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급히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 버스를 타야 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 안은 텅 비었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사 아저씨가
한 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부스럭거리며
운전석 뒤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니, 저 아저씨가 무얼
찾는다지? 혹 흉기라도?' 딴직을 하는 게 마음에 걸려
도무지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빨리 시내에 도착했으면......'숨막히는 순간은 늘 그렇듯
더디었다. 드디어 불빛이 보이고 버스는 시내에 도착했다.
"아저씨, 세워주세욧."목적지까지는 몇 정류장을 더 지나야
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할
속셈이었다. 버스는 비 속에서 끼익 하며 멈췄다.
"저어, 이거 쓰고 가세요."운전기사가 내민 건 승객들이
버리고 간 헌 우산이었다. 사람을 믿는다는게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