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2 오후 1:28:13 Hit. 1853
"다음 일정은 ?"
"네, 두시 반에 상담 예약있구요. 대기중인 환자분들 순번은 47번까지 있습니다."
"그래, 나가봐."
민혁이 사무적인 어조로 대답하자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풍기는 얼굴을 가진 간호사 하나가 민혁의 사무실을 나간다.
문이 닫힌것을 확인한 민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른 토스트를 억지로 입안에 쑤셔 넣었다.
성형외과 전문의, 좀 더 구체적이고 속된 표현을 더한다면 '강남에 잘나가는 성형외과 전문의'
이것이 강민혁이라는 남자의 현재 타이틀이었다. 그는 환자가 아닌 고객을 다루는 미용성형외과 전문의인 것이다.
민혁의 병원은 이미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을 정도의 큰 병원이였다. 유명한 대학 병원의 성형 외과부장인 아버지를 둔 덕택이었다.
그러한 아버지의 입김이 닿아 한 유명 아이돌 스타가 민혁의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고, 작은 보형물 하나를 집어 넣는 작은 수술이 민혁을 명의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런 민혁의 하루는 생각 보다 단조롭게 흘러 갔다. 대부분의 일정이 견적만 뽑아보는 흥미 위주의 '찌르기'식 상담이였고 실제로 수술일정이 잡히는 것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민혁은 이러한 환경에 너무 오래 노출된 나머지 조금이라도 강도가 커지는 수술은 아예 손도 댈수 없게 되었다. 민혁은 너무 오랫동안 수술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도 쌍커풀 수술 1건, 상담 14건의 의미없는 하루를 마치고 민혁은 핏기하나 서리지 않은 새하얀 가운을 정리하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이미 퇴근한 상태, 잡다한 서류 뭉치를 정리하던 민혁은 낯선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들자 본적 없던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어느새 인기척도 없이 들어와 민혁의 앞에 앉아 있었다.
"상담 좀 받아도 될까요 ?"
너무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한 민혁은 그 그로테스크한 풍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정상임을 깨닫고 애써 평정을 되찾으며 일그러진 미간을 펴곤 말했다.
"안타깝게도 지금 간호사 분들이 퇴.."
"간호사는 필요없어요. 당신이 의사잖아요."
창백한 몰골의 여자는 민혁의 말을 막아서며 두눈을 치켜올렸다.
자세히 본 그녀의 얼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였다. 움푹들어간 두 눈은 탁한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비정상적으로 꺾여 있는 코는 제 기능을 할 수는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볼 정도의 기이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사과껍데기가 말라 붙어있는 듯한 모양을 한 저것이 입술이라는 것을 알아챘을때 민혁은 토악질을 하려던 것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그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화스러운 반지를 낀 각다귀같은 손을 가방에 넣더니 이윽고 사진 한장을 꺼내들었다. 사진 속엔 모 그룹의 한 아이돌 스타가 깜찍한 표정과 함께 노래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습니까 ?"
"아...물론 입니다. 완전히 똑같히 되진 않더라도 지금보단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민혁은 항상 말하던 애매한 답변을 그대로 읊조렸다. 그러자 그녀는 사과 껍질 같은 입술을 씰룩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연이어 그 입술에서 당치도 않은 발언이 이어졌다.
"똑같이 만들어 주십시요."
민혁은 리모콘을 조작하여 자신의 애마에 시동을 걸었다. 푹신한 시트에 걸터 앉은 민혁은 이마를 짚으며 괴로운 표정에 휩싸였다.
.....
"물론 어느정도 진보는 되겠지만, 똑같이 되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나이도 있으시고,"
"실례네요. 이 여자하고는 한살차이 밖에 나질 않아요."
"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체형부터가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
"돈은 상관 없어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어디를 얼마나 고치든 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렇다면 자신이 없으신 모양이군요".....
민혁은 잠깐 자존심이 상한 탓에 터무니 없는 요구를 받아들인 자신에게 무척이나 화가 나버렸다.
'다음 주 지금, 지금과 같은 시간에 오겠습니다.'
그녀의 섬뜩한 목소리가 달아오른 민혁의 가슴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
민혁은 급하게 일정을 진행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오기전에 모든 업무를 끝내고 퇴근해야만 했다. 더디게 움직이는 시계바늘이 야속할 뿐이였다.
이제는 뒤늦게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해도 늦어 버린 것이다.
민혁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을때, 그는 비로소 대기실을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순간 그의 시야에 있어서는 안될 불순물이 탐색 되었다.
그녀는 예상을 깨고 약속시간 1시간 전 부터 도착한 상태였던 것이다.
이윽고 모든 간호사가 퇴근하고, 그녀는 과장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자신이 있는 방으로 느릿느릿 걸어왔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은 이미 자신의 메스질로 피칠갑을 한 모습. 의사에게 있어서 망설이지 말아야 할 것이 메스질인데 민혁은 사시나무 떨리듯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메스질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가 도출된 것이다.
과장된 앞트임, 게다가 사이즈가 큰 보형물을 삽입한 나머지 원형보다 더욱 뒤틀려져 있는 코, 퉁퉁부은 입술은 안쪽 절개만 한뒤 손쓸 방도가 없어 다시 봉합해 둔 것이 전부였다.
수술은 대실패, 아니 수술이라고 부를수도 없는 것이였다. 이 사실이 외부로 흘러나간다면 자신이 쌓아올린 부와 명예가 실추될것이 불 앞의 나방만큼 훤한 것이였다.
민혁은 흐려지는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곤 붕대를 집어들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예, 어디 계시죠 ?"
"여기 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진통제를 투여했지만 곧 있으면 약간의 고통이 수반될 것입니다."
"거울.. 거울을..."
"워낙 큰수술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눈까지 붕대를 가려야만 했습니다. 출혈이 많았기 때문에 일주일은 입원하고 있어야 할겁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잠시나마 선생님의 능력을 의심했었어요."
"그럼 편히 쉬십시요"
녹슨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그녀는 얼굴 전체가 따끔거려 견딜 수 없는 통증에 휩싸였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만을 품고 왔던 그녀에게 이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녀는 장작 12시간을 앓은 후에야 공복감을 호소할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얼굴 전체에 덮인 붕대때문에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
일순간 위화감, 병실에선 들을 수 없는 딱딱한 메아리가 벽을 타고 울렸다. 이상하리만큼 거친 실내 공기, 매케한 매연속에서나 마실 수 있는 공기..
그녀는 불안감을 느끼곤 얼굴의 붕대에 손을 갖다 대었다. 불타는 듯한 통증에 발끝까지 저려왔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의 붕대를 뜯어내었다. 시뻘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힘겹게 뜬 두 눈에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른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감옥과도 같은 창살사이로 미비하게 들어오는 빛, 얼핏 얼핏 보이는 사람들의 발..
그녀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거울에 다가갔다. 김이 서린 거울을 닦아낸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굴 전체에 크게 그어진 흉터, 그 흉터를 중심으로 자잘하게 이어진 칼자국엔 새하얀 응고제만 가득 발라져 있었다.
하얀 세라믹의 보형물은 코를 뚫고나와 처참한 몰골이었고, 절개와 봉합을 반복한 듯한 왼쪽 뺨엔 염증으로 인한 수많은 종기들과 실리콘이 부실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자신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종이한장을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주워든 그 종이는 자신이 가져온 아이돌 스타의 사진이었다.
다른점이 있다면 이 사진의 얼굴부분엔 날카로운 것으로 수차례 난도질 당한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있었다.
'이젠 똑같지?'
더이상 눈커풀이 없는 그녀의 눈에서 안구가 끈적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펌]
불량게시글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