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경봉 스님은 나무토막에 붓으로 글씨를 써서 시자에게 내밀었다.
"너 이것을 변소에 갖다 걸어라." 경봉 스님이 내민 팻말에는 각각 휴급소와 해우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스님은 휴급소는 소변 보는 곳에, 해우소는 큰일 보는 데 내걸라고 했다.
그것을 변소에 내건 뒤부터 극락선원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들 한 소리씩 했다. "해우소라, 참 좋은 이름이네. 몸속에 들어 있는 큰 걱정 떨어 버리는 곳이 이곳임에는 틀림없지."
"휴급소, 급한 것을 쉬어가라. 하기야 오줌 마려울 때는 급하지." 사람들이 한마디씩 평을 하고 가자, 어느 날 경봉스님이 그것을 내건 참뜻을 재미있고 구수한 법문으로 말해 주었다.
"우리 극락선원 변소에 갔다가 휴급소, 해우소라는 팻말을 본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려. 그리고 저마다 한 소리를 해. 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이 무엇이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일이야.
그런데도 중생들은 화급한 일은 잊어버리고 바쁘지 않은 것을 바쁘다고 그럽디다. 내가 소변 보는 곳에 휴급소라고 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 그곳에서 쉬어가라는 뜻이야.
그럼, 해우소는 뭐냐. 뱃속에 쓸데없는 것이 들어 있으면 속이 답답해. 근심 걱정이 생겨. 그것을 그곳에서 다 버리라는 거야.
휴급소에 가서 다급한 마음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 버리고 가면 그것이 바로 도 닦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