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에는 그렇게 자취하는 친구 덕분에 자주 가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그토록 찜찜하고 보기 흉하던 무덤군락이 그 이후로는 어쩐지 친근감마저 느껴졌다.
무덤 앞 고운 잔디의 부드러운 촉감........ 그곳이 그토록 편안한 쉼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해서 친구의 자취방에 갔다 친구가 없으면 그 자취방까지 가는 데 꼭 지나야 할 무덤들 옆에서, 쥔이 누구든 간에 '할부지 나 있어서 심심하지 않죠?' 하면서 한밤중까지 친구를 기다리기도 했고, 친구들이랑 자정 넘은 시각에 낮은 공동묘지 산꼭대기에 올라가 가장 전망 좋은 무덤 앞 잔디 위에 앉아 수건돌리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었다.
누군가 말하길, 길을 가다 길에서 꼭 자야 할 일이 생기면 절대로 고목나무 아래에서는 잠들지 말라 한다. 차라리 무덤 옆에 가서 자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한다. 근데 그 말을 하던 사람도,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했다. 듣던 나 역시 공감하는 말이었다.
근데 그 말을 떠올리면서 나는 내 생각이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이런 거라면 나는 얼마든지 무덤 옆에서 잠도 잘 수 있다고......
에구 근데........ 지금은 다시 아녀~~~~~~~
옛부터 여우는 영물이라고 전해온다. 참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무튼 몇 해 전의 이야기이다.
어느 해 12월 중순 쯤이던가 꿈을 꾸었는데,
들길을 어디론가 걸어가는데 뒤에 여우가 한 마리 따라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천천히 걸으면 여우도 천천히, 빨리 걸으면 여우도 빨리, 내가 뛰면 여우도 뛰면서 따라오는 것을 몇 번 흘끔거리며 뒤를 돌아보다가 아예 돌아서서 여우를 쫓았다.
'저리갓!'
하지만 여우는 여전히 내 걸음을 흉내내며 뒤를 따라오는 게 아닌가.
해서 나는 다시 뒤로 돌아서서 여우에게 매우 강력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저리 못갓?! 그냥 확 잡아서 확 목도리로 만들어버릴까부다!!!!'
그러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다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여우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버려 보이지 않았고 꿈을 깨었다. 그리고는 그런 꿈을 꾸었단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몇 달 후 여름이 되어 외국에 가 있던 남편이 귀국했다. 근데 이야기 도중에 몇 달 전에 동료들이랑 거기서 여우를 한 마리 잡아먹었단다. 오잉?
갑자기 지난 겨울 꾸었던 꿈 생각이 나서 여우를 잡아먹은 게 언제냐고 물었더니, 12월 중간쯤 될 거라고 한다. 나 이거야 원.....
정말 여우가 영물은 영물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