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을 따라 걷는 오후의 햇살이 맘을 편하게 해줍니다.
아이들 웃음 소리, 젊은 아베크의 상큼한 걸음, 나이드신 분들의 느긋한 산책,
이 모든 것들이 정지해 있고 나 혼자 물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저는 어머님이 좋습니다.
검정색 세단에서 내리는 우아한 모습의 할머니 보다
계절 마다 한 벌씩 뿐인 모친의 허름한 옷차림이 좋습니다.
늦은 밤 속삭이는 라디오 진행자의 나긋한 음색 보다
밥 챙겨 먹으라는 갈라진 노인의 목소리가 더 좋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앞세워 걷는 모습을 보면 행복이란 말이 떠오르지만
저렇게 젊은 시절 과부가 되어 아들 셋을 버리지 않은 어머님이 고맙기만 합니다.
너무 걸었나 봅니다.
머리가 어지러워 자꾸 주저 앉고 싶습니다.
팔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숨이 차오릅니다.
삶에 지쳐 세상이 힘들 때, 몸이 아파 울적한 설음이 올 때.
제가 먼저 찾는 소리는 '엄니' 입니다.
아들 녀석이 마음 상하게 할 때도 떠오르는 사람은
힘 없고 병드신, 그래서 아주 작아진 어머니 랍니다.
잘 해드리고 싶은데 마음만 일 뿐.
누구 처럼 호사를 시켜드리지 못해 늘 죄인의 마음이지요.
그저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쑤신 곳 주물러 드리는 것 외엔 없습니다.
잠이 드셨나 확인할 때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곤 합니다.
"엄니, 저요 밖에서 힘들때요. 아주 힘들어 눈물이 나려 할 때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엄니여요. 아프지 말아주세요...네."
자주 찾아 뵙지 못하는 저는 불효자 맞습니다.
사모곡도 재주가 없어 최인호씨가 쓴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처럼 멋지게 못씁니다.
그저 죽어서도 곁에 있기를 바랄 따름 입니다.
하늘이 어머닐 닮아 끝없기만 합니다.
찌르릉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꼬마 애가 자전거를 타고 비켜 줬으면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여직 세상이 정지하고 제가 혼자 걷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저만 서 있었나 봅니다.
한강을 따라 다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뒤로 하고 잰 걸음으로 집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