중공군 --- 900,000 명 비전투손실 (非戰鬪損失) --- 406,000 명
< 일반주민 피해 >남한 -- 사망자수 --- 230,000 명 (인민재판, 폭격, 등) 실종자수 --- 290,000 명 (拉北 등) 학살자수 --- 120,000 명 ( 인민재판)북한 -- 사망, 실종, 등 총계 -- 2,000,000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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