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3 오후 3:35:44 Hit. 2413
서양인들에게 불길한 숫자, 13 "왜 하필 13일의 금요일인가?"
▲ 3월 13일 날짜에 발마추어 개봉하는 영화로서, 시리즈상 12번째이며, 가장 최신작이기도한 '13일의 금요일'. 하지만 어째서 '13'이라는 숫자에 하필 '금요일'이었을까? 왜 서양인들에겐 13의 금요일이 불길한 숫자와 요일이었을까.
서양에는 '13'과 '666', 동양에는 '4'가 불길한 숫자?
오늘은 서양에서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13일의 금요일'이다. 국내에도 '13일의 금요일'이란 영화로 유명해서 13이라는 숫자와 금요일이라는 요일이 맞물려 괜시리 기분이 나빠진다. 서양에서는 숫자 13과 6이라는 숫자가 불길하며 국내를 비롯한 동양에는 4가 불길한 숫자로 알려져 있다.
먼저 국내의 경우에는 '죽을 사(死)'와 음이 같기 때문. 간단한 예로 엘리베이터에 4층이 없는 경우가 많고, 'Four'의 앞글자를 따서 F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양의 경우에는 13과 666을 불길한 숫자로 여기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앙에 등장하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했다는 날이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설이 있으며, 또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를 비롯한 제자들의 모든 인수가 13, 그리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13번째 손님이었다는 설도 있다. 666의 경우에는 인류의 멸망을 게시한 '요한계시록'에서 비롯되었는데, 인류를 멸망시키는 악마의 자식을 짐승이라 말하고, 그 짐승의 숫자가 666마리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서양의 경우를 보면 심한 경우에는 건물에 13층이 아예 없거나, 비행기 좌석에도 13번이 없다고 한다. 이정도면 단순히 미신을 넘어서 무언가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길한 숫자, 그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13번째 손님이었던 유다와 예수를 비롯한 13인의 인원. 우리가 생각하는 불길한 징조는 모두 우리의 그릇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일상은 우연의 연속이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서 항상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 "도로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왜 내가 가는 차선만 길이 막힐까.", "왜 항상 세차만 하면 비가 올까.", "라디오를 들으면 꼭 좋아하는 곡의 가장 마지막 부분부터 들을까.", "왜 내가 시계를 보면 항상 4시 44분일까."처럼.
한가지 예로 어떤 사람이 냉동창고 안에 갇히게 되었는데, "나는 다음 날이면 추위에 벌벌떨면서, 생선처럼 얼어 죽어있을거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그는 그날밤 추위와 한기를 느끼며 죽었고, 다음날 시체로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냉동 창고안에는 사람이 얼어죽는 추위는 커녕, 온도를 내리는 전원 조차 꺼져있었다라는 일화가 전해져오고 있다. 그만큼 사람의 신념과 믿음이라는 것은 상당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사소한 작은 일에서조차 꼭 재수없는 었던 일과 숫자등을 연관 시키려 하지 않는가. 더욱 이 숫자 같은 경우 알게 모르게 '우연'이 가장 많이 겹치는 것중의 하나다. 껴맞추다보면 "어라?"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 그만큼 우리의 일상은 우연의 연속이다.
생각을 바꾸면 생활이 바뀐다. 차라리 그런 우연이 존재한다면 구태어 비관적으로 '재수없는 날'을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반대로 '운수대통의 날'을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행운의 7과 같이, 자신만의 행운의 숫자들을 만드는 것처럼.
[파이널판타지아 닷컴]
작성자: 즐사마(dkanfhmm@naver.com)
불량게시글신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