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07 오후 10:08:07 Hit. 955
<1>♂ 25년만에 아버질 만났다... 지방에 출장오신 아버지와의 하룻밤으로 나는 태어났고 나의 존재를 숨긴 채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리고 대학까지 어머니 혼자 날 키우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며 아버지의 존재를 내게 알리셨고 졸지에 난 부모님과 형, 두 명의 누나를 가족으로 갖게 되었다.. ♀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숨겨둔 아들..티비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라니... 26년간 가족의 막내로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남동생이 생겨버렸다... ♂ 짐을 쌌다.. 이제부턴 새 가족과 살게 된다.. 어머니는 만나보았지만..형과 누나들.. 날 어떻게 생각할까.. ♀ 새롭게 가족이 될 남동생이 집으로 온다... 25년동안 서울 하늘아래 같이 살아온 동생.. 어머니는 체념하고 받아들이셨다.. 이제와서 무얼 어쩌겠느냐고.. 그 애에겐 잘못이 없다셨다.. 하지만...... <2>♂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 누나였다.. 하얀 얼굴에 커다란 두 눈... 부드러운 갈색의 눈동자였지만 눈빛은 얼음같았다... ♀ 홀어머니의 자식이 그렇지 뭐...라는 내 편견을 깬 그 애는 차분하고 의젓하게 잘 생긴 청년이다... 저 애도 피해자일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익숙하진 않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이 있다는게 이렇게 따뜻한 일인줄 몰랐다.. 큰어머니는(그냥 어머니라는 말이 아직은 서툴다..) 속이 얼마나 타셨을까...그래도 내겐 너무나 잘 해주신다... 형도..누나들도...내 얼굴을 보는게 괴로울텐데... 그렇지만...... ♀ 인정하고 나니 갑자기 모든 일이 쉬워진다.. 때때로 내게도 남동생이 있구나..하는게 실감이 난다.. 친구의 남동생을 부러워했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3>♂ 벌써 밤이 늦었는데 막내누나가 집에 들어오질 않는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렇게 늦게... 걱정이 되어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 이게 가족의 사랑이란건가... ♀ 오랫만에 동창을 만나 기분내다 늦어버렸다.. 아무래도 혼날것 같은데....서둘렀지만 늦어버렸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조금 무서웠지만 태연히 지나치려 했는데 나를 잡으며 말한다... 늦었네 누나...... ♂ 그 날부터 내겐 골목에 나가 누날 기다리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매일매일...누날 기다리기 위해 서둘러 돌아오는 날도 있었고 누나가 먼저 들어와 있으면 안심도 됐지만 웬지 섭섭하기도 했다... 제일 먼저 일어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깜박 졸다 누군가에게 순서를 빼앗겨버린 것처럼... ♀ 그 애는 그렇게 매일을 골목에서 기다렸다.. 어쩌다 내가 먼저 들어오는 날이면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골목어귀를 뒤돌아보곤 했다.. 이렇게 기다려주는 사람을 26년만에 처음으로 만났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너무나 무관심했었다.. 비록 동생이었지만...너무 기뻤다... <4> ♂ 안된다는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배다른 동생이지만 그래도 나는 동생인데... 이러면 안되는건데...마음을 잡으려고 했지만 너무 힘이 든다... ♀ 나는 누난데...이게 무슨 일인지... 내가 지금 삼류 연애 소설을 쓰자는건가... 난 스물 여섯이야...정신차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건가... ♂ 좀 늦은 어느 날 문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누날 보았다.. 집안에선 큰 소리가 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고 계셨다.. 누난 내가 듣지 못하게 하려고 나를 잡아 끌었지만 난 들어버렸다... 데리고 온 자식이니 도로 데리고 가...라는 어머니의 절규... ♀ 이미 들어버린건 어쩔수 없었지만 그 애가 너무 불쌍했다... 말없이 터벅터벅 놀이터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울어야할 사람은 내가 아닌데... 훌쩍이는 나를 위로한건 그 애였다.. 아무말 없이 그 앤 그냥 나를 안은 채 속으로만 울고 있었다... 아무 위로도 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 전부터 바라던 유학의 기회가 왔다.. 같이 가자고 어디든 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면 될거라고.. 긴긴 유학생활을 혼자는 못견딘다고 매달려도 보았지만 넌 내 동생이잖아... 냉정하기만한 한마디였다.. ♀ 같이 떠나자고 했다... 어디든 먼 곳으로 가면..사람들 눈을 피하면 될거라고... 그렇지만..평생 그렇게 가족도 등지고 친구도 버리고 살 수는 없다...게다가.. 난 그 애의 장래를 망칠 순 없다... 넌 내 동생이잖아... 겨우 한마디를 하고 돌아설때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5>♂ 유학생활이 외로울거라며 결혼을 권하시는 부모님의 뜻대로 결혼을 했다..결혼한 친구는 내가 힘들때마다 옆에서 용기를 주던 오랜 친구였는데 우리 사일 모두 알면서도 참고 나를 받아주었다... 우린 결혼을 서둘렀고 멀리 바다를 건너 떠나와버렸다.. 잊기 위해선 바빠져야 했다... 난 미친듯이 공부했고 원하지 않던 좋은 결과까지 얻을 수 있었다... ♀ 그 앤 떠나버렸다... 매일매일을 보고싶어 잠못들고 밤마다 베게를 적시며 울었지만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쁜 일상으로 젖어야 했다... 잊어야 했으니까... 밥을 먹는거조차 힘이들었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수면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 이젠 학위도 땄고 부모님도 손주의 재롱을 보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그녀를 다시 보게 되면 참을 수 없을것 같아서 계속 망설였다...연락도 끊고 살았는데... 아내는 좋은 여자이다..안정..따뜻한 가정...아이.. 아내가 너무나 고마왔다... 하지만...늘 무언가가 빠져있었다...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내가 수화기를 받았다.. 아내는 울며 돌아서서 내게 말했다.. 막내형님이 돌아가셨대요...... 학생때부터 보기와는 달리 건강하지 못했던 그녀는 여러가지 잔병이 많았다... 내가 떠난 후로 바쁘게 지내며 끼니를 거르고 수면제를 자주 복용했던 그녀는 위암으로 죽었다.. 아무도 그녀의 병을 몰랐다... 화장한 후 그녀의 방을 내가 정리했다... 책장 가득 쌓인 책 아래쪽에 깊이 넣어둔 공책 한 권을 펼쳐본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이름이 깨알같은 글씨로 가득 쓰여진 공책이 열권이었다... 십년간 그렇게 매년 한권씩을 내가 생각날때마다 써온 것이 열권이었다... 말로도 한 적 없었고 그녀의 일기장에도 사랑한다는 말은 한 마디도 쓰여있지 않았다.. 난 그녀를 사랑하길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하며 열 권의 공책을 내 손으로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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