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4 오전 1:18:35 Hit. 1086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면, 사람과 사물 사이도 특별해 집니다. 내 손때로 반들반들해져 한번에 착 잡히는 손 지갑, 내 다리 모양대로 옷걸이에 걸리는 청바지 같은 것 말입니다. 더구나 그것에 얽힌 사연이라도 있으면 관계는 더 깊어지죠.92년 12월, 마음졸이며 좋아했던 첫사랑, 그는 사람들이 붐비는 명동거리 한복판에 저를 세워 두고 한참 망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구두... 하나... 사주고 싶은데, 괜찮아?” 그렇게 그에게서 받은 검은 가죽구두는 내가 태어나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그 날 밤 전 자다가도 몇 번이고 일어나 마루로 살금살금 나와 구두를 신어 보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날 이후 우린 자주 부딪쳤고, 그는 내게서 차츰 마음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난 그 뒤에도 굽을 몇 번 갈고, 해진 곳은 기우고 하며 그 구두를 신고 다녔지요. 그 구두를 신고 있으면 언제든 그가 다시 올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렇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그 구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낡아 할머니가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렸다고 하셨습니다. 내 몸의 반쪽을 잃은 듯, 내가 그 사람을 버린 듯 정신이 아득했고, 허전하고 아픈 마음에 가슴 사무치게 울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그 겨울 내가 받은 것은 구두가 아니라 내게 좋은 구두를 신기고 싶은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내가 받았고, 내가 누렸다는 것, 그것이 내겐 소중합니다. 그 구두를 신고 그 사람을 만나러 달려갔던 모든 길과, 모든 장소들을 기억합니다. 자랑스럽고, 뿌듯해 날아갈 듯했던 행복한 내 모습을 기억합니다. 참 좋은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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