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3 오전 4:26:39 Hit. 1209
아... 댓글 기능은 없군요 여기;
아무튼, Miz님이 이야기하고 싶으신 것은 "형벌로서의 사형은 적당한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비단 이번 숭례문 방화 사건 뿐이 아니라...
사회가 근대를 거쳐 현대로 오면서 형벌은 점차 인신 구속의 형태를 띠어가게 됩니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의 형벌은 "몸"에 직접 형벌을 가하는 형태였지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옥에 가두는 경우도 물론 있었습니다만, 그와 동시의 태형을 비롯한 몸에 가하는 형벌이 있었고, 서양의 경우도 채찍으로 치거나 하는 등의 몸에 가하는 형벌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사형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여서, 십자가형(이건 정확한 명칭이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화형, 기름에 튀겨 죽이는 형(이건 중국), 찢어 죽이는 형, 목을 잘라 걸어놓는 효시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몸에 형벌을 가하는 형태로 발달해왔습니다.
또한 근대 이전의, 사형을 포함한 형벌의 특징은, 그것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있었던 것이 가장 좋은 예죠. 중세 마녀사냥때도 화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고, 우리나라도 찢어죽이는 형벌이나 효시 등이 모두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 근대 계몽주의 철학의 대두와 함께 형벌은 조금 다른 개념이 됩니다. 이전까지의 형벌은 일벌백계식의 전시 목적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면, 이때부터는 범죄자를 구속하고 감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이때부터 권력에 의한 감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만 이 얘기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얘기이므로 넘어가고요.
원래 얘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사형은 현대사회에서 형벌로서 기능하고 있을까요?
현대사회의 형벌을 공권력에 의한 개인의 인신 또는 자유의 구속이라고(과태료, 벌점 등을 전부 합하여) 정의한다면, 사형은 더이상 형벌로서 의미가 있을까요?
현대사회에서 형벌이 그 정당성을 가지려면, 그 근거가 명확해야 합니다. 민주사회에서 그 근거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구성원 다수의 동의를 거친 헌법일 것입니다.(우리나라의 헌법이 그러한 동의를 거쳤느냐는 논외로 하죠. 사실 여전히 헌법이 민주적 절차를 거쳤느냐 아니냐는 87년 민주헌법도 자유롭지는 못하므로) 그런데 여기서, 그 헌법이란 어떠한 거대 명제 또는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헌법 1조 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항목처럼 말이죠.
그러한 거대명제중에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라는 것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기에 살인죄는 엄중히 다스려지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국가는 사람을 죽여도 될까요? 이 문제는 아주 오래된 문제이죠. 국가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분명 공권력에 의한 개인의 인신 또는 자유의 구속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개인의 목숨을 앗고 개인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국가는 과연 가능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명제에 국민 다수가 동의를 하고 그것이 헌법에 명시적으로 표기되어 있다면, 그 명제는 설령 국가라 할 지라도 어겨서는 안됩니다. 현대사회의 형벌은 규율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인데, 사형은 이제 그 근거가 희박하기에 효과도 없습니다.
또한 사형은 정의를 바로세우는 데도 걸림돌이 됩니다. 국가가 상황에 따라 정의에 어긋나는(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정의를 지키라, 헌법을 지키라는 말을 할 근거가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사형이 있느냐, 아니냐는 기실 규율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아니냐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규율을 만들어내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것은, 사형을 통해서가 아닌 공명정대한 법 집행과 민주적인 사회 제도와 헌법의 정착, 그리고 올바른 정의 구현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사형은 마지막 전시적 형벌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심어주려는 두려움을, 스스로 거부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에게 사형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사형이 집행되는 것을 본다고 해서, 또는 사형이 상징적으로든 실제적으로든 제도상 남아있다고 해서 우리가 "아이구 무시라"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형은 더이상 남아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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