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4 오후 4:11:34 Hit. 5159
지금으로부터 약 32년 전 14, 15세 쯤(중 2, 3학년 쯤) 겪었던 실제 이야기이다.
시골에서 도시로 통학하며 중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어떤 날은 학교가 끝나도 바로 집에 오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막차를 타고 오거나, 아예 막차 마저 놓치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과 가까운 지점에서 내려 걸어 올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의 이 날, 학교가 끝나고 시내에 사는 같은 반 친구 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니 겨우 막차를 타고 오게 되었다. 당시 버스시간 배차간격은 한 시간 정도이며, 밤 10시가 막차였다.
아마 11월말쯤 초겨울이었는데, 버스에는 반 정도의 자리가 비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지 타지 않았다. 시내에서 집까지 버스를 타면 40분 정도 걸리는데 어떤 날은 졸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쳐 몇 정거장 더 가거나 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막차가 아닌 경우에 다시 버스를 타고 올 때도 있었다.
문제의 이 날도 친구들과 노느라 피곤했던지 차에 타자마자 졸다가 나중에는 자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많이 타게 되면 같은 동네 사는 사람들이 타는 경우가 있어서 졸거나 자더라도 깨워주기 때문에 내릴 수가 있는데 이 날은 깨워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러다 종점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막차는 종점에서 밤을 새고 다음 날 새벽 첫차로 다시 시내로 들어 가는 버스였다. 15리(6km) 정도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 그 자체였다. '6km 정도면 별로 멀지 않은 거리일 수도 있지만 칠 흙 같이 어두운 길을, 온 세상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초겨울 밤 12시가 다 된 밤을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가야 하는 까까머리 중학생은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태산 같았다. 지금이야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가족들에게 마중 나오라 할 수도 있지만 그 때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시대이니....
어쨌든, 죽으나 사나 집으로 가야 하기에 단단히 마음을 먹고 종점을 출발했다.
집으로 가야 할 길은 작은 버스 두 대가 겨우 비킬 수 있는 포장되지 않은 작은 신작로였으며, 지금처럼 가로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길가의 모든 집들은 불이 꺼져 있고 시커먼 형체만 있기 때문에 오히려 무서움을 더욱 부채질 할 뿐이었다. 불 빛이라고는 수 십 킬로 떨어진 도시의 불빛 만이 보일 뿐, 당시 시골 에서는 불빛 한 점 볼 수 없는 시간이었다.
집까지 오는 길은 몇 가구 살지 않는 마을 몇 개를 지나야 하고, 길 양쪽에 이어진 숲 속, 그리고 공동묘지 2개 등을 지나야 하는 등 초겨울 칠 흙 같이 어두운 한밤중에 소년이 걸어 가기엔 너무나 무서운 주변 상황으로, "차라리 어디서 기절하고 아침에 깨어나는 편이 훨씬 낫겠다" 싶을 정도로 무서운 밤이었다.
종점에서 몇 백 미터 나오자 마자 1차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곳은 야산에 위치한 비스듬한 공동묘지였는데 사연이 있는 공동묘지이다. 당시 몇 달 전에 이 공동묘지 아래 쪽에 위치한 집에 사는 (어디서 왔는지 그 동네 사람들도 모르는)어떤 아저씨가 오래된 묘지에서 뼈를 캐어 가루로 만들어 만병통치약이라고 팔다가 경찰서에 잡혀간 뒤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었다.
커다란 포플러 나무들과 이름 모르는 오래된 나무들이 집 둘레에 우거져 있는, 그리고 오래 된 듯한 슬레이트 지붕이 군데군데 깨져 있는 정말 기분 나쁜 음침한 집이었다. 한 밤에 시커먼 모습으로 변해 있는 집안에서 새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할머니가 나오면서 '학생, 이 약 한 번 먹어 볼래? 만병통치약인데...' 하는 듯한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다.
식은 땀을 흘리며 '다리야 나 살려라!'하고 겨우 빠져 나왔지만 앞에서 기다리는 곳은 더욱 더 소름끼치는 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늙은 소나무들이 하늘로 뻗어 있는 숲을 사이에 두고 걸어와야 하는 정말 지독한 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지독하다'라는 표현은, 이후 글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으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숲 속 소나무에 몇 년 전 근처 동네에 사는 청년이 목을 매고 죽은 장소이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왜 그렇게 머리가 팽팽 잘도 돌아 기억이 잘 나던지..... 시험 볼 때는 어제 밤 죽어라 공부한 것도 생각나지 않으면서 이 밤 중에 몇 년 전의 일이 왜 그렇게 생생히 기억이 나는지... 정말 기가 차고 답답할 노릇 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때를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올 정도니.
나무에 목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전에 그 동네에 사는 친구녀석과 함께 낮에 그 곳을 지나는데, 이 친구녀석이 갑자기 '야! 저기, 저어~기 보이는 소나무 있지? 저 덩치 큰 소나무 말야... 저 나무에 우리동네에 사는 청년이 목 매달아 죽은 바로 그 나무야!'.
하필 그 밤중에 그 친구녀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그 시간에 생생하게 귓전을 때리던지... 그 순간 바로 옆에서 하는 것처럼,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닌데.... 하필, 이 밤중에...” 그 한 밤중에 진짜 귀신을 본 것 보다 더 무서운 상황.
어두운 한밤 중에 이전에 목 매달아 죽었다는 그 소나무 옆을 혼자서 지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차라리 귀신이라도 나와서 기절하고 있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나무에 목이 매달린 사람이 '이 밤중에 어디 갔다 이제 오니?'라고 말하는 듯 하였다. 지금도 그 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거의 기절초풍한 상태에서 소나무 숲을 빠져 나와 약간 언덕배기를 올라 정상에 이르니... 이게 웬일!... 면(面)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가 짜~ 잔! 하고 나타났다. 묘가 꽉 차서 더 이상 묘를 만들 수 없을 만큼 아주 큰 공동묘지이다.
그래도 집필자가 담력이 좀 센 편이라서 동네 친구들과 담력테스트 한다고 여름방학 때에는 한 밤중에 놀러 가곤 했던 공동묘지였다.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갔을 때도 조금 무서웠던 공동묘지였는데, 고요한 초겨울 한 밤중에 혼자서 그 공동묘지를 지나오려니 정말 싫었다.
평소에 친했고, 공동묘지에 와서도 같이 놀곤 했던 친구들이 그 시간에 왜 그렇게 보고 싶던지, 평상 시에는 골탕만 먹이고 장난만 치던 친구들이었는데.... 영섭이, 남우, 호일이, 제신이... 등등 '이럴 때 한 녀석이라도 있었으면...’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집에 가려면 이 공동묘지를 꼭 지나야 갈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신을 가다듬고 공동묘지 옆을 지나려는데.... 컥!!! 숨이 막혔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커다란 묘지 앞에 웬 소복 입은 여인네가 턱! 하니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이걸로 내 인생 끝, 이젠 죽었다!” “그래도, 죽을 때 죽더라도 귀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고 죽자!”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허탈!
다름 아니라, 묘지 앞 상석에 커다란 하얀 국화꽃 바구니가 있는 게 아닌가! 잠깐이나마 무서웠던 심정, 겪지 않아도 이해가 가리라... 원래 무서운 상황에서는 별게 아닌 것들도 귀신이나 무서운 걸로 보이는 법.
땀으로 목욕하며 공동묘지도 무사히 빠져 나와 드디어 우리동네 입성! 그런데 관문 하나가 더 남아있었다. 왜, 동네에 다 왔다고 하면서 관문 하나가 더 남았다고 하는 걸까?
동네입구에서 집까지의 거리도 2-300m 정도 되는 거리인데, 길 양 옆에는 밭들이 있고 밭둑에는 늙은 소나무들이 있는데 그 중에 아주 기분 나쁜 녀석이 하나 있었다. 꼬불꼬불 에스(S)자 모양으로 휜 아주 오래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100년 정도는 족히 되는 소나무였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드디어 동네에 다 왔다는 기쁨에 룰루랄라.... 걸어 가는데, 이게 웬 시츄에이션!
2, 30m 앞의 늙고 휘어진 소나무에 흰 물체가 하나 보였다. '에이~ 별 거 아니겠지 뭐!' 하면서 다가 가는데..... 이런!
지금까지 집에 오면서 봤던 어떤 상황보다 무서운 상황이 벌어졌다. 휘어진 그 소나무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옛날 검정 갓을 쓴 할아버지가 나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아닌가!
"설마....." 하면서 정말 무서웠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 봐도 할아버지가 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펄럭 이며 소나무에 손과 발을 딛고 엎드린 자세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아닌가! 영락없는 '저승사자' 모습 이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냅다 달음질 치기 시작하였다. 작은 자갈들이 깔린 비포장 도로였는데 달리 기 시작하자 누군가가 뒤 따라 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네 개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지만 차마 뒤 돌아 볼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너무나 무섭고 금방이라도 뒤에서 저승사자가 따라와서 뒷덜미라도 낚아 챌 것 같아 신발도 벗지 않고 방으로 뛰어 들어 갔다. 당시는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주무시던 할머니는 신발도 벗지 않고 땀으로 범벅하고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뛰쳐 들어오는 손 자를 덜 깬 눈으로 보시면서, '이 밤 중에 웬 호들갑이냐!... 어디 갔다 이 밤 중에 오는 거야!'
'하...하... 할....머..니, 귀.... 귀.....귀..신이.... 쫓... 쫓아..... 와요!'
'귀신이 어딨다고 그래!... 어서 잠이나 자!' 하시면서 금새 코를 골면서 주무시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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