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7 오전 10:30:22 Hit. 3520
┌────────────┐ │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 │ └────────────┘
< 10. 노생의 꿈 >
옛날 당나라 시대에 노생이라고 하는 가난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허름한 옷을 걸치고 사냥을 가던 도중 길가에 있는 주막에서 인품이 심상치 않은 노인을 만났습니다. 이 노인은 신선의 신술을 터득한 여옹이라는 도사였습니다. 노생은 여옹과 나란히 앉아 잠시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무의식중에 한숨 섞인 푸념을 늘어 놓았습니다.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세상에 이름도 떨치지 못하고 이렇게 초라한 삶을 살다가 헛되이 죽어간다니 정말로 한심한 노릇이었습니다." 여옹이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자네는 몸도 튼튼한 것 같고, 호구지책하는데 모자랄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런 푸념을 늘어 놓는가?" "지금 저는 벌레같이 살고 있을 뿐입니다. 예전에는 뜻을 세워 학문에 힘쓰다 보면 큰 관직에도 오를 수 있으리라는 야심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창 나이에 아직껏 이런 시골구석에서 처박혀 근근히 목구멍에 풀칠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비참하다 생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 말을 하는 사이에 노생은 몹시 졸음이 왔습니다. 여옹은 자루 속에서 베개를 꺼내어 노생에게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지금 주인이 옥수수를 삶고 있으니 다 익을 때까지 한숨 자게나. 내 베개를 베고 자면 마음먹은 대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가 있네." 그것은 청자로 만든 베개로 양 쪽 끝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노생이 베개에 머리를 얹자 순식간에 구멍이 커지더니 그 속으로 통채로 몸이 빨려 들어가 노생은 배게 속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새 노생은 청하에 사는 최씨라는 사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자인데다 큰 부자여서 노생은 더할나위 없이 풍족하게 생활했으며, 갑자기 운도 트였습니다. 다음 해에는 진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궁중의 도서를 관리하는 직책에 오른 후, 황제에게 그때 그때 시문(試問)을 받아 위남현의 판관이 된 것을 시작으로 감찰어서, 자사, 채방사 등을 역임하고 도성의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무렵 현종황제는 오랑캐를 토벌할 재능 있는 인재를 구하고 있었는데, 황제는 노생을 어사중승에 임명하여 하남도절도사로 내려보냈습니다. 노생은 오랑캐를 격파하고, 적의 머리 칠천을 베는 등 화려한 군공을 세웠습니다. 도성에 돌아온 노생은 곧 호부상서 겸 어사대부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타고난 성품이 결백중후하여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지만, 그 때문에 당시 재상의 미움을 사게 되어 중상모략을 받고 단주의 자사로 좌천되었습니다. 3년 후에 도읍지로 귀환한 노생은 상시가 되었습니다. 세 사람의 재상 가운데 한사람으로서 십여년간 천하를 다스리며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시기하는 사람이 있어 모반을 꾀했다는 상소를 올리는 바람에 포졸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나는 산동에 집이 있고 조그만 밭도 가지고 있었다. 배고픔과 추위를 막는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데 내 어찌하여 벼슬길에 올랐단 말인가." 노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마친 다음 칼을 뽑아 자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말려 자결을 단념하여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다. 같은 죄로 추궁받은 자는 모두 참수형에 처해졌지만, 노생만은 힘있는 환관이 비호해 주어 죄가 한등급 감해져서 관주로 유배되었습니다. 수년 후 황제는 노생의 억울함을 알고 재상으로 복귀시켜 연국공의 작위를 내렸습니다. 노생에게는 자식이 다섯명 잇었는데 하나같이 뛰어난 재능을 타고나 진사에 합격하여 제각기 출세의 길을 밟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들은 호족의 딸이었고 손자도 열명을 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치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며 오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만년에는 많은 미인들에게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밀려드는 세월의 파도는 어쩔 수 없어 노생은 몇 번이나 사직을 청했지만, 황제는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노생이 병석에 눕자 병만안 칙사가 끊이지 않았으며, 세상의 명의를 불러 온갖 값비싼 비약은 모두 먹었습니다. 하지만 수명이 다했는지 약을 슨 보람도 없이 숨을 거둘 때가 다가왔습니다. 노생은 상소문을 써서 황제의 은총에 감사함과 아울러 지금은 몸이 쇠약해져 성은에 보답도 못하고 먼저 죽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로부터 조칙이 내려오고 표기대장군 고력사가 보내져 노생을 문병했습니다. 그날 밤 노생은 숨을 거두었습니다.
꿈 속의 노생은 거의 남의 일처럼 '아, 이것으로 내 일생도 끝났구나. 인생의 영욕, 순역(順逆), 생사의 실상이란 이런건가'하고 악령이라도 떨쳐버린 것 같은 기쁨으로 망연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으로 돌아가려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 왔을 때, 베개 바깥의 밝은 세상을 등지고 긴 수염을 기른 도사풍의 노인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이 노생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려하는가?" 노생은 대답이 궁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옥수수가 익고있는 주막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도저히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네는 여옹의 베개를 베고 자서 잠깐 사이에 자기 인생을 본 것이네만, 사실 자네가 본 것은 허망한 인생으로 단지 꿈에 지나지 않네. 여옹은 내 제자지만 아직 미숙해서 말일세. 자네가 원한다면 지금부터 내가 자네의 진자 인생을 보여 주지." 그렇게 말하고 노인은 피가 통하는 듯한 살식 백자 베개를 노생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노생은 하간의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정조관념이 무척 강한 여자로 결혼 한 후로는 집 밖의 일에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또한 시어머니를 극진히 공경하고 남편을 높이 받들었으며 부부사이도 화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내를 아니꼽게 여기는 친척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노생의 아내를 어떻게든지 타락시켜 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어느 날, 이 친척의 무리가 노생의 집을 찾아와 놀러가자고 노생의 아내를 유혹했습니다. 노생의 아내는 완강히 거절했으나 노생은 모두가 권하는데 왜 가지 않느냐며 화를 냈고, 시어머니도 강력히 권하는 바람에 노생의 아내는 마지못해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시장을 구경하고 절에 들른 후, 일행은 연못 근처에 있는 요정으로 노생의 아내를 데리고 갔습니다. 기생들의 노래가락이 울려퍼지며 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연회장 병풍 뒤에 미리 숨어있던 불량배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들 중에서 유달리 용모가 수려하고 남자의 도구가 큰 사람이 노생의 아내 상대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 사내가 별안간 노생의 아내를 끌어안고 큰소리로 웃어제끼자 주위에 있던 기생들이 노생의 아내를 놀려댔습니다. 그리고 옷을 모두 벗고 사내들과 음란한 짓을 시작하였습니다. 노생의 아내도 흥분하여 엉겁결의 상대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사내는 홀딱 반할 정도의 미남이었습니다. 사내는 노생의 아내를 안고 별실로 들어가 뜻한 바를 이루었습니다. 노생의 아내는 너무나 만족스러워 그 다음은 스스로가 요구하며 몇 번씩이나 사내에게 몸을 맡겼습니다. 날이 저물이 일행은 모두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지만 노생의 아내는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과 헤어질 바엔 차라리 이 자리에서 함께 죽어버리겠어요." 노생의 아내는 완강히 버텼습니다. 할 수 없이 그날은 거기서 머물게 하고, 곤란해진 친척 한명이 노생에게 전후 사정을 말했습니다. 노생은 아내를 데리러 갔습니다. 아내는 겨우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귀가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헤어지게 되자 아내는 정부를 끌어안고 울면서 팔뚝을 물어 뜯으며 맹세를 나눈 다음 마차에 올랐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노생의 아내는 매우 음란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인 노생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미친 사람처럼 떠들며 옷을 벗고는 음란한 자세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노생은 정부의 출입을 허락했습니다. 얼마 되지않아 아내가 그 남자에게 싫증을 느끼자 코가 큰 남자, 젊고 잘생긴 남자, 정력이 센 중년 남자 등 음부의 마음에 들만한 남자를 차례차례로 짝지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을의 불량배들 조차 아내의 이름을 들으면 얼굴을 찡그리고 귀를 막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노생을 증오하며 경멸했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남편이 귀신을 불러 자신을 저주하고 있다고 고소했습니다. 조사 결과 중거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황제는 크게 노하여 노생을 채찍으로 때려 죽였습니다. 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 노생은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생은 죽었지만 그 후에도 음부가 사내들을 끌어들여 음란한 생활을 하다 결국 정기가 소진되어 죽는 것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한숨을 쉬면서 노생이 걸어가고 있는데 아까와는 달느 도사풍의 노인이 노생을 불러 세웠습니다. 노생은 그 노인의 유혹에 빠져 다시 베개를 빌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인생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황제를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되는 인생이었는데, 끝에 가서는 환간의 손에 암살당했습니다. 망연히 걷고 있자 또 다른 노인이 나타났습니다. 베개를 빌려 다른 인생을 본 후에는 반드시 또 다른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끝이 없었습니다. 한편 한단의 주막에서는 옥수수가 다 익었습니다. 노생은 아직도 자고 있었습니다. 도사 여옹은 옥수수를 먹고나서 베개 구멍 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아뿔사, 큰일났군. 스승님이 또 장난을 하시니 내가 감당할 수 없게 되었군." 여옹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베개를 자루에 집어 넣고는 표연히 사라졌습니다. 노생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곤란해진 주인은 관청에 신고를 했으며, 지시에 따라 노생을 장사지내 버렸습니다.
? 교훈 - 인생은 깨어나지 않는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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