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8 오후 5:27:11 Hit. 1530
세인트는 역사학자였으나 보통의 역사학자와는 그 성향이 매우 달랐다.
보통 역사학자라하면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나 신적 존재를 옹호하는게 일반적이었지만 오히려 세인트는 그러한 과거의 행적들을 사실주의적 사상에 입각하여 진실을 파헤치려는 탐구자였다.
특히나 그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많은 이들이 전혀 근거도 없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실제 존재하는 신으로 믿으며 갖가지 악행과 그릇된 믿음을 스스로 합리화하였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저 신의 뜻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그리스 신화에 대한 부분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다는게 더욱 큰 문제였다.
그건 세인트의 동료 역사학자들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신전이라든지 신물이라든지하는 뜬구름 잡는 식의 설화적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것은 오히려 진실을 파헤쳐야할 역사학자,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힘을 주는 단어였지만, 그 믿음이 너무 강해지면 편협한 사고에 빠질 수 있다는 것에 세인트는 걱정이 되었다.
더구나 역사학자로서 말도 안되는 그리스 신화따위에 열을 내며 잘못된 행위와 생각들을 갖고 있는 무지한 사람들을 내버려둘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포럼을 열어 그리스 신화에 대한 허구성에 대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왔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욕설뿐이었다.
신이라는 절대존재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이런 포럼정도의 작은 시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철옹성과도 같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이런 작은 시도로 인해 그들이 갖는 믿음은 더욱 커지는 것만 같았다.
세인트는 포럼의 한계를 느끼고는 조금 더 확실하고도 충격적인 증거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들의 믿음과 연결되는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자료였다.
그때부터는 위험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파르테논 신전에 대해 의심을 갖고 조사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신에 대한 모독이었기에 세인트가 받은 협박과 고통은 이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너무나도 거대해진 그릇된 신앙심이 끼칠 영향을 그는 알고 있었기에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에 관한 정보가 있는 곳이면 그는 어디든지 갔고, 때로는 땅을 파고 때로는 물속에도 들어가는 고생을 하며 닥치는 대로 문헌과 정보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크로폴리스의 어느 상점에서 아주 낡고도 퀘퀘한 냄새가 나는 문서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세인트는 왠지 눈길이 가는 그 문서를 들어 먼지를 털어낸 후 내용을 훑어보았는데, 읽을수록 그의 표정은 점차 놀라움이 가득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당장 상점의 주인에게 돈을 챙겨주고는 문서를 들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필체와 종이의 상태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보던 세인트는 이내 탄성을 내질렀다.
이 문서는 바로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가인 페이디아스의 일기였던 것이다.
그저 페이디아스의 일기라고 해도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세인트를 흥분하게 만든 것은 일기의 내용이었다.
페이디아스는 파르테논의 신전을 만든 이유가 전쟁으로 피폐해진 당시의 백성들을 단합하기 위한 속임수라고 써놓았다.
대대로 왕들은 전쟁과 가뭄등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을 신에 빗대어 백성들에게 주입시켰고, 그 결과 만들어진 건물 중 하나가 파르테논 신전이라는 것이었다.
페이디아스는 파르테논 신전을 만든 후 텅빈 신전에서 이 일기를 쓴 모양이었는데, 필체에서 그가 느낀 허무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믿게 하기 위해 속임수 비슷하게 만든 신전이었지만 정작 신전은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기에 텅비어 있는 그저 돌멩이들을 쌓아놓은 쓸모없는 건축물을 만든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듯 했다.
세인트는 이 일기의 발견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여러명의 권위있는 동료 역사학자들에게 일기를 보여주었고, 그들 또한 이 일기가 페이디아스의 일기임을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만 세인트는 일기속의 내용을 보여주지 않으며 몇가지 필체와 문서 자체만 페이디아스의 일기가 맞는지를 확인한 것이었기에 동료 역사학자들은 매우 궁금해하며 애가 탈 뿐이었다.
그리고 몇일 후, 세인트는 드디어 이 일기를 공개하기로 마음먹고는 커다란 발표회를 열었다.
많은 역사학자들과 사람들, 그리고 각 계의 인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세인트는 그동안 모아온 자료들과 더불어 증거자료로 페이디아스의 일기를 꺼내놓았다.
페이디아스의 일기가 발견되었다는 말에 기대를 갖고 발표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세인트의 의견에 저마다 수군거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반응에 세인트는 그들도 이제는 어느정도 깨달았을 것이라 여기며 흐뭇한 미소를이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람들은 저마다 세인트를 욕을 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지금 신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신을 모욕하고 있는 것인가?”
“그 일기는 당신이 만든 가짜 아냐? 그딴 일기하나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다니.”
“파르테논 신전은 전쟁의 여신인 아테나님과 우리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신성한 곳이거늘. 저 놈을 당장 감옥에 처넣어야한다!!!”
이런 반응에 세인트는 적잖게 당황하고 있었다.
몇몇사람들은 이딴 일기는 불태워버리자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더니 이내 역사학자중 가장 권위있는 역사학장이 세인트에게 다가오더니 그가 들고 있는 페이디아스의 일기장을 뺏어버렸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내용의 일기라면 전혀 쓸모가 없겠군요.”
말을 마친 역사학자는 바로 페이디아스의 일기를 찢어버렸다.
세인트는 중요한 역사학적 자료를 이렇게 무참히 찢어버리는 행동에 분노가 일었지만, 그보단 역사학장의 이런 행동에 환호하고 있는 사람들의 광기에 대한 놀라움이 더 컸다.
“이 귀중한...역사학적 자료를...”
“귀중한?”
페이디아스의 일기를 찢은 역사학장이 세인트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그의 표정엔 비릿한 미소가 걸려져있었다.
“지금껏 쌓아놓은 신에 대한 믿음을 깨버리려고 하는 이딴 하찮은 일기따윈 필요가 없다네. 괜히 헛수고하지 말게나.”
그렇게 세인트의 발표회는 허무하게도 끝이 나고 말았다.
더불어 세인트가 가진 역사학자명칭도 박탈당했고, 인지도와 명성 또한 바닥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세인트는 점차 집안에만 처박혀 생활하며 폐인이 되어갔다.
사실을 밝히려고 모아놓았던 자신의 자료는 모두 불태워버렸고, 그나마 남은 몇 가지의 자료도 모두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그렇게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어느날, 세인트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깊은 고뇌에 빠졌다.
‘이런 명백한 역사학적 자료에도 불구하고 헛된 신앙심으로 부정해버리는 어리석은 자들. 언젠가는 그들 스스로가 그런 신앙심으로 인해 고통받을 날이 올거야. 그래, 좋아. 내가 직접 그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주겠어.’
결심을 한 세인트는 창고에 있던 자료를 다시 꺼내와서는 무언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괴로워하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다시 열중하는 세인트의 모습에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은 매우 기뻐했다.
갑작스럽게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 다소 의아스러웠지만, 그런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열심히 작업중인 세인트에게 하루는 그의 어린 아들이 다가와 어리광을 부렸다.
“아빠, 뭐하세요?”
“아아, 우리 사랑스런 아들 왔구나. 근데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냐고? 음...글쎄, 뭐랄까. 아, 그래. 아빠는 지금 멋진 이야기를 만드는 중이란다.”
“멋진 이야기요?”
“그렇단다. 신의 이야기가 좋을까, 아니면 으흠. 그래. 신의 아들이 적당하겠구나.”
세인트의 아들은 영문을 모른체 세인트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모습에 세인트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주인공이 신의 아들이에요?”
“그러고보니 우리 가족의 이름을 넣는게 좋을 듯 하구나. 맞아.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구나.”
“우리 가족의 이름이요?”
“그래, jesus. 바로 네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란다.”
“네? 제가요?”
“그래.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을 jesus로 하려고 하는데, 마음에 드니?”
“우와. 제 이름인 주인공의 이름이라고요? 그럼 아빠와 엄마도 나오는 건가요?”
“그럼 물론이지. 정말로 재미있고도 좋은 이야기가 되겠구나.”
요셉 세인트.
그의 아들은 마냥 기뻐하고 있었고 그 또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왠지 이질적이었다.
그만큼 그가 짓고 있는 미소는 냉혹하리만큼 비릿한 느낌이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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