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2 오후 3:11:40 Hit. 1055
가령 여기 책이 한 권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책이 ‘책’으로 존재하는 것은, 우선 그것을 책으로 취급하는 독자가 있어야 하고 읽는 행위가 있어야 하며, 나아가 책을 만든 사람과 출판사, 더 나아가 나무와 펄프 공장과 제지소, 그리고 산과 구름과 비 등 수없이 많은 요소가 다 함께 조건이 되어서입니다. 책은 온통 책 아닌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 책은 존재론적으로 보아 그 자체의 존재성이 없으며, 책으로서의 고유한 본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책을 다른 여러 이름으로 불러도 무방하지요. 나무-구름-학생-종이 등 복합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편의상 하나의 이름을 붙인 것뿐입니다. 또한 책은 다른 용도로 쓰는 순간 더 이상 책이 아닙니다. 휴지로 쓰는 순간 책이 아니라 휴지로 불러야 마땅하며, 화가 나서 누구에게 던지면 일종의 무기로 돌변하기도 하지요. 이렇게 사물이란 조건과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독자적 존재도 아니고 고정적 본성이나 본질도 없다는 것이 공 개념의 진리입니다.
▶길희성 《보살 예수》(현암사, 2005), 157-158쪽◀
우리가 '내 몸'이라고 하지만 사실 '내 몸'에서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쌀, 물, 불, 공기, 흙 등의 물질들이, 여러 가지방법으로 들어와서 '내 몸'을 형성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나'라는 것은 편의상 부르는 말일 뿐,고유의 존재성을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그래서 '나'와 '너'는 하나일 수밖에 없고,'나'와 '자연'도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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