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
땅에 꽂은 지팡이가 고령의 나무가 되어 자란다
아무도 믿지 않는 사실,
나는 나무의 부활을 믿는다
죽은 나무에 싹이 나는 건
지팡이를 쥐고 있던 이의 손에서 흘러나온 맥박이
갈라진 나무 틈으로 몰래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은밀히 내통했기 때문이다
잘린 몸통이 마지막 숨을 내려놓지 못하고 싹을 틔운 것도
맥박 소리에 덩달아 가슴이 뛰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팡이는
팔순 노인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쓰러져가는 저녁 햇살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 지팡이는 욕망의 긴 목도장木圖章이다
어디를 가든 주둥이 끝으로 쿵쿵,
몸속에 충전된 심장 소리를 뱉어낸다
버리는 순간 바로 쓰러지고 마는,
사방으로 내딛는 生의 버팀목
저녁해가 지팡이를 짚고 뚜벅뚜벅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