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그는 자꾸만 날 쫓아온다
그것도 내가 커갈수록 점차 더 빠르게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릴적엔 그 누군가가 누군지도 몰랐고
전혀 의식되지도 않았으며 궁금하지도 않았다.
설령 쫓아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느리게 쫓아왔으면 쫓아왔지 오히려 더 빨리 쫓아와주길 내심 바랬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3살 때까지 그 따위 것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중학교를 입학하던 14살, 나는 그를 처음으로 의식했고
그때부터 서서히 그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내 어릴적 내심 바랬던 마음속 얘기를 듣기라도 한 것인지
점차 거리를 좁혀왔고, 내 몸 여기저기에 검은실이 올라오고,
얼굴에 빨갛고 작은 구슬이 생겨나는 속도가 가속화 될수록
그것도 나를 쫓는데에 더욱 더 가속도가 붙었다.
가면 갈수록 말이다.
그가 가장 두려울 때는 그가 나를 압박하고 내 소중한 기억들, 내 소중한 것들을 모두 앗아갈 때였다.
영원했으면.. 하는 순간도, 영원했으면.. 하는 시절도 모두 그가 다 뺏아가버렸다.
난 그에게 '제발 이제는 날 놓아줘' 라고 몇번이고 애원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내 말을 들은체 만체 그는 그 순간마저 날 쫓는데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는 내가 자는 순간도 말이다. 마치 날 쳐다보는 것처럼.
하지만 자는 순간에는 그가 날 쳐다보던, 날 쫓던 상관 않는다.
그 순간 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자유롭다.그 순간 만큼은 내가 그를 의식하지 못하고
잠시라도 그의 압박에서 벗어나니까
또한, 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거나 간단한 여가시간을 즐길 때도
그에 대한 압박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뜨거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다시 내 머릿속에 유리파편처럼 박혀 떠날 줄 몰랐다.
내가 피하려고 하면 할 수록 그것은 더욱 나를 옥죄는 듯 했고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나는 그를 피할 수 없었다.
그가 매우 의식되던 사건은 고3 시절
더이상 빼도 박도 할수 없었다.
수능이 50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 주구장창 놀기만했던 나에게 50일은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런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날 놓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날 조였다. 내게 자신이 부족하단걸 아니까.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그만 쫓아주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애원을 했는데, 그 애원을 들은체 만체하고 날 쫓던놈이 과연 내가 절박하다고 해서 날 놓아줄까?
그래서 난 결심했다. 그와의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난 50일간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 50일간 그와의 싸움에서 결국 난 '서울권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의 성적표'라는 결과물을 받았고
대학 4년을 마친후, 우연히 길가에서 곤경에 처한 여성을 도와주고 휴대폰 번호를 받았다.
나중에 연락 하시라고 말이다. 실은 나도 내심 그녀가 마음에 들었기에 다음날 바로 연락을 해서 함께 밥을 먹고 우리는 서서히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을때만은 더 이상 그에게 얽매이지않고 그를 의식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내게 여행과도 같았다.
우리는 결국 서로가 더 사랑하게 되어 끝내 결혼했고 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후에 직장에 취직을 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생활했다.
하지만 취직 후, 난 다시 그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행복도 잠시, 미칠 듯한 업무량과 나를 옥죄는 그놈의 압박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상하게도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그는 더욱 미칠듯이 나를 압박했다.
40대 중년이 된 지금 이젠 그 자식을 보기만 해도 토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약한소리따윈 하지 않는다.
'날 놓아줘' 이딴 허튼 소릴 해봤자 손해를 보는것은 언제나 나다.
그가 날 쫓는것을 멈춘다는 것은, 즉 모든 사람들을 쫓는것을 멈춘다는 것이니까. 그는 매우 가혹한 것 같지만 모두에게나 공평하다.
난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를 잊기위해 술과 담배를 입에서 떼지않다시피 했다.
그 덕에 폐암 초기라는 병을 진단 받았지만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병을 고칠수 있었다.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듯 나의 딸도 한몫을 했다.
그 후 나는 그가 아무리 날 괴롭혀도 술과 담배를 다시는 입에 대지 않았다.
나는 그가 소중하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은것도 하나의 큰 소망이었다.
아니, 이것은 어쩌면 나만의 소망이 아니었으리라, 아마 모든 사람들의 이상이자 소망일 것이다.
그는 공평하기도 했지만, 매우 냉정하기도 해서 절대 뒤를 돌아봐주지 않았고
기회라는 것도 단 한 번 뿐이었다. 그에게 두번이란 사치였다.
그렇게 그와의 토나는 싸움에서 내 중년시절도 넘어갔다.
환갑이 된 지금의 나는 더이상 그가 두렵지도 않고 의식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날 쫓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그가 더이상 날 쫓지 않는것도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날 쫓고 있고, 내 중년시절, 내 청춘시절에 날 쫓던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공평히 쫓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부족해할 때는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더욱 더 강하게 조이고 절박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이젠 그가 날 쫓던 안쫓던 모두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젠 모든게 평화롭고 환갑이 지난 나는 더 이상 바랄게 없으니까.
오히려 이제는 그가 나를 더 오래 오래 쫓아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렇게 그도 이젠 내 기억에서 잊혀 지는듯 했다.
...
하지만 지금 내 생명이 위태로와 온 가족이 다 모여 울고있는 지금..
난 그 놈이 다시 생각난다.
그 놈이,
그 녀석이,
그 시간이란 놈이, 단 2년만, 단 2년만 더 내 곁에서 쫓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