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6 오후 6:07:12 Hit. 4086
┌────────────┐ │ 어른을 위한 잔혹동화 │ └────────────┘
< 4. 어떤 사랑 이야기 >
옛날 어떤 나라 임금님에게 공주가 셋 있었습니다. 세 공주 모두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막내 공주인 프쉬케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도 무색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이 궁전에 몰려가 프쉬케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느라 여신의 신전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습니다. 미의 여신은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모욕에 화가 나서 인간의 신분으로 신을 능가할 정도로 아름다운 푸쉬케에게 따금한 맛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에로스를 불러 인간에게도 신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화살을 그 지긋지긋한 아가씨에게 쏘아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남자와 사랑에 빠뜨리게 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에로스는 못된 장난을 하게 된 것을 기뻐하며 재빨리 프쉬케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어머니 이상으로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고 놀란 나머지 사랑의 화살에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당장에 가슴의 상처에서 사랑의 독이 온 몸에 퍼져 에로스는 프쉬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이나 신들에게 화살을 쏘아 사랑을 사방에 흩뿌려 온 에로스는 정작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몰랐는데 자신이 사랑의 포로가 되어 보자 감미로운 가슴앓이, 부끄러움과 기쁨, 불안과 희망이 하나가 되어 몸둘 바를 몰라, 자신이 신의 한 사람이라는 것도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에로스는 무엇보다도 어머니 아프로디테에게 일을 실패했다고 꾸짖음을 들을 게 두려워서 그대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한편 아프로디테는 그 얄미운 소녀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을까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쉬케는 전혀 사랑을 하는 기색도 없었고 세상 남자들은 변함없이 프쉬케를 칭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절세미녀 프쉬케와 결혼하려는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에로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자들이 프쉬케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첫째, 둘째 공주는 이웃나라 왕자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아름다운 프쉬케에게는 언제까지나 혼담이 없어 왕과 왕비는 걱정이 되어서 아폴론 신전에 사람을 보내어 신의 계시를 들어오도록 시켰습니다. 신의 계시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계시에 따르면 프쉬케에게 상복을 입혀 푸른 수염의 괴물에게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아폴론에게 부탁을 한 에로스의 짓이었습니다. 프쉬케는 신의 계시를 전해 듣고 슬픔에 잠겨 있는 부모를 위로하고 자신은 기꺼이 운명에 따르겠노라고 말했습니다. 프쉬케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혜와 용기를 지닌 공주로, 운명을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습니다. 푸른 수염이란 산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성에 사는 왕족의 한사람으로 지금까지 여러명의 아가씨와 결혼하고 이혼한 상태였는데, 이혼한 아내들은 모두 행방이 묘연하다는 둥 아내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었다는 둥 무서운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푸른 수염과 결혼을 정하고나서도 왕은 막내 공주의 일을 염려하여 만일의 경우에는 선발된 군대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프쉬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버님, 그런 걱정은 하지마세요. 아무려면 아폴론신이 저를 골탕 먹이려고 푸른 수염과 결혼하라고 했겠어요. 이건 반드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또 신들이 정말로 저를 미워하여 목숨을 앗아갈 생각이라면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왕은 프쉬케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것을 새삼스럽게 한탄하면서도 결국은 딸이 말하는대로 하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혼례 날, 상복을 입은 프쉬케는 산 위에 있는 성에 실려가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밤이 되자 푸른 수염이 나타나 프쉬케를 화려한 침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신랑은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푸른 수염이 얼굴 전체에 나있고, 가슴에도 등에도 푸른 색의 굵고 딱딱한 털이 뒤덮여 있어 마치 청동거인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프쉬케는 어쩐지 푸른 수염이 그다지 무서운 괴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푸른 수염의 끔찍한 모습이나 거칠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눈 속에 언뜻 조심스러운 빛이 보였고, 태도에도 허세를 부리고 있는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푸른 수염은 프쉬케에게 딱딱한 말투로 말을 건넸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진짜 모습을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짓을 했다가는 너는 목숨을 잃게 된다." "진짜 모습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지금 모습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까?" "그렇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부드러운분이라고만 생각됩니다." 푸른 수염은 약간 낭패한 듯 했지만, 곧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나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한밤중에 불을 밝혀서 잠자는 내 얼굴을 보아서는 안된다." 그날 밤 프쉬케는 어둠 속에서 잠자리에 들어 푸른 수염의 겉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드러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부드러움이란 마치 하얀 새의 깃털에 싸이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그 매끄러운 살결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가 만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부의 인연은 맺어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첫날 밤 이후 프쉬케는 낮동안에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지내고, 밤이 되면 어둠 속에서 남편의 애무를 받으며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인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은 첫날 밤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의심이 점점 심해지자 프쉬케는 마침내 푸른 수염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불을 밝혔습니다. 같은 침대에서 등을 구부린 채 웅크리고 자고 있는 것은 천진난만한 얼굴의 미소년 에로스였습니다. "어머, 귀여워라." 프쉬케는 무심코 조그만 소리로 외쳤습니다. 침대 곁에는 에로스가 벗어 놓은 새하얀 날개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그 못된 장난에 쓰이는 활과 화살이 걸려 있었습니다. 프쉬케는 조심스럽게 날개와 화살을 감춘 다음 잠에 빠져 있는 에로스의 옷을 벗기고 사랑스럽게 애무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에로스는 아직 어린애였습니다. 부부의 인연이 맺어지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된 프쉬케는 가벼운 실망과 장난끼에서 에로스의 순결의 상징을 잡아당겼습니다. 자극을 받은 에로스가 번쩍 눈을 떴습니다. 에로스는 상황을 깨닫고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날개도 활과 화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로스는 프쉬케에게 붙잡혀 그녀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나는 신 에로스란 말이야. 놓아 줘. 놓지 않으면 엄마한테 일러 줄거야." 에로스가 소리치며 발버둥쳤지만 프쉬케는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습니다. "에로스는 이렇게 귀여운 도련님이엇군요. 그래 나한테서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지?" "나를 사랑해 줘. 나와 결혼해 주었으면 해." 결혼할 수 없을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프쉬케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좋아요. 하지만 어머니와 다른 신들이 찬성해 줄까?" "엄마 외에는 아마 대부분이 찬성할 거야." 에로스는 천진난만하게 말했습니다. "제우스를 비롯하여 아폴론이나 아테나도 너같이 아름다운 사람을 신의 동료로 맞는 것은 분명히 환영할 거야." 그 때 '그렇게는 안된다.'하는 말소리와 동시에 아프로디테가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엄마를 속이고 이런 여자와 음란한 짓을 하다니." 에로스는 무섭게 화를 내며 달려드는 어머니로부터 필사적으로 프쉬케를 감쌌습니다. 새파랗게 질려 있던 프쉬케는 난생 처음 가까이에서 본 미의 여신이 얼굴색도 약간 변해 가는 중년부인으로, 또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도 않아서 약간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래서 에로스와 함께 두사람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바닥에 엎드려 간청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어느 정도 분노가 사그러진 듯했지만, 여전히 조금도 웃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네가 에로스의 신부로 어울리지는지 아닌지 우선 엄격한 시험을 해 보겠다." 에로스는 프쉬케에게 살짝 눈짓을 하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괜찮아. 내가 몰래 도와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러나 프쉬케는 이 천진난만한 소년과 결혼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숨겨 두었던 날개와 활과 화살을 가져왔을 때, 프쉬케의 머리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프쉬케는 비틀거리는 척 하면서 재빠르게 에로스의 엉덩이와 아프로디테의 엉덩이를 화살로 찔렀습니다. 그 효과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금새 정다운 연인사이가 되어 프쉬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울림푸스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울림푸스산에서는 난처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모자가 공공연하게 연인 사이, 부부 사이처럼 행동하고, 아프로디테와 정을 통하고 있던 알레스가 찾아가도 망신을 주면서 내쫓아서 신들은 골머리를 썩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추문이 인간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걱정되어, 제우스를 중심으로 회의를 한 결과 외형상만이라도 에로스를 프쉬케와 결혼시켜 놓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프쉬케는 울림푸스산으로 초대되어 신들의 동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프쉬케가 가지고 있던 활과 화살은 울림푸스산에 오르기 전에 태워 버린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에로스의 못된 장난으로 신들이 사랑의 열병에 괴로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 교훈 - 철부지는 사랑을 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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