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억....잘먹었다.”
비록 불었어도 역시 라면인지라 맛은 있었다.
저 멀리 빈 라면통과 젓가락을 던져 놓고 휴게실을 나왔다.
손목시계를 보니 어느새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막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에, 독서실 입구 문너머에 남자 한명이 있었다.
계단에 앉아서 담배를 먹고 있던 남자.
어제 내가 봤던 자칭 퇴마사라는 사람과 같았다.
난 조심스레 다가갔다.
입구 문이 열리자 남자는 내 인기척을 눈치챘는지 한번 슬쩍 쳐다봤다.
“왜?”
“그냥 아저씨랑 얘기나 할까 싶어서요.”
“......형이라고 불러.”
“아, 네.”
비록 퉁명스러웠지만 남자가 봐도 꽤 멋있었다.
“그래, 뭐가 궁금한데?”
형이 담배를 뱉고 꾹 밟으며 말했다.
“그냥...이것저것. 귀신에 관해서 말해주세요.”
“후......”
형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귀신도 종류가 있어. 너도 알지?”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곳에 머물러 있는 귀신을 지박령이라고 하는데 원한이 있어서 딴 곳에 못가는 귀신이 대부분이야.”
“그럼 여기 있는 귀신도...?”
“아니, 여기 있는 귀신은 달라. 지박령은 아무나 잡아서 족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곳 귀신은 아닌 것 같아.”
“그럼 어쩌는데요?”
“자신이 죽이고 싶은 놈만 죽이고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고 싶을 때만 보이는 놈이야.”
그렇게 나쁜 귀신은 아니란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걸까?
“근데 어떻게 그걸 아세요?”
“느낄 수 있어. 신내림을 어릴 때 받았거든.”
어디선가 들었다.
신내림을 받은 사람은 귀신을 보거나 만질 수 있다고.
“그럼....이 사건도 연관이 있을까요?”
“무슨 사건?”
난 아까 누나에게서 들은 죽은 여자 얘기를 자세히 해줬다.
형은 안듣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연관이 있어요?”
“니가 그 누나라는 여자가 말한게 사실이라면 그 놈이 틀림 없어.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아. 뭘 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뭔지는 잘 모르겠다.”
“만나면 어쩌실건데요?”
“어쩌긴?”
형은 앉은채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주로 돈이나 넣을 법한 그런 봉투를 꺼냈는데 그 속에서는 부적 하나가 나왔다.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
그저 평범한 부적으로 보였다.
“이걸로 돌려보내야지.”
난 이런 종이 쪼가리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물었다.
“이거...진짜 효과 있어요?”
“새끼가.....확실하다니까.”
형은 혀를 차대면서 다시 주머니에 부적을 넣었다.
“그럼 난 니 방 옆방에 들어간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명함 있지?”
“네..”
그리고 형은 싱긋 웃으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난 승리의 기지개를 폈다.
아까 형과 얘기하고 난 이후로 한번도 졸거나 정신을 팔지 않고 지금까지 공부했다.
몇시인지는 잘 구분이 안갔다.
독서실 안에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손목시계는 어느새 9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짐을 챙기고 집으로 간 것 같았다.
난 목이라도 적셔야겠다는 생각으로 휴게실로 갔다.
누나도 퇴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물로 달래고 있었다.
입술에 묻은 물을 닦아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싸려던 참이었다.
문안에서 나지막하지만 어떤 소리가 들렸다.
사람 소리였다.
난 귀를 문 가까이 대보았다.
희미했지만 분명히 남자의 목소리였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보았다.
내 자리에는 불이 그대로 켜져 있어서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뻗어있는 복도에는 민건 형이 있었다.
분명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자리 뒤편의 32번 자리.
난 한발한발 형 쪽으로 다가갔다.
“형...?”
하지만 형은 응답하지 않았다.
난 형의 바로 옆에 가서 32번 자리를 바라보았다.
단발 머리의 여자.
어제 보았던 그 여자가 똑같은 자리에 있었다.
형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추워......”
난 겁이 지레 났다.
떨리면서 무언가를 애타게 바라고 있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 들어서 심장, 머리를 울렸다.
형은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들었다.
“왜 여기서 남아 계십니까?”
“.....외..로.........워”
여자의 말을 듣자마자 한가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쳤다.
섬집 아기란 노래.
이 동요도 외로운 사람의 노래다.
“그만 돌아가세요.”
형이 부적을 붙이려는 순간,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난 놀라서 자빠질뻔 했다.
김유빈 이라는 누나.
그 누나가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춥고 외로운 어린 양의 모습으로.
앞의 모든 일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얘기를 나누고 웃고 떠들고 하던 시간들.
그리고 형이 한말을 떠올렸다.
-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고 싶을 때만 보이는 놈이야.
난 멍하니 여자를 바라봤다.
그때, 여자가 날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으로.
“너.....같이 가자.......외로워......”
손가락은 분명 날 가리키고 있었다.
형은 그 말을 무시한채 부적을 이마에 붙이려 했다.
“조용히 니 자리로 돌아가.”
이마에 부적이 닿으려 하는 순간, 난 형의 팔을 내렸다.
그리고 누나를 안았다.
느낄 수 있었다.
의도되지 않은 차가운 몸과 마음을.
“힘들었죠? 따뜻한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인데......”
난 이 누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엄마가 섬그늘에.....굴 따러 가면.......”
노래를 부르면 부를 수록 내 손에서 점점 빠져나갔다.
“........잠이 듭니다........”
노래가 끝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난 허공에 손질을 하고 있었다.
백사장의 한줌의 모래처럼 사라져 버렸다.
허무한 마음으로 형을 한번 쳐다봤다.
하지만 형은 전과 같이 문을 나가고 있었다.
미소를 남기면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