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 때 있었던 일이다.
5년전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삼촌의 편지로 나는 삼촌이 거주하신다는 첩첩 산중의 산골 마을 봉곡리를 찾아간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봉곡리는 험준한 산맥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어서 교통편이 원할지 못한 고립된 마을에 위치하고 있었다. 삼촌이 왜 그러한곳에서 살고 계신지 모르겠지만...삼촌이 재배하는 딸기 농사가 그곳에서 유난히 산 기운을 잘 받아 자라는지 언제나 그곳에서 딸기는 풍작이었다.
내가 삼촌네에 놀러갔을때, 그곳 바로 옆 3미터도 되지 않는 위치에 이장댁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우연하게도 내가 찾아온 그날 이장댁의 늦갖이 아들이 채 돌잔치를 치루기도 전에 사망하여 장례식 행렬을 치루던 참이었다. 통곡과 절규의 종소리가 혼합된 무언의 소리들이 바로 나와 가까워지는... 알고보니 점점 바로 옆 이장댁을 향해 최종 목적지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
이장댁의 김씨는 자신이 10년동안 애타게 기다리며 산신령께 빌었던 10년의 노고가 한순간에 잿이 되었음에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음산한 기운이 도사리는 봉곡리 산의 험준한 숲풀속에 아들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아들에 대한 강한 애착이 남긴 애정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김씨는 자신의 아들을 비록 시체지만 곁에 두고 싶어서리라...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삼촌의 깨름직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안방 마루 밑에 죽은 아들의 시체를 담은 관을 그곳에 묻어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로 다시 돌아왔고, 5년이 흐른 지금 다시 삼촌의 결혼 소식으로 뒤늦게나마 가족과 함께 봉곡리를 찾아왔을때, 삼촌의 표정은 그때와 달리 헬숙해진채로 깡 말라있었고, 상당히 근심하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피부는 건조하다 못해 피부 밑으로 다크서클이 나 있었다.
게다가 재수씨는 어디로 갔는지 도통 보이지도 않았고, 어느새 안방이 사랑방으로 변해 있었다. 삼촌은 우리가 사랑방에서 머물겠다는 의사를 뿌리치고 안방에서 머물러라 재차 요구했지만 보수적인 성향과 전통 예의를 중시하는 아버지 입장에서 손님으로서 당연히 사랑방에 머물러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셨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어둠이 몰려올때, 우리는 사랑방에 이불자리를 펼치고 잘 준비를 할때, 삶은 감자와 고구마를 가지고 삼촌이 찾아와 우리에게 재수씨가 친정으로 떠난 이유를 얘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삼촌이 거주하는 이곳 봉곡리로 이사를 와, 안방에서(지금의 사랑방) 들려오는 "사각 사각" 거리는 마치 목조 긁는듯한 소리가 매일 밤마다 그녀를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느날에는 5살 가량의 어린아이 신음소리를 듣기도 한다며 그것이 점차 그녀의 숨통을 죄어와 그녀는 참지 못하고 친정집으로 떠나 버린 것이다.
결국 이 모든것이 이장댁의 탓으로 산신령의 노여움이라 생각한 삼촌은 상당히 분괘하고 있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사랑방 안에서 숨막힐것만 같은 텁텁한 공기 때문인지 모를 그것에 도통 잠을 잘수가 없었다. 조용한 정적속에서 오로지 나의 귀가에는 또각 또각 들려오는 시계추 소리를 얼핏 추론해 1시간...2시간이 흘렀을즈음 나의 뇌는 아편에 취한듯 몽롱해져만 갔고....
그때 였을까? 나의 귓가로 들려오는 조용하고도 그 음산한...그녀가 들었다는 목조 긁는듯한 소리가 채 3미터 거리도 되지 않는 이장댁의 안방에서 타고 흘러 오듯 들려오고 있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러한 소리가 몇시간동안 온전치 못한 나의 귓가로 괴롭힐때, 어린 아이의 신음 소리...마치 괴롭다는 듯한 그 신음찬 목소리를 듣고 정신 차렸을때는 이미 사랑방 창가로 새벽 아침의 햇살이 나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결리는 목을 두드리며 방을 나와 삼촌을 만났고 그 이야기를 무심코 얘기해버렸지만 내가 얘기한 이 무심코 한 이야기가 몇일동안 삼촌을 괴롭히던 마지막 일격의 외침이라도 된듯 삼촌은 매우 격분한듯 마을로 내려가 원로들을 소집하고 이장댁으로 가서 김씨와 단판을 지어버렸다.
그렇게 한시간 두시간 흘러 한동안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지 결국 이장은 설득 아닌 반 강제적인 설득으로 통해 어쩔수없이 안방에 묻은 무덤을 처리하기라도 한듯, 마을의 장정들이 하나둘씩 삽을 들고 이장댁으로 찾아왔다. 그렇게 모두가 이장댁으로 삽을 들고 들어간지 1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마을 사람들과 삼촌의 그 절규어린 비명 소리들을...
그리고 나는 내가 본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좁은 관속에서 상당히 괴로웠는듯 5살 가량의 어린 아이가 손톱으로 관을 긁어낸듯한 피묻은 흔적들이...
나는 확신한다. 그 아이가 분명 채 1살도 되지 않아 죽은 김씨의 아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