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6 오후 12:13:30 Hit. 12556
┌────────────┐ │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 │ └────────────┘
< 15. 바퀴벌레가 된 자무자 이야기 >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자무자라고 하는 젊은 장사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음울한 아침, 자무자가 장사를 나갈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자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대답은 없고 자물쇠가 잠긴 방 안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와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부엌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후, 이번에는 여동생이 깨우러 갔습니다. 여동생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커다란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나요. 게다가 짐승 같은 소리도......" 병이 났는지도 모른다고 걱정이 된 어머니는 자무자의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여동생과 함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언제나 늦잠을 자는 아버지도 떠드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위엄을 잃지않을 정도로 호되게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자물쇠도 그대로 잠겨 있었습니다. "열쇠쟁이를 불러와!" 이른 아침이라서 열쇠쟁이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솜씨를 발휘해서 재빠르게 자물쇠를 열었습니다. 간신히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에 커다란 바퀴벌레가 배를 위로 한 채 수많은 다리를 징그럽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열쇠쟁이는 허세를 부리며 물었지만 얼굴은 짓밟힌 모자 같았습니다. 바퀴벌레는 안간힘을 다해 몸을 바둥거리고 있었는데 운좋게 마루에 굴러 떨어져 그 탄력으로 하늘을 향해 있던 배가 제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호소하며 가족들에게 기어왔습니다. 소리를 내며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소리는 여동생이 말한 '짐승의 소리'였습니다. 열쇠쟁이는 다가오는 벌레를 보자 기겁을 하고 뒷걸음질을 치더니. 괴성을 지르며 계단을 뛰어내려 갔습니다. 아버지는 남자답게 빗자루를 휘둘러 바퀴벌레를 방안으로 들여보내면서 어머니에게 빨리 내려가 입막음을 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열쇠쟁이는 발을 삐어 계단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바퀴벌레를 방안으로 가두고 가족들은 대책을 의논했습니다. 하지만 바퀴벌레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이야기부터 좀처럼 진전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불쌍한 자무자가 바퀴벌레에게 잡아 먹힌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바퀴벌레는 몽뚱이가 아주 얇아서 덩치가 큰 자무자가 뱃속에 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여동생은 나쁜 꿈을 꾼 자무자가 바퀴벌레로 변신한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아버지는 악마나 요괴의 장난이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세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열쇠쟁이 다음으로 불러야 할 사람이 의사인지 기도사인지 목사님인지를 논의했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섣불리 사람을 불러 집안의 부끄러움을 온 마을에 퍼뜨리는 것보다는 먹을 것을 주어가며 바퀴벌레가 하는 짓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의 커다란 걱정거리는 자무자가 바퀴벌레가 된 것 보다는 그동안 생계를 꾸려운 자무자가 장사를 못나가 돈을 벌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집안에는 저축해 놓은 돈도 없었습니다. 여동생은 아직 어린 소녀고, 어머니는 지나치게 뚱뚱하고, 아버지는 병이 든데다 게으름이 몸에 베어 있었습니다. 생계 문제를 의논하고 있는데 방안에서 자무자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신도 중요한 가족회의에 참가해서 무슨 의견이나 변명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발음이 불확실해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애가타서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퀴벌레 주제에 쓸데없이 입을 열지마!" 며칠이 지나자 자무자가 바퀴벌레가 되었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평소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구실을 만들어 자무자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유없이 불어닥친 불행을 위로받고 싶어 푸념을 늘어 놓으면서 문을 열어 자무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자무자는 바퀴벌레처럼 여러개의 다리를 움직여 벽 위를 돌아다닌다든지 천장에 찰싹 붙어 있는 모습을 보여줘 구경 온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로금이라든지 먹이값이라면서 얼마간의 돈을 놓고 갔습니다. 마침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람들의 부추김을 받은데다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허가를 받아 마을 광장에 망을 친 우리를 만들어 놓고 자무자를 구경거리로 내놓았습니다. 몇달간 이 구경거리는 꽤 번창해서 가족들은 이전보다도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무자의 식사는 구경꾼이 던져주는 음식 부스러기로 충분했습니다. 바퀴벌레가 된 뒤에는 식성이 바뀌었는지 신선한 과일이나 우유는 먹지 않고 돼지나 바퀴벌레가 좋아하는 것을 자무자도 즐겨 먹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을 지나가던 유명한 예언가가 자무자를 보고 나쁜 마법에 걸려 있지만, 마법은 추악한 곤충인 자무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나타날 때 풀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온 마을에 화제거리가 되었는데, 그런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은 예언가의 말을 진짜로 믿고 자무자의 여자를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어머니를 나무랐습니다. 마법이 풀리면 추악한 두꺼비가 왕자님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자무자는 마법이 풀려도 왕자님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러는 사이에 흥행은 점점 인기를 잃었습니다. 아이들은 막대기로 자무자의 배를 쿡쿡 찌르기도 하고, 더듬이를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어린 소녀들이 던전 사과하나가 자무자의 부드러운 겨드랑이에 박힌 채로 겹어서 악취를 풍겼습니다. 자무자는 눈에 띄에 쇠약해졌고,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했습니다. 인기를 만회할 희망은 영영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되자 마을 광장에 바퀴벌레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불평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자무자는 다시 원래있던 자기의 방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다시 돈벌이를 잃어버려 이만저만 난처한 게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집아네서 사람보다 큰 동물을 키워서는 안된다는 경고장이 관청에서 날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이웃 사람들의 묘안에 따라 관청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자무자를 마을에서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렇게 커다란 곤충을 수용할 만한 시설이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또 자무자는 가족의 한사람이며, 불행한 난치병에 걸려 저런 모습이 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시장에게 치료비의 원조를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바퀴벌레가 자무자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며 되려 반문을 했습니다. 이리저리 쫓아다니다 지쳐버린 자무자의 가족은 성가신 바퀴벌레를 '처분'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호적에서 자무자를 말소시키는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러자 호적계의 관리가 그럼 자무자는 어떻게 되었냐며 집요하게 추궁했습니다. 가족이 자무자에게 무슨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세사람은 바퀴벌레와 한가족이 된 것을 탄식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어느 부자집에서 수위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여동생은 출퇴근하는 가정부 자리를 얻었고, 어머니는 집에서 삯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 자무자는 원래 있던 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자무자는 가족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서 여동생이 가끔씩 남은 밥을 주거나 청소 하러 올 뿐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자무자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잘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어, 여동생은 자무자가 하는 말을 거의 다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일을 다녀와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자무자가 바퀴벌레 주제에 가족의 한사람처럼 말을 하는게 귀찮아서 거의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초여름, 오랜만에 아버지와 여동생이 휴가를 얻어 온 가족이 마을에서 떨어진 전망 좋은 언덕으로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마차를 빌려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세사람은 저 바퀴벌레만 없어지면 정말로 행복하겠다고 말하면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언덕으로 갔습니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진짜로 자무자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차에서 내려 언덕에 올라가자 커다란 새같은 것이 머리 위로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올려다 보니 자무자가 아니겠습니까? 자무자가 갈색 날개를 퍼덕이며 날고 있었습니다. "나만 두고 오다니 너무해요!" 자무자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흥분한 목소리로 자기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조금 전에 알게 되었다고 떠들어댔습니다. 세사람은 그렇다면 이대로 어딘가로 멀리 날아가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상에 도착해 도시락을 펼치자 자무자도 내려와 음식에 코를 처박았습니다. 그 때 마침 깡통따개를 두고 온 것을 알았습니다. "얘야, 너는 하늘을 날을 수 있으니까 얼른 집에 가서 가져오너라." 어머니가 부탁했습니다. 자무자는 모처럼의 단란함에서 소외되는 것이 싫어 궁시렁궁시렁 투덜댔습니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마, 어서 갔다오너라." 아버지가 약속하자 자무자를 할 수 없이 날아갔습니다. 세사람은 왜 이런 일이 생긴거냐고 평소처럼 푸념을 하며 자무자를 기다렸습니다. 자무자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먼저 먹자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도 찬성을 하고 음식을 먹으려고 막 손을 내미는 순간, 옆에 있는 나무에서 자무자가 날아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어요. 안가지러 가길 잘했지." 그 말을 듣고 화가 난 아버지가 깡통을 힘껏 자무자에게 던졌습니다. 깡통이 자무자의 머리에 박혀 검은 피같은 즙이 흘러나왔습니다. 자무자는 몸을 비틀며 숨을 허덕이더니, 다리에 경련을 일으킨 후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세사람은 구덩이를 파고 자무자의 시체를 묻었습니다. 그 때 손과 옷에 묻은 즙은 말할 수 없이 냄새가 심해서 집에 돌아와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후 세사람은 말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차라리 자무자같이 바퀴벌레가 되는게 낫겠다고 한탄하며 죽을 때까지 비참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 교훈 - 귀찮은 사람을 돌보는 것은 가족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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