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8 오후 5:32:36 Hit. 1822
난 19세 수능 준비생 백남운이다.
매일 엿같은 시험공부 때문에 집에 눌러 앉아있어야 한다.
“남운아, 밥 먹자.”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됐나?
엄마의 정겨운 소리에 깨어서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았다.
저녁 7시.
딱 배고플 시간이다.
내 배도 밥 달라고 난리굿을 치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공부하던 책을 보앗다.
팔랑거리던 종이는 침에 눌려 붙어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난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어떻게 잤는지 상상이 갔기 때문이다.
“남운아, 밥 안먹어?”
참, 엄마가 불렀는데...
난 말 없이 서둘러 부엌으로 갔다.
식탁에는 동생과 엄마가 깨작깨작 밥을 먹고 있다.
나도 앉아서 그들에게 동참했다.
“힘드니?”
엄마가 안쓰러운듯 물었다.
“어.”
난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엄마가 독서실 보내줄까?”
난 정신이 번뜩 들었다.
독서실 간다고 뻥치고 친구들과 놀 생각에 순간 들떠버렸다.
“응, 내일부터 다닐게.”
난 흔쾌히 대답했다.
엄마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긋 웃으며 내 머릴 쓰다듬었다.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난 너무 힘들었고 선택은 이것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내일 토요일이니까 내일부터 가자.”
“알겠어.”
다음날 아침, 난 일어나자마자 내 머릿속에 계획을 짜두었다.
학원을 다녀오면 오후 5시.
삼각김밥으로 밥 먹고 독서실 가서 10시까지 공부하고 12시까지 친구들과 논다.
이것이 내 계획이었다.
그리고 난 그게 실현될 줄 알았다.
“어. 어 나 오늘 삼각김밥 먹을게.”
“아니, 괜찮아. 끊어.”
여기까진 완벽했다.
솔직히 아예 놀기는 좀 미안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공부 조금이나마 더 하기 위해 독서실로 발을 내딛었다.
사무실에서 신청하기 위해 조그마한 창문을 두드렸다.
코딱지만한 창문이 열리자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큰눈에 짧은 단발 머리.
얇은 입술. 숱한 사람을 봤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네?”
여성이 멍하니 서있던 날 일깨워주었다.
“아, 네. 오늘 하루 5000원 맞죠?”
난 허겁지겁 주머니에서 오천원을 꺼내었다.
그런 내 모습이 웃겼는지 여성은 피식 웃었다.
“35번이요.”
“혹시...”
“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도 모르게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주워담을 순 없었다.
“김유빈입니다.”
싱긋 웃을때마다 나타나는 보조개가 아름다웠다.
난 그대로 엉거주춤 하면서 옆으로 슬그머니 빠졌다.
작은 창문이 ‘쾅’ 하고 닫히자 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굳게 닫힌 창문.
내가 혀를 차면서 돌아서려고 할때, 창문에 붙어있는 종이를 보았다.
“용무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010-4719-5682.”
난 미소를 머금으면서 숫자 하나하나를 핸드폰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단축번호 1번으로 저장해놓았다.
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그제서야 독서실을 둘러보았다.
사무실 앞에는 가로로 복도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화장실과 휴게실, 왼쪽에는 여러 방들이 보였다.
그리고 난 내가 있어야 할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딱 한명, 수염이 덥수룩한 인생의 낙오자처럼 보이는 남성 한명이 구석에 박혀 있는 것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두블록을 지나서 중앙 바로 왼쪽, 35번 자리에 앉았다.
짐을 다 풀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연필을 잡고 책을 펼쳤다.
“으음....”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떳을땐 지렇이 글씨와 어제 보았던 침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의자를 돌려보니 불빛이라곤 내 자리 하나 밖이었다.
손에 채여진 손목 시계를 바라봤다.
‘9시 54분.’
몇시부터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잔건 확실하다.
핸드폰에는 문자가 몇통 와있었다.
모두 스팸메일이었다.
하긴, 나 같은걸 부를 사람은 친구 밖에 없지.
한숨을 계속 내쉬면서 짐을 다 챙겼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었다.
메인 화면에 있는 곰돌이가 눈에 띄였다.
어두운 분위기라서 그런지 소름 끼치는 기분도 없잖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칼을 쥐어서 날 끌여당길 것 같았다.
그때, 핸드폰을 닫으려고 하자 화면에서 곰돌이가 사라지면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어두워진 화면에는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 내 뒷자리에 있었다.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내 입을 스스로 틀어막았다.
분명히 주위를 봤을땐 아무도 없었는데....
난 조금씩 고개를 돌렸다.
긴 생머리인걸 바선 여자인걸 짐작할 수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이마에 팔을 겹쳐놓은걸 보아선 자는건지 죽은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만약 잠이 들었다면 불이 켜져 있거나 책상에는 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불빛이나 책은 커녕 어두운 암흑과 먼지 하나 없는 책상 뿐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난 이 노랫소리에 놀라서 다시 앞을 보았다.
거친 심호흡이 계속 났다.
그 사람은 계속, 기계처럼 노래를 불렀다.
“아기가 혼자 남아...집을 보다가....”
난 귀를 틀어막았다.
동요 하나가 날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식은 땀은 흐르고 손은 떨렸다.
“엄마가 들려주는....자장 노래에....”
난 눈이 돌아갔고 고개를 숙였다.
“아기는 스르르르.....잠이 듭니다....”
노래가 끝나자 방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오히려 노래가 끝나자 더욱 긴장감은 팽팽해졌다.
책상 밑에 놓여있는 내 발을 무언가가 확 잡아 당길 것 같았다.
손목의 시계 초침이 계속 지나갔다.
째깍...째깍....째깍.....째깍....
째깍 거리는 소리는 1년에 한번 가는지 굉장히 느리게 갔다.
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지금 여기서 가장 가까운 사람.
사무실의 김유빈이라는 여성이었다.
단축번호 1번을 누르자 컬러링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섬그늘에....”
난 노래를 듣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세상이 떠나가라 목청껏 소리쳤다.
그러자 누군가가 내 어개를 잡았다.
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도 날 잡은 것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들어올때 보았던 그 남자.
“왜, 귀신이라도 봤어?”
남자의 한마디가 내 정곡을 찔렀다.
“저기! 저기 아저씨 뒤에....”
하지만 의자와 책상에는 날 놀리기라도 하듯 정적만 흘렀다.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다. 김민건.”
점잖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하지만 확실한건 이 사람은 뭔가 믿음직 하단 거다.
“아...예....”
“젠장....기분이 안좋다 했어...”
민건이라는 이 형은 혼잣말을 곱씹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명함이었다.
- 퇴마사 김민건010 5022 1736
“퇴마사?”
난 인상을 찡그리며 사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거 진짜에요?”
형을 부르면서 고개를 돌려봤을 땐, 문을 통해 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가 웃으면서 무슨 내가 금의환양이라도 한 것 마냥 오버를 했다.
“어땠니? 좋았어?”
“그냥 그래.”
난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렸다.
일진이 안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침대에 곯아떨어졌다.
“아함.....”
기지개를 펴면서 일어났다.
아침 아홉시다.
평소 시간에 비해 일찍 일어나기는 했지만 온 몸이 찌뿌둥하다.
엄마는 안방에서 아빠와 곤히 자고 있다.
난 코웃음을 치면서 독서실 다녀 온다는 쪽지를 남겨 놓았다.
어제 들고갔던 가방을 그대로 어깨에 짊어지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내게 덮친다.
아파트 비상구 창문 너머로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온다.
감옥에서 보는 한 줄기 빛이랄까.
난 다시 죄인처럼 독서실로 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핸드폰을 열어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뚜르르르르.....뚜르르르르.....”
하지만 대답 없이 먹통만 울렸다.
그렇게 한명 한명에게 전화를 다하자 한숨밖에 흐르지 않았다.
단 한명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내 앞에 있는 독서실이 빌딩처럼 커다랗게 보였다.
복도는 조용했고 인터넷 강의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두드렸다.
-똑똑
창문이 열리자 난 크게 실망했다.
벗겨진 머리에 형광등이 반짝이는 대머리 아저씨가 눈을 크게 뜨며 있었다.
“왜 그래, 학생?”
“예, 오늘 하루요.”
“그래....35번이다.”
어제와 똑같이 35번이다.
방안에 들어가자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이번엔 맘 잡고 공부해보자고 난 다짐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어제의 후유증인가?
오늘은 절대 졸지 않았다.
조금씩 사람도 들어와서 그런지 배시계가 꼬르륵 거리기 전까지는 공부에만 집중했다.
주머니에는 만원이 들어가있었다.
난 일단 휴게실로 가서 커피나 빼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휴게실 가운데에는 자판기가 있었다.
동전을 넣으려는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난 어제의 일이 생각나서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꽉 감았을 때, 내 어깨에 손이 닿았다.
“여기서 뭐해?”
유빈 누나였다.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요, 누나!”
“그래? 뭐하고 있었어?”
“아니...그냥 커피나 먹을려고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다시 환한 보조개가 들어났다.
비록 단발이었지만 머리도 찰랑거렸다.
“점심은 먹었니?”
“아뇨, 막 먹을려던 참이었어요.”
“그래?”
누나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손가락으로 구석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컵라면 하나 있네. 저거 먹어.”
과연 구석에 있는 박스 안에는 쓰레기들 사이에 봉지가 뜯기지 않은 라면이 있었다.
“누나는요?”
“아니. 난 라면 못 먹어.”
살다 살다 라면 못 먹는다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난 라면을 집어들어서 스프를 부은후 뜨거운 물을 넣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아주 잠시였지만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무슨 말이든 해야했다.
“누나....?”
“응?”
“혹시 여기서 죽은 사람 있어요?”
다시 조용해졌다.
나무 사이에 팽팽한 끈으로 연결 되어있는 줄을 타는 느낌이랄까.
누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있긴 있어.”
“어디서 죽었어요?”
“니 자리 바로 뒤편. 32번 자리에서.”
“어떻게 죽었는데요?”
“자세한건 몰라. 바로 뒷자리에 있던 남자 학생이 여학생의 입을 막아서 질식사 시켰대.”
“왜 죽였대요?”
“그것까진 모르지. 경찰에서 바로 잡아갔으니까. 근데 더 신기한게 뭔줄 알아?”
“뭔데요?”
“너무 편안하게 죽었다는 거야. 마치 살기 싫었는데 잘 되었단 듯 엎드리고 자는채로 죽었어.”
그 말을 듣자 발부터 머리 끝까지 소름이 끼쳤다.
어제 자리에 있었던 그 여자.
그 여자도 분명 엎드리고 있었다.
“근데 죽은 사람는 왜?”
“아..아니에요. 그냥 기분이 이상해서요. 근데 그 남학생은 어떻게 됐대요?”
“증거 불충분으로 2년만 살다가 나왔대. 진짜 그런 새끼는 죽여서 없애버려야 해.”
갑자기 누나의 눈이 살벌해졌다.
맹수의 눈빛처럼 반짝이며 빛났다.
“그런 녀석은 살 가치가 없어. 내 눈 앞에 나타나면 나도 똑같이 죽일 수도 있어.”
말이 끝나자 그제서야 누난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머리를 긁었다.
“하하...미안. 조금 흥분했나봐. 라면 불겠다. 어서 먹어.”
“누난 진짜 안 먹어요?”
“난 집에 가서 먹고 올게.”
누난 휴게실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난 조금 불어있는 라면을 집어들고 먹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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