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개화
홍일표
내 발바닥은 약시다
가까운 것도 읽지 못하고
허공만 딛고 흘러가고 있는데
읽지도 못하는 바닥을 어디에 쓰겠느냐며
그럴 바에 바닥을 버려야겠다고 작정을 했는데
색안경 같은 구두를 벗고
맨발로 강가를 거닐게 되었던 것
발바닥이, 바닥의 눈알이 갑자기 똥그래졌던 것
강물이 물 밖으로 사정없이 내친 돌멩이들
팔레스타인 난민 같은 돌들이
잠들었던 시신경을 자극한 탓인지
발바닥이 또렷또렷 살아났다
대리석 바닥을 건달처럼 흘러 다니던 발바닥이
눈을 뜨고 바닥을 읽기 시작했다
울퉁불퉁 노여움으로 뿔이 돋은 돌들을 난독하며
몇 차례 쓰러질 뻔하다가 강 저편에 이르렀을 때
발바닥에서 꽃이 피려는지
근질근질 가렵고 따끔거렸다
내 발바닥은 너무 오랫동안 꽃피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