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8 오후 3:14:18 Hit. 907
세상에는 규칙은 많이 있지만, 법칙은 없다. 이런 경우는 이렇고 저런 경우는 저렇지만, 꼭 그래야 하는 법칙은 없는 것이다. 워낙 많은 경우가 존재하고 그에 따라 현상도 다양하기 마련이라는 것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이 간단한 얘기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이해력이란 아무래도 오랜 연륜이 뒷받침되기 전에는 어렵다. ‘한양 갔다 온 사람보다 안 갔다 온 사람이 더 아는 척한다’는 정황이 겹쳐지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갔다 오지도 않았는데, 들은 얘기, 읽은 얘기로 자신만의 논리 체계를 세우고 고집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양은 실체라기보다는 논리적 조형물일 뿐이지만, 자존심 문제까지 겹치면 한양 안 갔다 온 사람을 설득해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 작은 기업의 경영자들은 흔히 ‘모름지기 기업이란 이래야 하는데, 우리 회사는 왜 이런가’라는 직원들의 주장과 항의, 불만에 부딪친다.직원들의 급여는 일정 수준은 되어야 하고, 일의 진행법이란 이래야 하고, 복지제도는 이래야 하며, 리더십은 이런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자연스럽게 불만이 쌓여가고, ‘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느냐’는 경영자나 간부 사원들의 지적에 대해 고개 빳빳이 세우고 항의한다. ‘먼저 대우하라, 그러면 일할 것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인사 원칙, 인재에 대한 보상 원리는 대기업의 그것과는 다르다. 중소기업은 미래에 대한 꿈과 창출될 가능성이 있는 가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조직이지, 지금 돈이 있는 조직은 아니다. 맷집도 좋지 않다. 매출과 수익 규모가 작고, 조직도 작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잘못된 인재가 들어왔을 때 겪을 수 있는 조직적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얘기한다. ‘당신은 우리의 꿈에 동의하는 인재인가? 우리는 그것을 검증해 볼 것이지만, 인재가 맞는다고 하더라도 보상은 미래에 하겠다.’ 매우 뻔뻔스러운 얘기지만, 기실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소기업이나 벤처가 딛고 있는 땅이다. 스톡옵션이니, 우리사주니 하는 장치와 그를 통한 대규모 수익 실현은 어쩌면 그런 뻔뻔함에 대한 뒤늦은 속죄이거나, 그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한 직원에 대한 감사 표시일 것이다. 중소기업이 인재에 대해 ‘선평가 후보상’ 원칙 위에 서 있다면 대기업은 전혀 반대는 아니지만 대체로 그 건너편에 서 있다. 좋은 인재가 있다면 대기업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자본을 투자한다. 많은 돈을 들여 인재를 ‘구매’하는 것이다.대신 요구한다. 이렇게 지불했으니, 이렇게 일을 하라고. 구성원의 자발성에 근거하는 중소기업과는 달리 대기업은 체계와 지시에 의해 효율성을 구현한다.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이 ‘좋은 복지제도 위에서 대우받으며 매우 안락하게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그래서 상상 속의 한양을 세우는 행위다. 실제의 한양은 이렇다. 대기업 직원들 또는 이미 시장에서 그 브랜드를 인정받고 있는 조직의 직원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1차 보상을 구매자로부터 제값대로 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그 대신 작은 조직이 부과할 수 없는, 또는 대규모 조직이 부과하게 마련인 대규모, 고난이도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작은 조직의 구성원과 큰 조직의 직원은 이렇듯 출발 전제와 성장 환경이 다르고, 강제적 훈련의 강도도 다르다. 유감스러운 것은 학원 가기 싫어하는 건 아이 마음이지만, 그래도 학습 결과는 아이의 실력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현재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의 위치와 행동 방향은 이렇듯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위치와 그 특성, 다른 조직의 장단점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많은 중소 벤처기업 직원들이 계단에서 회사 얘기를 하면서, 다른 기업과 비교하며 시간을 보낸다. 폭주하는 업무에 시달리고, 그에 따라 나름대로 숙련도도 높아져 가는데 조직의 발전 속도와 자신에 대한 대우가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계단에서 시간을 보내도 제재 수위가 낮은 조직의 규율도 한몫한다. 그러나 다만 그뿐이라면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일화를 남겼던 전한 말 공손술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비교해야 하는 것은 다만 근무 조건과 급여만이 아니다. 중소기업 제품도 만든 사람의 철학과 향기가 느껴지면 명품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중소기업 것이라면 일단은 제쳐놓고, 마음이 동해도 대기업 제품보다 더 따지고, 그러고 나서도 제값을 주려고 하지 않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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