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1 오전 9:10:15 Hit. 3442
자매
서울 근교의 큰 저택에 두 자매가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상당한 재산을 남겼다. 그런데 몇 해 전 동생이 대학에 입학한 직후, 어머니마저 불의의 사고로 자매 곁을 떠나버렸다. 외로운 처지가 된 두 자매는 서로 끔찍이 아끼며 살아갔다.시내로 집을 옮길까 했으나, 그러면 부모와 인연이 완전히 끝이라는 생각이들어 원래의 저택에서 그냥 살았다. 집 뒤 동산에 있는 부모님의 산소는 그들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너 무슨 일 있니?" 동생이 그녀답지 않게 조용히 지내는 게 이상해 언니가 물었을 때, 동생은 그저 웃었다. 어릴 때부터 두자매의 성격은 판이했다. 언니는 부드럽고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동생은 대담하고 명랑했다. 그런데 일주일쯤 전부터 동생은 무얼 하는지 학교도 가지않고 자기 방에 혼자 처박혀 있었다. 매일 즐겨 하던 컴퓨터 통신의 채팅도 안 하는 눈치였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 언니는 애가 탔고 급기야 미워지기도 했다. 무슨 수가 없을까 궁리를 하던 언니는 동생을 깜짝 놀래 주기로 했다. 그건 우연히 눈에 띈 옛날 일기장을 읽다기 어릴 때 동생과 같이 했던 놀이가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튿날 조금 일찍 퇴근한 언니는 차를 집 근처에 주차시켰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간 하얀 한복으로 갈아입고, 대학시절 연극반의 경험을 살려 분장을 했다. 얼굴은 희고 푸른 빛이 은은하게 감돌게 꾸미고,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 헤쳤다. 입술은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질 듯 꾸몄다. 분장을 마친 언니는 대문을 따고 살며시 집에 숨어들었다. 저택은 차오르는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이윽고.. 동생이 현관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언니는 정원의 나무 밑에 우뚝 서 있었는데, 그녀는 정말 무덤에서 솟아난 존재 같았다. 동생이 바로 앞을 지나치려는 순간, 언니는 앞으로 스윽 다가갔다. 그러나 동생은 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지나쳐 집 뒤의 울타리 안으로 가는 것이었다. 놀란것은 언니였다. 황당하기까지 했다.
언니는 자신도 모르게 동생의 뒤를 밟았다. 동생은 뒷산으로 통하는 문을 지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산을 걸어 동생이 멈춘 곳은 엄마의 무덤 앞이었다. 언니는 무덤가 키 큰 억새 뒤에 숨어서 동생을 지켜보았다. 동생은 조용히 엄마의 비석을 쓰다듬고는 다소곳이 앉아 속삭였다. "엄마, 언니도 결국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어. 참 좋은 사람 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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