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의 이유
홍일표
의자가 의자에서 빠져나온다
눈 밝은 햇빛이 다 보았다고 밀쳐두었던
할인마트 앞 공터를 뒹굴던 그림자
두꺼운 햇빛을 뒤집어보면
그 안에 숨겨진 겨울은 아직도 낡은 외투를 입고 있다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를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들고 온 밤
냇물은 다 식은 가슴으로 돌을 더듬으며
불을 꺼내려고 안간힘이다
그래서 한때 돌을 불에 구워 먹던 적이 있고
상당수의 돌들은 아직도 분홍빛 불을 기억한다
햇볕을 핥아먹고 있던 그림자의 혀가 길어지고
나는 돌 속에 갇힌 휘파람
아직 오지 않은 서쪽 여자는 차갑게 식은 햇살 조각을 들어
동쪽 허공을 죽죽 내리긋는 중이다
어깨가 기운 의자가 다시 의자 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