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20 오전 4:25:45 Hit. 3778
* 김강사와 T교수
문학사 김만필(金萬弼)은 동경 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 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학생 시대는 한때 "문화비판회"의 한 멤버로 적 지 않은 단련의 경력을 가졌으며 또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 년 반 동 안이나 실업자의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 왔지만 아직도 "도련님 " 또는 "책상물림"의 티가 뚝뚝 듣는 그러한 지식 청년이었다.s전문학교 교문(校門)을 들어선 택시가 기운차게 큰 "커어브"를 그 려 육증한 본청 현관 앞에 우뚝 섰을 때에는 벌써 김만필의 가슴은 두 근거리기 시작하였다.오늘은 이학기 개학하는 날이라 학생들은 둘씩 셋씩 떼를 지어 웃고 떠들고 하면서 희희낙락하게 교문을 들어가고 있었다. 저 학생들 저 다 큰 학생들을 앞에 놓고 내일부터 강의를 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니 몹시 기쁘기도 하나 일변 겁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었다. 김만필은 세 내 입은 "모닝"의 옷깃을 가다듬고 "넥타이"를 바로 잡아 위의를 갖춘 후에 자동차를 내렸다. 그윽한 "나프탈린" 냄새가 초 가을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새삼스레 코를 찔렀다. 그는 천천히 일 원짜리를 한 장 꺼내 주고 거스를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손짓을 하 고 무거운 정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은 김만필이 그의 울울턴 일 년 반 동안의 "룸펜" 생활을 청산하 는 날이며. 새로이 이 전문학교의 선생으로 시간 강사로나마 취임하는 날이며 또 이도 또한 이번에 새로 임명된 이 학교 교련선생과 함께 취임식의 단위에 오르는 날이었디. _1러므로 그가 기쁨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이 학교 교문을 들어선 것은 이상해 할 일이 아닌 것이다.현찬을 들어서서 한참 어리둥절하다가 _1는 겨우 수부( 넌付) 에 가서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누구냐고 되묻는 것을 명함을 내주며 자기 는 이번에 이 학교 독일어 선생으로 새로 임명된 사람이라고 대답하니 그제서야 사무원은 몸을 납신하고 "아,씽러셔요"하면서 이 복도를 오 른쪽으로 꺾이어 바로 둘째 방이 교장실이라고 일러 주었다.교장실은 넓고 화려하였다. 교장은 그 넓은 방 한복판에 커다란 .테 이블"을 앞에 놓고 두톰한 회전의자 위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마치 김 만필이가 들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나시피. 이왕에 김만필은 교장을 그의 사택으로 찾아간 일이 사오 차나 있었지만 그때에는 김에 게 대하는 태도가 몹시 친절한 데다가 교장의 생김생김이 쭈그렁 밤송 이 같았으므로 마치 시골집 행랑 아범이나 대하듯이 몹시 만만했는데 이날 아침 교장실에 와서 그는 교장이요, 자기는 일개 사간 강사로서 마주 대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교장의 태도는 전과는 아주 딴판으로 독난 뱀 모가지같이 고개를 반fk 뒤로 젖히고 있어서 속심으로는 꼴 같지 않기 짝이 없었으나 큼직하게 유덕스레 생긴 사람보다도 도리어 더 무서웠디."어 ! 잘 오셨소. 자 이리 와 앉으시오."교장은 목소리를 지어가며 "테이블 "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말 할 때에 그는 두 볼의 주름살 한 줄기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김만필은 몸이 _=_:1라지는 것을 느끼며 황송해 의자에 앉았다."우리 학교에 이왕에 오신 일이 있던가요. 아마 처음이죠 ?t."네. 처음입니다.""어때요. 누추한 곳이라서 ""천만에요, 정말 훌륭합니다."김만필은 교장실 창에 반쯤 걷어 놓은 호화스런 "커튼"으로 눈을 옮 기며 대답하였다. "커튼"은
정말 훌륭하였다.교장은 "테 이블"위에 놓인 종을 서너 번 울렸다. 급사가 들어오나 했 더니 옆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뚱뚱한 "모닝"을 입은 친구가 허리 를 굽실굽실하며 들어왔다."여보게 그것 가져오게.""핫."뚱뚱한 친구는 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리를 굽실하고 도로 나 갔다. 잠깐 있다가 그는 무슨 종이 조각을 들고 들어와 교장에게 전했 다. 교장은 김만필에게, "김만필 씨.이것이 당신 사령서 입니 다, 자 이리 오시오." 김만필은 공손히 걸어가 사령서를 받아 들고 허리를 굽혔다."인젠 자네도 "김만필이 허리도 채 펴기 전에 교장은 그의 머리 위에 대고 말을 퍼 부었다.H우리 학교의 한 직원이니까 우리 학교를 위해 전력을 다해 주게. 더 구나 우리 학교에서 조선 사람을 교원으로 쓰는 것은 자네가 처음이니 까 한층 더 주의하고 노력하도록 하게.""핫,"김만필은 아까 그 뚱뚱한 친구가 하던 그대로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 를 굽히지 않을 수 없었다."에 그리고 김군.T군을 소개하지.우리 학교 교무일을 " 교장이 말도 맺기 전에, "내가 T올시다."하며 뚱뚱한 친구가 몹시 친절하게 허리를 굽혔다. 김만필은 아까는 그 를 경멸의 눈으로 보았지만 지금 그가 이 학교 교무를 보는 이인 줄을 알고 더구나 이렇게 공손하게 자기한테 하는 것을 보니 도리어 황송해 서 그보다도 한층 더 허리를 굽혔다.자, 저 방으로 가서 기다립시다. 곧 식이 시작될 테니까. 이번에 새 로 오게 된 교련 선생 A소좌도 벌써 와 계십니다."T교수는 앞서서 김만필을 그 옆방 교무실로 안내하였다. 교무실에는 A소좌가 긴 칼을 짚고 만들어 논 사람같이 단정하게 았아 있었다. 모 든 것이 김만필에게는 어째 꿈나라에나 온 것 같았다.김만필과 A소좌의 취임식은 개학식 끝에 간단하게 거행되었다. 위엄 을 차리느라고 한충 더 눈에 살기를 띤 교장이 먼저 단 위에 올라가 김 만필을 동경 제국대학 출신의 보기 드문 수재라고 소개하고 이어 이번 에 새로 교련을 맡아 보게 된 A소좌는 그의 경력과 인물에 대해 자기로 서 감히 어떻다고 말할 생각도 없으며 다만 이번에 특히 그의 분주한 사무의 틈을 타 우리 학교일을 보아주게 된 데 대하여 감사의 말을 드 릴 뿐이라는 인사를 한 후에 김만필과 A소좌는 동시에 단 위로 올라갔 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가는 김만필이 앞서서 "나프탈린" 냄새를 피 우며 층대를 올라가고 바로 그 뒤에 검붉은 햇볕에 탄 얼굴과 강철같은 체격에 나이도 김만필의 존장벌이나 됨직한 소좌가 가슴에 훈장을 빛 내며 유유히 따랐다. 강당 안에 가득찬 학생들은 이 진기한 행진에 거 의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터뜨릴 뻔하였으나 "기오쓰갯"하는 체조 선생 의 일갈로 겨우 참았다. 김만필과 A소좌가 나란히 단 위에 서자 체조 교사는 다시 "게 레잇"하고 외쳤다. 동시에 수백 명 검은머리가 일제히 숙였다.생각하면 S전문대학교의 신임 교원 취임식이 이렇게 장엄할 줄이야 미리부터 모를 바 아니었지만 막상 눈앞에 대하고 보니 김만필은 기가 막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기는 무엇으로 수백 명 학생의 경례를 받을 가치가 있는가. 김만필은 예를 받고 섰는 그 짧은 동안에 착잡된 모순의 감정으로 그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였다. 대학시대에 "문화비 판회.의 한 "멤버 "이었던 일, 졸업하자 "취 직 "을 위해 일상 속으로 멸 시하던 N교수를 찾아갔던 일, N교수로부터 경성의 어떤 유력한 방면 으로 소개장을 받던 일. 그리고 서울로 돌아온 후 수차 조선일보, 동아 일보 등에 독일어 좌익문학 운동을 소개하던 일. 그리고 H과장의 소개 로 작년 가을에 이 s전문학교 교장을찾
던 일 이 모든 기억은하 나도 모순의 감정없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생의 모순의 축도를 자기 자신이 몸소 보이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지 식계급이란 것은 이 사회에서는 이중 삼증 사중 아니 칠증 팔중 구중의 증첩된 인격을 갖.드록 강제되는 것이다. 어떤 자는 그 많은 인격 중에서 자기의 정말 인격을 명확하게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자는 자기 자신의 그 수많은 인격에 현황해 끝끝내는 어떤 것이 정말 자기의 인격인지도 모르게 되 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자기는 이 두 가지 중의 어느 것인가 ? 이 모든 생각이 김만필의 머리를 번개같이 지났다. 그는 학생들이 경 례하고 있는 _1 짧은 시간이 지긋지긋하게 지리하게 생각되었다. 어께 눈이 핑핑도는 것 같고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식이 끝나고 강당에 나올 때 T교수는 친절히김만필 아니김강 사의 옆으로 오며, ,"긴상" 몹시 약하시구먼. 얼굴 빛이 대단히 흥지 않은데요. 어디 괴 으로우십니까 ?하고 물었다.아 뇨.별로 몸에 고장은 없습니다마는 "김강사는 등에 식은 땀이 흐른 것을 느끼며 대답하였다.
김만필은 생전 처음 서는 교단이라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1날 밤은 늦도록 공부하였다. 학생들의 독일어는 거의 "아 -,베 -,체 -" 부터 가르치는 것이니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_1래도 실수가 있을까봐 " 아 -.베 -,체 -"하고 발음 연습까지 해 보았다.아침의 교원실은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기운찬 소리 으로 의미없는 대화를 껄껄거리며 끝없이 계속되었다. 김강사는 원래가 말이 적은 데다가 "신 마이 "고 보니 어디가 말 한마더 붙여 볼 용기가 없었다.교원실의 그 소동을 피해 신문실로 들어가 새로 온 독일의 _1림 신문 을 펴 들고 있노라니 문이 열리며 T교수의 냉글하는 친절한 얼굴이 나 타났다."어 여기 와 계셨습니까. 신진 학자는 디르시군."김강사는 의미없이 얼굴을 붉히며, "어떠십니까, 오늘은 매우 산들산들합니다 "하고 인사에 궁했다.T교수는 신문실로 들어와 김강사 옆에 와 앉으며, "바로 이번 첫째 시간이 당신 시간이지요 ? "네."허...... 무어. 어련하실거 아니지만 그래두 당신은 교단에 서시는 것이 처음이 되니까. 더구나 우리 학교로 말하면 학생이 섞여 있으니까 한층 더 해나가기가 어 렵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버릇이란 처음 오는 선생, 더군다나 당신같이 젊은 선생에게는 쓸데없는 질문을 자꾸해 괴 롭게 굽니다. 나도 역시 그 전에 당한 일입니다만 말하자면 학생이 선 생을 시험하는 게랄까요. 이 시험에 급제를 헤야만 학생들을 다스려 나 가지 만일 떨어지는 날이면 뒤가 몹시 괴롭습니다. 허.... 어허......" T교수는 말을 끝내고 호걸같은 웃음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김강사는 교수의 친절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쯤이야 자기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바이지만 아무도 자기한테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는 이때에 일부러 자기를 찾아와 이런 귀뜀을 해 주는 것이 몹시 고 마웠다.T교수는 몇 마디 잡담을 더 하고 곧 일어나 나갔다. 뚱뚱한 몸을 흔 들흔들하며 나가는 뒷모양이 김강사에게는 몹시 믿음직해 보였다. 사 실을 말하면 김강사는 과거에 "문화비판회원"이었던 것이 선생으로서 는 "정강이의 흠집"인 데다가 이 학교를 오게 된 것도 초빙을 받아서 온 것이 아니라, 이 학교 교장이 H과장 밑에 꼼짝을 못하는 관계로 또 H과장은 보통 사제 이상으로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 동경제대 N교수 에게 대한 의리로, 이렇게 어쩔 수 없는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만 필에게 일주일에 네 시간의 강사의 자리가 차례로 온 것이었으므로 김 만필은 이 학교 안에 우선 교장을 필두로 자기를 환영치 않는 공기가 있을 것을 예기하고 있었다. 교장은 정말로 김강사를 싫어서 그러는 것 인지 또는 그의 오종종한 성미 때문에 =I 떻게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를 별로 환영하지 않는 듯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당연 한 일이요. T교수같이 친절하게 구는 것은 예기치 못하였던 바이다.학생들은 예상보다 얌전들 하였다. 질문이 있을 때마다 김강사는 "이키 인제 왔구나"하며 웠수나 만난 듯이 준비를 차렸지만 일부러 선 생을 골탕 먹이기 위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새로 온 젊은 선 생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오는 동정의 빛이 보였다.시간을 끝내고 교원실로 돌아오자 T교수는 친절하게도 또 찾아와서 처음 서는 교단의 감상이 어떠냐고 물었다."감상이 무어 별거 있습니까. 학생들은 생각던 것보다 얌전하더구먼 요.
김강사는 학생들이 처음 온 선생에 대해 으레 해 본다는 그 시험에 자기가 합격이나 한 듯이 약간 득의의 웃음을 띠며 대답하였다."그렇지만 "긴상", 얌전한 것은 표면뿐입니다. 별별 고약한 놈이 다 있으니까요.미리 주의해 드럽니다마는 "하면서 T교수는 학교 수첩 학생들이 "엥마쯔"라 부르는 것 을 꺼내 김강사 앞에 놓고 연필 끝으로 죽 흩어 내려가다가, "우선 이 "스스끼"란 놈만 해도 웬 고약한 놈입니다. 학교는 결석만 하고 모처럼 출석하면 선생한테 시비나 걸려 덤비고 교실에서는 장난 이나 치고 그리구 게다가 품행이 좋지 못해 여학생한테 편지 질하기가 일쑤입니다. "스스끼"뿐입니까, 옳지, 이놈 이 ".야마다"란 놈도. 도대 체 이 반은 급장부터 맘에 안 듭니다. 학교 성적은 좋지만 성질이 못 되 어서."김만필은 T교수의 의외의 열변에 기가 막혀 가만히 그의 얼굴을 치 어다 보았다. 그의 눈은 층심으로부터의 미움에 타고 있었다. 신참자 인 김강사에게 들려 주는 친절한 조언(助言)으로서는 좀 정도가 지나 치리라고 생각될이만큼."허지만......"하고 김강사는 T교수의 얼굴 빛을 보아가며 가만히 자기의 의견을 끼 웠다. 우리는 학생을 대할 때 좀 더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대하여야 할 것 이 아닌가요."허 "하고 T교수는 조금 체면이 안 된 듯, "그야 물론 그렇지요. 허지만 학생들이 선생들의 그 친절을 받아주 지 않는데야 어떡하오. 당신도 이제 좀 치여나 보시면 차차 내 생각에 가까워지십니다. 두고 보시오."T교수는 마침 급사가 찾아왔으므로 그대로 교무계로 가 버렸다. 그 러나 김강사는 몹시 우울하였다. T교수가 인격상 결점이 있는 것인 가 ? 또는 자기가 아직 책상물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 그러나 어쨌 든 김강사에게는 T교수에게 몹시 탈을 잡히던 "스스끼"라는 학생이 도 리어 흥미가 있었다.며칠 지난 후 토요일 밤이었다. 김만필은 오래 찾아 보지도 못한 H 과장에게 치하의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H과장이 교장에게 억지로 떼 를 쓴 것이 아니었더면 김만필은 도저히 s전문학교에 자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H과장은 조선에 와 있는 관리로서는 퍽이나 평민적인 친절한 신사였다.
H과장은 집은 북악산 밑 관사촌의 북쪽 끝으로 있었다. 저녁 후의 고요한 관사촌은 김만필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셰퍼드 "인지 무서운 개들의 짖는 소리에 몹시 요란스러웠다. 김만필이 닌과장 집으로 들어 가는 골목을 돌려는 순간 등 뒤에서 다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 다. 고개를 획 돌리자 바로 등 뒤에까지 온 그 사람의 얼굴과 거의 마주 칠 뻔하였다. 어 !""어 이거 누구시오."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뒤에 온 것은 무슨 보퉁이를 낀 T교수였다 "얏데루나"(할 짓은 다 하는구먼. )"T교수는 김만필의 어깨를 툭 치며 비밀을 서로 통한 사람들끼리만이 서로 주고 받는 그러한 미소를 띠었다. 미소의 의미는 김만필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베쓰니 얏데루 와께데모 아리마생가"(별로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 닙니다.)"흥. 당슨도 나는 책상물림으로만 알았더니 상당하구먼." T교수는 여전히 :그 미소를 띠고 있었다."하긴 당신도 아시겠지만 나는 H과장의 힘으로 이번에 취직이 된 것 이니까요. H과장은 나의 은인이니까요.""그야 물론 그렇지. 그떻구말구. 나는 H과장하고 고향이 한 곳이라 오."네 그러세요."김만필은 더 할 말이 없었다.T교수는 잠깐 무슨 생각을 하더니 별안간 H과장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며 김만필을 보고, "잠깐만 거기서 기다려 주시오. 우리 같이 들어갑시다." "꿔요 ?"허...... 이거 왜 이러슈 세상이란 다 이런 게 아니우 ? " 하며 T교수는 손에 들었던 물건을 한번 번쩍 쳐들어 보이고 부엌 문으 로 사라졌다.김만필은 T교수가 가지고 들어간 것이 무엇인지를 캐달았다. 이 꼴 을 한 번 학생들을 보여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니 김만필의 마음은 몹시 우울하였다.부엌 속에서 하녀하고 무엇인지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T 교수는 도로 나왔다. 이번에는 들어 갈 때와는 달리 몹시 위엄있는 태 도를 회복하고 있었다."기다리셨지요."그는 김만필에게 간단히 말하고는 잠자코 앞서 가서 정면 현관의 초 인종을 눌렀다.
그날 밤 H과장 집에서 나온 후 T교수는 자꾸 어디든지 잠깐 차라도 마시러 같이 가자고 졸랐다. 김만필은 그것을 감사하게는 여길망정 거 절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그를 따라 갔다.두 사람은 "세르땅"이라는 찻집으로 갔다. 이 집은 김만필도 몇번 간 일이 있었으나 T교수는 매우 친히 아는 것 같았다. "카운터"에 앉은 매 몰스럽게 된 여자가 T교수가 문을 들어서자마자."아라 센세(先生). 이랏샤이마시. 스이붕 오히사시 부리네." 하고 정떨어지게 외 쳤다. 무슨 의미인지 T교수는 입에다 손가락을 대 이고 쉬 쉬 하면서. 그러나 벙글벙글 웃으면서 구석 "테이 블"을 차지하였다."흥차 둘. 위스키를 타 다구."T교수는 보이에게 주문을 하고 김만필을 보며, "긴상", 어떠슈, 술을 잘 하신다지요.""천만에요,조금만 먹으면 빨갛게 올라서 ""이거 왜 이러슈. 소문 다 듣고 앉았는데, 허...... 허......" T교수는 의미 모를 너털웃음을 크게 웃고
나서, "긴상". "긴상" 일은 내 다 잘 알고 있지요. 벌써 작년에 H과장께 당신 말씀을 들었어요. 사실은...... 이거 무어 내가 공치사하는 게 아니 라 당신을 교장에게 추천한 것도 실상은 내가 한 것이지요. 허...... 어 김만필은 T교수의 후림대와 너털웃음에 몹시 야비한 느낌을 받았으 나 하여간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사의 표정을 아니할 수 없었다. T교 수가 무엇 때문에 자기를 추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담과장 의 명령을 교장에게 전하는 일만은 하였음직한 일이었다. T교수는 차 를 한숨에 마시고 이번에는 알짜 위스키를 청하며, "당신은 나를 모르셨겠지만. 나는 당신을 이왕부터 잘 알고 있었습 니다. 사실은 저 작년부터 나는 조선 말을 공부하느라고요." 김만필은 T교수가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T교수가 배우 는 조선 말과 김만필과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 T교수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김만필에게 친밀의 감정을 표시하기 위한 것 같았으 나 김만필은 무슨 말이 또 나올는지 몰라 슬그머니 겁이 나는 것이었 다."......조선 말을 배우느라고 신문에 나는 소설과 논문을 학생더러 통 역해 달래며 읽었는데 우연히 당신이 쓰신 "독일 신흥 작가 군상(群 像)"이란 논문을 읽었어요. 정말 경복하였습니다. 독일 문학에 대해 당 신만큼 연구와 이해가 깊은 이는 온 일본 안에도 적을 것입니다. 그래 서 나는 H과장 집에서 당신 이야기가 났을 때 그런 분을 우리 학교에 맞았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고 속으로 대단 바랐던 것입니다. 허허 허, 좋은 일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써 주십시오."김만필은 상처나 다친 듯이 속이 뜨끔하였다. 도대체 이런 말을 하는 T교수의 내심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작년 겨울에 조선일보에 연재하 였던 "독일 신홍 작가 군상"이란 논문은 몇 푼 안 되는 원고료를 목표 로 총총히 쓴 것에 지나지 않으며 더구나 그 논문의 내용은 독일 좌익 작가의 촬동을 소개한 것이므로 지금 그런 종류의 일은 그의 s전문학 교에서의 지위를 위해서는 절대로 비밀에 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밀을 T교수가 일부러 처들어 칭찬하는 것은 칭찬이라느니보 다 도리어 위협으로 들렸다. 도대체 T교수는 무슨 까닭으로 김만필에 게 친절을 억지로 보이려는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세르팜"을 나왔을 때에는 둘이 다 얼근히 취하고 시간도 열한 시가 지났었다. 그러나 T교수는 어디든 한군데 더 다녀가자고 놓지 않았다 T교수는 몹시 명랑한 태도로 앞장을 서서 "바하트.암.라인"을 콧노레 로 부르며 "아사히마찌(욱정)"어느 뒷골목 깨끗하게 차린 "오뎅"집 "노랭"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에도 그는 가끔 오는 눈치인 것 이 삼십이 넘을락말락한 "게 이샤(기생 )"퇴물인 듯싶은 여자가 아까 "세르팜"의 마담이 외치던 것과 똑같은 소리로 외치는 것으로 알 수 있 었다. 다만, "센세 "를 "센세 이 "라고 발음하는 것만이 달랐다.김만필과 T교수가 그 "오뎅 "집을 나왔을 때에는 둘이 다 비틀걸음을 켰다. "삼월 백화점" 앞에 와서 T교수는 단장을 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걸어가겠으니 택시는 일 없다고 김만필이 사양하니까 전차도 끊어졌는데 여기서 동소문 안까지 어떻게 걸어 가느냐. 당신 집이 우리 집에서 가깝지 않느냐고 T교수는 말했다."아니 우리집은 어떻게 아십니까 ? "김만필은 너무나 의외여서 물었다.H아다마다요. 더러 댁 문 앞으로 지나다니는 걸요. "긴상" 문패가 붙 었기에 그저 그런가 했지요. 우리집은 긴상 댁에서 바로 거깁니다. 그 저 c씨의 커다란 문화주택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밑입니다. 인제 자주 놀러 오세요,""네 놀러 가지요."하고 김만필은 대답했으나 속심으로는 결단코 T교수를 찾아가지 아니 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어째
서 그는 탐정견같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일까 ? 그와 교제를 계속하면 할수록 자기는 손해만 볼 것같이 생각 되었다.자동차가 박석고개를 전속력으로 넘어갈 때 T교수는 김만필의 귀에 다 대고, ,인제 차차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 안에도 여러 가지 세력이 있어 대 단히 시끄럽습니다. "긴상"도 주의하시오. 그리고 仁군에게도 주의하 시오."하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속삭였다. C파는 사람은 지난 봄부터 s전문 학교의 독일어 강사로 있는 사람이었다. 인물이 심술궂게 된 데다가 김 만필과 같은 독일어 선생이므로 어찌 생각하면 경쟁자의 입장에 있는 듯도 하나 C의 우월한 지위는 도저히 김만필의 대적이 아니었으며 또 김만필은 일주일에 네 시간이든 한 시간이든 시간을 얻은 것만 고마웠 지 그것을 오래 하리라 또는 좀 더 얻어 보리라는 욕심도 없었던 것이 다.김만필이 무슨 영문을 모르고 대답을 못하고 있노라니까 T교수는 별 안간 껄껄 웃으며, 아니 무어 별로 마음에 새겨 들을 것은 없습니다. 그저 그렇단 말이 I1_티. "그떻습니까."김 만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떨어진 대답을 하였다. 무슨 무서운 악 몽(惡夢) 에 붙들린 것 같아서 일각이라도 빨리 T교수의 옆을 떠나고 싶었다.
s전문학교에는 김만필은 일주일에 이틀밖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러 나 그 이틀이 김강사에게는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 첫째로 그 쭈그 렁 밤송이 외양도 맘씨도 쭈그렁 밤송이같은 교장을 생각하면 당 초에 정이 뚝 떨어졌다, 교무계에를 가면 T교수가 너털웃음을 치며 친 절스레 말을 거는 것이 무서웠고. 교원실에를 가면 모두가 제 잘났다고 김강사 같은 것은 외쪽 눈으로 거들떠도 안 보는 데다가 언젠가 T교수 가 주의하라고 말하던 C강사의 그 심술궂게 생긴 낯짝도 보기가 싫었 다. 하루 이틀 지나가는 동안에 김강사는 학교에 나가도 교장실에도 교 무계에도 들르지 않고 교원실로 가 모자를 벗어 걸고는 바로 신문실로 들어가 독일서 온 신문잡지를 펴들고 종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교실에서는 언젠가 T교수가 귀뜀해 주던 "스스끼"라는 학생에게 특 별히 주의를 했으나 별로 시비를 걸려는 눈치도 안 보이고 평범하게 착 실히 공부하는 모양이었다. 가끔 역독(譯讀)을 시켜 보아도 번번히 예 습을 해 온 것이었다.시월 하순의 어느 일요일 아침 후 김만필이 자기 집에서 새로 도착한 "룬드.샤우"를 펴들고 있노라니까 마당에서 "긴센세 이 "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보니 그것은 의외에도 무슨 책을 옆에 낀 "스스끼" 였다. T교수의 말이 생각났으나 도리어 반가운 생각이 나서 거뜬 방으 로 청해 들었다."스스끼"란 학생은 광대뼈가 약간 내밀고 아래턱이 크게 생긴 것이 조선 사람의 얼굴 비슷한 데다가 고집이 좀 있어 보였다. 그 얼굴의 인 상이 T교수를 불쾌케 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말하는 품은 그의 생 김생 김과는 달리 상냥하고도 조리가 있어 두뇌가 명석함을 보였다.그는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아직 일 년도 안 되었건만 독일 문학 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어떤 것은 김강사도 모르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더구나 그해 봄에 "히틀러 "가 독일의 정권을 잡은 뒤의 일 은 김만필이 취직에 쪼들려 자세히 알아볼 여유가 없었던 만큼 "스스 키 "가 도리어 자세하였다."에른스트 톨러", "게오르그 카이서 ". " 렌 레마르크". 심지어 "토마 스 만" 형제까지 예술원을 쫓겨났다지요 ?"
그랬지요,"김만필은 어디까지든지 "스스끼"를 경계하면서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문학자 박해로부터 "파시즘" 자체의 공격으로 들어갔다. "스 스끼"는 열을 띠어 가며 "히틀러 "를 공격하였다. 처음 찾아온 김만필을 어째서 그리 신용하는지 "스스끼"는 할 말 아니 할 말 섞어 떠들었다.그 이야기하는 품이 몹시 단순하였다. 만일 "스스끼"가 김만필 이외의 선생을 찾아가, 이를테면 T교수 같은 이를 찾아가 그런 말을 떠들어댄 다면 미움을 받을 것은 정한 이치였다.이야기는 "파시즘"으로부터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스스끼"는 s 전문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은 아무 생각없이 그시 그시의 생활에 도취 되어 있는 것을 몹시 공격하고 그것도 다 시세의 변천. 학교당국의 가 혹한 탄압 때문이라고 불평을 말했다."선생님이 동경 제대시 "문화비판회원 "으로 활동하실 때만 해도 그 떻지는 않았지요 ?""스스끼"의 질문은 김강사에게는 청천의 벽력 까지는안 가더 라도 너무나 의외였다. 김만필은 취직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그가 일찍 이 "문화비판회웠 "이었던 것을 아무에게도 말한 일이 없고 그것이 흐 시나 알려질까 봐 몹시 주의헤 왔던 것이다. "문화비판회 "라니요 ?""선생님이 ]I 회원으로 굉장하게 활동하신 것은 학생들이 모두들 압 니다."스스끼"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하였다."아 뇨. _1건 무슨 살못이겠죠. 나는 _1런 회는 잘 모르는데." 김만필은 모처럼 얻은 그의 지위와 자기의 양심과를 저울에 달아가 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그러세요 ?"스스끼"는 몹시 의외라는 표정을 하면서, "아. 그 회가 해산할 때 선생님이 일장 연설까지 하셨다는데요 ?" 그것은 사실이었다. 또 =I 사실은 지금의 김강사로서 결코 후회하는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데체 자기의 현재 지위에 불리한 이러한 소문은 어디로부터 나는 것일까 ? 김강사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 중의 이 사 람 저 사람을 생각해 보았으나 자기의 과거를 앎직한 사람은 생각나지 않았다."그런 소문은 대체 어디서 들었소 ?"요전 "다까하시"라는 학생이 T교수한테 놀러 갔더니 T선생님이 =I 러시더 래요 ?"T선생님이 무어라구 ? ""김선생님은 그만큼 수재시라구요. ""스스끼 "는 김강사의 질문에 그만 겸연쩍어 얼굴이 붉어지며 웃는 얼굴을 지었다. T교수는 또 어떻게 해서 그런 사실을 알았으며 알았기 로 무엇 때문에 _1런 말을 학생들에게 펴 놓은 것일까 ? 괼연쉰 그것은 무슨 계교를 쓰는 것에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더 이 것은 성녕코 김강사 를 먹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김만펼에 게는 오늘 자기를 찾아와 독일 문학으로부터 "히들러 "와 "파시즘"과 힌 사회정세의 공격 까지를 탁 터놓고 이야기하던 "스스끼"의 본심까지도 의심되기 시작하 였다. 의심을 시 작하고 보면 다음다음 끝이 없었다. 대체 개학식 다음 날 왜 T교수는 유난스럽게도 "스스끼" 험담을 자기에게 들려 주었을 까 ? 딘과장 집에서 만나던 밤에 왜 T교수는 자기에게 한 턱을 써가며 친절을 보여 주면서 슬그머니 자기의 비밀을 아는 것을 암시하였을 까 ? 그리고 이 "스스끼"란 학생은 사실은 T교수와 한 통이어서 오늘 김만필의 본심을 한 번 떠보려 온 것이나 아닙까 ? ...... 이렇게 생각하 고 보니 김만뀔은 공연히 모든 것이 무서워지며 앞에 앉았는 "스스끼" 의 얼굴이 새삼스레 치어다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스키 "는 김만 필의 표정이 별안간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 도리어 의외라는 듯이 김만 필의 얼굴을 치어다보고
있었다. 김만필은 "이 놈이 이렇게 순진한 체 하고 있어도 실상은 T교수의 "스파이"이기가 쉽다"하고 생각하니 "스 스끼"의 그 놀란 듯한 표정이 도리어 가증스럽고도 무서웠다."스스끼"는 흥이 깨진 듯이 한참 앉았다가 모자를 들고 일어선다. 그 의 얼굴에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미처 결단을 못해 곤각(困레)하는 표 정이 떴다. 일어선 채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는 결심한 듯이 소리를 낮 추어, 사실은 선생넘께 청이 있어 왔는데요."하고 김만필이 얼굴을 잠깐 쳐다보고, 우리반 안에 조금 생각있는 동무 몇이 모여 독일 문학 연구의" .1룹" 을 만들었는데 선생님 종 참가헤 주시지 못할까요 ?" "스스끼 "의 목소리는 몹시 진실하였다. .7L러나 불안(不安)과 회의 (懷疑)에 쪼들린 김만필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를 해하려는 흉계로만 들렸다."바빠서 난 참가 못하겠소."그는 난번에 "스스끼"의 청을 딱 거절했다."선생닝 듬 계신 대로라도-.....""스스끼"는 다시 열심으로 청했다."몹시 바쁘니까 도저히 못 가겠소."김강사는 여전히 딱 잡아떼었다.정 그러시면 하는 수 없지요. 안녕히 계십시오.""스스끼"는 몹시 실망한 낯으로 모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대문을 나 갔다, "스스끼"가 찾아 왔다 간 후 김만필의 우울은 한층 더 심했다, 일종 의 강박관념(强迫觀念) 에 쪼들리는 정신병자같이 김만필은 항상 무엇 엔가 마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우울은 또 그의 태도를 한충 더 비겁하게 하였다. 그는 s전문학교에 가면 어째 모든 사람이 자기를 손가락질하며 공론하는 것 같아 점점 더 동료들과 말을 하기도 싫어졌.다. 교장도 T교수도 H과장까지도 영영 찾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T교 수는 가끔 자진해 김강사를 찾아와 말을 붙였지만 교장은 가을 이후 겨 우 두서너 번 낭하에서 마주쳐 간단히 인사를 교환하였을 뿐이었다.그러나 그런 중에도 날이 감에 따라 김강사는 s전문학교 직원 사이 의 공기를 차차로 짐작하게 되었다. 자세히는 모르나 지금 세력을 잡고 있는 교장과 T교수의 일파가 대가리를 휘젓고 있고 그에 대항해 물리 학의 s교수와 독일어의 C강사가 대립해 있는 듯싶었다. 김만필은 그 어느 편에도 가담할 이유도 자격도 없었으나 교장과 T교수에 대한 반 감 때문에 슬그머니 c강사 편으로 동정이 갔다.s교수는 교장 반대파라 해도 비교적 든든한 지위를 갖고 있었으나 C 강사는 까딱하면 이 두 파의 알력의 희생이 될 듯싶어 과부의 설움은 과부가 아는 격으로 그에게로 동정이 가는 것이었다.그러나 c강사의 심술궂게 된 얼굴과 김강사의 "히포콘드리"는 결합 될 기회가 없이 지냈다.흐린 하늘에서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고 가게 처마마다 "세모 대매 출"의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연말이 가까운 어느 날 아침 김강사는 수 업하러 들어가다가 낭하에서 T교수와 마주쳤다."몹시 춥습니다.""대단히 추운데요."인사를 던지고 지나가려니까 T교수는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저 잠깐만"하고 돌아서서 김강사를 멈추었다."저 이런 말씀은 허기가 좀 무엇하구먼두 "
하고 T교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소리를 낮추어."긴상". 가을 생각하세요 ? 저 딘과장 집에서 만나던 밤......"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김강사는 잠자코 T교수를 쳐다만 보았다. 교 수는 여전히 웃으며, "내가 과자상자 들고 간 것 보았지요. 세상이잘 다 그런 갭니다. 우 리 교장도 그런 것을 대단 생각하는 사람이니 연말도 되구 허니 한 번 과자나 한 상자 가지구 찾아가 보시란 말이오.""흐......"김강사는 할 말이 없어 얼굴을 비뚤어뜨린 웃음으로 대답하고 그대 로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시간에는 가르치는 데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T교수의 그 말에만 정신이 팔렸다. T교수는 대체 무슨 동기로 자 기에게 그런 말을 또 들려 주는 것일까 ? 친절인가 ? 조롱인가 ? 그러 나 그것은 어쨌든 T교수의 그 말로 교장이 김강사에 대해 몹시 불쾌하 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그날 밤에 김강사는 "명치옥"에 가서 서양과자를 한 상자 샀다. 윗 덮개에 교장의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자기의 명함을 붙였다. 그러나 그 의 마음 속에서는 종시 두 가지 의사가 싸우고 있었다. 창피하다. 아무 리 자기를 위해서라해도 차마 이 짓만은 할 수 없다. 이제 이왕 노염을 산 다음에야 이까짓 과자상자를 사다 주면 무얼 하1-: 냐. 도리어 노염을 돋울 뿐이다. 내가 이것을 사다 주떤은 등뉘에서 "r 가 _7I 러卞능글한 웃음을 띠고 나의 어리석음을 조소할 것이다. 아니 7 I.래도 .1렇지 않 아. 이것이 세상이 아닌가. 나는 나의 씬물을 반조 기뻐하고 또는 나의 어리석은 심정을 조롱하는 사람을 도리어 경멸하면 ?I만 아닌가. 선물 을 보내는 것 때문에 더 럽혀지는 것은 나의 인격이 아니라 도리어 받는 자의 인격이 아닌가......그퍼나 김강사는 드디어 그 과자상자를 교상의 집에까지 가지고 갈 용기는 없었다. 전차를 타고 가다 말고 중간에서 네려 힌창이나 헤매다 가 생각난 것이 욕심쟁이로 일가간에 돌림뱅이가 난 아주머니였다, 아 주머니는 뜻 아니한 선물에 무슨 영문을 모르겨 7I 러니 넌지시 과자상 자를 받아들었다.
어느덧 동기 휴가가 되고. 새헤 가 되고, 다시 학교가 시작되었다. 그 러나 그 동안 김강사는 아무 데도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 책상 위에 는 먼지가 쌓이고 외국서 온 신문 잡지는 겉봉도 안 뜯긴 채 방안에 흩 어졌으나 그것을 정돈하기도 싫었다. 김강사는 아 침에 일어나서는 밥 을 한 술 떠넣고 바람 부는 거리를 헤매는 것이 일파가 되었다. 피견하 면 거리에 갑자기 많아친 찻집을 찾아 정신 나간 사람같이 앉아 있었 다. 날이 갈수록 그는 점점 더 피곤을 느꼈다. 감당해 나가기에는 너무 나 많은 모순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편으로든가 그는 키 모순 의 터져 나갈 길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7I 것을 구할 방도와 용 기가 없는 것이었다.L"ennur lur vrnt벌써 칠팔 년 전에 읽던 "도오데"의 소설에서 우연히 기억한 이 짧은 구절이 무슨 깊은 의미나 가진 것처럼 매일같이 머리에 떠올랐다 T교수는 겨울 동안에 몸이 한층 더 뚱뚱해진 것 같았다. 아무리 추 워도 답답하다고 바지 밑에는 잠뱅이 하나밖에 안 입고 다니건만 얼굴 은 기름이 번 질하게 흐르고 붉은 빛이 이글이글하였다. 교무실 안은 그 의 너털웃음과 떠드는 소리로 일상 떠들첵하였다. 겨울 이후로는 그는 조선의 민속(띠浴)을 연구한다고 젊은 무당과 양금 가야금 뜯는 기생 을 돼지떼처럼 몰고 돌아다녔다. 학교에서는 누구를 붙들기만 하면 무 당의 신장 내리는 신비에 대해 끝없는 열변을 토하였다. 그리고 T교수 가 젊은 무당이나 기생을 데리고 무엇을 연구하는지 아무도 모르듯이 또 그가 일상 떠들닌 웃고하는 이면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하루는 T교수가 또 예의 인품 좋은 웃음을 띠고 김강사를 찾아와 집 으로 나가는 길에 장깐만 어디로 같이 가자고 청했다. 김강사는 지금까 지 T교수와 접촉해서 유쾌한 기억을 가진 일은 한 번도 없었으나 어쨌 든 또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두 사람은 언제나 같이 갔던 "세르광"이라는 찻집으로 갔다. 그러나 T교수의 이야기는 또 언제나 마찬가지로 불쾌한 것이었다."어제 저녁에 H과장을 만났더니 "긴상"을 좀 만나자고 .1럽디다......우리 교장의 성미는 내가 잘 아니까 요전에도 무슨 과자상자라도 갖다 주라니까 아마 안 닝랬지요. 허. ...."긴상 "은 실례의 말이지만 아직 세 상을 모른단 말이오. 무슨 말이 어떻게 들어 갔는지 나는 모르지마는 어째 도무지 공기가 좀 제미없는 듯하던 걸요. 아마 H과장도 이 근래 는 한 번도 안 찾아갔지요. 그것도 다 " 긴상"의 섣부른 짓이란 말씀이 오. "긴상"으로 말하면 H과장의 추천으로 들어 왔겠다. 잘만 하면 차 차 시간도 더 얻을 수 있구 할 텐데 왜 "헤다"를 한단 말씀이오. " T교수는 층심으로 김강사를 동정하는 눈치를 보였다. 어찌 생각하면 ?I 말도 그럴 듯한 말이나 김만필에 게는 어째 T의 하는 말이 뺨치고 등 만지는 수작같이 생각되었다."네.잘 알았습니다. H과장은 곧 찾아가지요."그는 침이나 뱉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으로 곧 H과장 을 찾아갔다. 불안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H과장 집 현관에는 마침 손이 있는지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응접실에는 H과장 혼자서 앉아 있었다. 하녀가 와서 "테이블" 위의 찻종(茶鐘)을 치우고 있는 것이 누가 왔다가 금방 간 모양이다.H과장은 웬일인지 노기가 등등해 앉아 있었다, 일상의 그 온후하던 안색은 간 곳 없고 독살스런 눈으로 김만필을 노려보았다."무엇하러 왔나 ? "그는 김만필이 방을 들어서자마자 대고 쏘았다. 김만필은 너무 의외 여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겨우 대답하였다."T말이 과장께서 좀 만나자고 하신다기에.... -"만나자고 해야만 만나겠나. 자네한테 긴할 때는 자꾸 찾아 오고 자.네한테 일 없이 되니까 발을 뚝 끊는 그런 실례의 경우가 어디에 있 나 ! 그러기에 조선 사람은 배은망덕을 한다고들 하는 게야." "잘못 되었습니다. "김만필은 앉지도 못하고 과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하녀가 차를 가져 왔다. H과장은 노한 소리를 한층 높여."자네는 또 그런 경우가 어디 있나. 나는 자네만 믿었지, 남을 그렇 게 감쪽같이 속여 남의 얼굴에 똥칠을 해 주는 그런 법이 어디 있나." "제가 과장님을 속이다니요 ? "속이다니요 ? 자네는 나한테 와서 취직 청을 할 때 무어라고 ?랬 어. 사상 방면에는 절대로 관계 없다고 그랬지. 그래 그렇게 남을 감쪽 같이 속이는 데가 어디 있나."을 것이 온 것이다, 라고 김만필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되고 보면 어디까지 한 번 버티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무슨 말씀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상이니 무어니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더군다나 과장님을 속이다니요.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무엇 ! 그래도 자네는 나를 속이려나 ?"
H과장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찻종을 덜그럭 하고 놓고 의자를 뒤로 떠밀며 몸을 벌떡 젖혔다, 그때 이웃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언제나 일반으로 봄 물결이 늠 실늠실 하듯. 온 얼굴에 벙글벙글 미소를 띤 T교수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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