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1 오후 6:00:55 Hit. 1600
지금 나는 이 상황을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다.
버스 안에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에 처해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창 밖을 쳐다보니 서리가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리가 끼지 않았어도
겨울 밤 2시경에 산길도로에 무어가 있으랴마는...
민경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흘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제기랄!
민경은 재빨리 눈을 아래로 내렸다.
...여자는 민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순간 눈을 마주쳤다. 알아차렸을까...
그녀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조그맣게 진저리를 쳤다.
민경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그녀는 소설가였다. 소재를 구하러 떠난 무전여행은 눈오는 전라도 산길에서 중단되었다.
걸어도 걸어도 민가는 없었고, 그 때 때마침 지나가는 관광버스는 그녀에게 구세주로 보였다.
손을 열렬히 흔들자 버스는 천천히 멈추어 섰고, 민경은 쭈뼛거리며 차 안으로 계단을 올라 들어갔다.
"저, 저기.. 제가 너무 추워서요..."
"....."
기사는 쌀쌀맞은 눈초리로 민경을 흘끔 보았다. 민경은 약간 화가 났다. 저런 태도를 보일거라면
그냥 갈 것이지 왜 차를 멈춰서 자신을 태워주었을까.
"저... 가까운 마을에만 도착하면 내릴게요"
기사는 일말의 반응도 없이 문을 닫고 차를 출발시켰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들어오던 찬바람이 뚝 끊겼다. 살았다 하며
그녀는 넉넉한 기내 좌석들을 향해 걸어갔다.
차 안은 따뜻했다. 모두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커다란 관광버스인데, 탑승객은 열명을 조금 넘어
보였다. 모종의 여행을 끊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가보다, 하고 민경은 생각했다.
민경은 승객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 조심 발소리를 죽여 맨 끝 좌석에 털썩 앉았다.
높은 뒷 좌석에 앉으니 버스의 모든 전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묵묵히 운전하는 쌀쌀맞은 기사의 뒤통수를 시작으로, 뿔뿔히 흩어져 앉아있는 각 승객들의
앞뒤로 움찔 움찔 대는 뒤통수까지.
천천히 승객을 한 명 한 명 훏는 와중에, 민경의 한 여자의 뒤통수에 머물렀다.
긴 생머리였는데, 린스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부스스했다. 윤기없이 뻗뻗해보이고
억세보였다. ... 말하자면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칼 같지 않달까.
여자는 민경의 좌석에서 두 칸 앞에 앉아있었다.
민경은 그 때 놀라운 것을 보고 말았다.
갑자기 여자의 뒤통수가 가로로 쭉 벌어졌다. 벌어진 머리 속에는 마치 상어의 이빨같은
날카로운 이들이 가득했다. 이빨에는 피같은 것이 엉겨있었다.
마치 하품을 하는 것처럼 쭉 벌어졌던 뒤통수는 마치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덥썩 닫혔다.
민경은 얼어붙었다.
벌어진 뒤통수 안에서 사람의 잘려진 엄지 손가락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버스가 과속 방지턱을 뛰어넘었다.
쿵!
소리와 함께 모든 승객들이 흠칫 놀라며 잠에서 깨었다. 잠시 두리번 두리번 거리던 사람들은
창문 밖이 여전히 어두운 것을 확인하고, 버스 앞쪽의 전자시계를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의자에 묻었다.
- 새벽 2:45
그리고 그 때에 그 뒤통수 여자도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도로 잠을 청할 때 쯤에야 느릿느릿하게 허리를
의자에서 떼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개를 홱 돌려 민경을 바라보았다.
민경은 자신도 모르게 내부에서부터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평범한 사람의 얼굴인 것 같았지만, 뭔가 결여되어 있었다.
쾡한 눈, 다크 서클, 부르튼 입술... 전형적인 거지꼴의 여자였다. 하지만 민경을 두렵게 한 것은..
초점이 전혀 맞지 않는 듯 한 저 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민경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 시선이었다.
'당장 내려야겠어!'
민경은 그렇게 마음먹었다. 뒤통수 여자는 아주 천천히, 민경을 돌아보았던 속도보다 거진 세배는 걸릴
시간을 투자해 고개를 천천히 앞으로 돌렸다. 민경은 이제 그 여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소름끼쳤다.
뭐란 말인가, 저여자는?
귀신? 저런 구체적 형상을 지닌 귀신이라니. 그것보다 뒤통수에 입이 달려있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라니, 번짓수가 틀리다. 저건 분명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먹이사슬에서 인간의 위에 서있는,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어떤 이생물체(李生物體)임에 틀림없었다.
저 뒤통수로 사람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으리라.
민경은 떨리는 발을 간신히 떼어 운전석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여자의 옆을 지날때 여자가 고개를 부러질것처럼 홱 돌려 민경을 바라보았다.
민경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뻔한 것을 추스르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버스기사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
"저, 저기요!"
민경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나지막히 소리쳤다. 버스기사는 그제야 무심한 눈초리로 민경을 흘끗보았다.
"내, 내려주세요"
"... 왜 그러는감? 눈 오는 길판에서 돈도 안받구 태워줬더니"
"아뇨, 괜찮아요. 생각해보니 밖에서 걷는게 더 낮겠어요. 그러니까.."
"허이구, 이 날씨에 밖에 걸었담 뒤져뿌리지. 한시간만 더 가면 마을잉께 그냥 있드라고"
민경은 백미러로 흘끗 버스 뒤를 보았다.
여자는 아직도 민경을 그 기묘한 눈으로, 풀린듯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을 아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자 한시도 이 곳에 남아 있기 싫었다.
"그냥 내려달라니까요"
"아니, 이유가 뭔감 뜬금없이"
"그냥 내려줘요, 아저씨. 제발요.. 네?"
"이상한 아가씨네... 뭘 울기까지 하고 그러혀. 누가 보면 내가 납치라도 하는 줄 알겄네
알겠어!"
아저씨는 투덜 투덜 거리면서 버스를 정지 시켰다.
버스는 눈길을 조금 더 미끄러져 가다가 엔진 소리와 함께 정차했다.
치익-! 소리와 함께 버스문이 덜커덕 열렸다.
민경은 허겁지겁 문밖으로 뛰어내렸다.
뒤를 보자 버스는 벌써 문이 닫히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는 시골 눈길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민경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버스는 이제 오십여미터 가량 먼저 떠나가고 있었다. 저 따뜻한 불빛이 아쉽지만,
그 괴물에게 잡아먹힐 걱정을 하면서 버스안에 있는 것보단 백 배 나으니까.
안전하다고 생각되자 민경은 서서히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그건 뭐였을까? 무슨 생명체일까?
혹시나 외계인은 아닐까?
나중에 이런 애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도 좋을까 의심이 들었다. 모두 정신병자로 취급하겠지.
결국 이 애기는 나 혼자만 아는 비밀로 무덤까지 가져가야 옳을 것이다.
그 때였다.
백여미터를 가던 버스가 갑자기 정차했다. 그리고 양 옆으로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악 소리와 으악 소리.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다발적으로 조그맣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정확히 10여초 뒤에 멈췄다.
치익- 하고 버스 문 열리는 소리가 민경이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려왔다.
딸칵, 딸칵.. 계단 내려오는 소리.
열린 문으로 여자가 내렸다. 버스 내의 전조등 불빛이 여자를 희미하게 비추었다.
피범벅이 된 버스 내부가 차창 안으로 보인다.
여자는 천천히 민경이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아니, 반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녀는 뒤통수를 앞세우고 민경이 있는 쪽을 향해 전력질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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