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님의 '사랑에 대한 64가지 믿음' 중에서
경애는 당장 남편의 수술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가진 돈이라고는 한푼 없었다. 그나마 조금 있는 돈마저 아들 대학 입학금으로 낸 지가 바로 어제였다. 경애는 어디 마땅히 돈을 빌릴 데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장 친한 친구인 은숙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독신인데다 약국을 경영하는 은숙에게 다소 여유 돈이 있을 것 같았다. 경애는 은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한 사이일수록 돈을 빌리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은숙아, 영우 아빠가 쓰러지셨어. 심장에 이상이 있대.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정작 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경애가 머뭇거리자 은숙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 어느 병원이야? 나 지금 곧 갈께." 은숙은 급히 수술비를 마련해 가지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경애는 그런 은숙이 고마웠다. 그러나 경애의 정성과는 아랑곳없이 경애의 남편은 죽었다. 장례를 다 치른 뒤 경애는 은숙을 찾아갔다. "은숙아, 고맙다. 네가 돈까지 빌려줬는데, 그만 그런 보람도 없이 그인 가고 말았어. 빌린 돈은 내가 꼭 갚을께." "갚지 않아도 돼. 난 네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것만 해도 고마워. 경애야, 실은 나도 영우 아빠를 사랑했어. 이제 영우 아빠가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 사이에 굳이 숨길 일도 아닌 것 같아. 네가 여고생 때부터 영우 아빠를 사랑하는걸 보고 난 그만 단념하고 말았어." 경애는 놀라 잠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말했다간 너랑 나랑 싸움 나게?" 경애는 활짝 웃는 은숙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은숙이 지금껏 왜 독신을 고집하고 살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