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4 오전 7:40:20 Hit. 5431
지금은 잊혀졌지만, 10년 전 ‘Y2K’는 무시무시한 단어였다. 1999년 12월31일에서 2000년 1월1일로 넘어가는 순간 컴퓨터에 오류가 발생해 인류의 삶이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는 경고였다. 마침내 ‘그날’이 왔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17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개봉하는 영화 <아바타>를 두고 일찌감치 영화계에서 피어난 흥분과 기대도 Y2K 같은 것이었을까.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타이타닉> 이후 11년 만에 내놓은 영화, 올 영화계 최대의 이벤트, 3D 시대의 원년을 알리는 작품 등 온갖 수사가 난무했다.11일 언론 시사회에서 상영시간 162분의 <아바타>가 처음 공개됐다. 결론적으로 세계의 상업영화계가 <아바타>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수효과는 휘황찬란했으나, 줄거리는 단순했고, 주제는 유치했다. 지난해 <다크 나이트>를 통해 ‘머리’가 있다고 자랑했던 할리우드는 <아바타>와 함께 다시 ‘근육’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지구가 황폐해지자 인간은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한다. 그러나 판도라의 원주민인 나비(NA’VI)족이 걸림돌이다. 활과 화살에 의존하는 푸른 피부의 나비족은 인간보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다.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는 의식을 주입해 조종하는 ‘아바타’ 파일럿이 된다. 인간과 나비족의 유전자를 조합해 만든 아바타를 접근시켜 나비족을 현재의 주거지에서 몰아내자는 것이 인간들의 계획이다. 제이크는 나비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풍습을 익히고, 나비족 여전사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진다. 나비족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인간들은 군대를 동원해 숲을 불태우고 나비족을 학살한다. 샘 워딩튼,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가 출연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와 볼거리의 조합이다. 원주민에 동화되는 ‘문명인’은 <늑대와 춤을> 같은 서부영화에서, 대자연의 신비에 대한 경외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원시적 무기의 종족과 기계군단의 대결은 <스타워즈>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아바타>는 이 영화들보다 독창적이거나 뛰어나진 않다. 심지어 <아바타>는 카메론 감독의 전작인 <타이타닉>이나 <터미네이터>보다도 긴장감이 떨어진다. 자연보다 이윤, 외교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인간을 비판하는 주제의식은 정치적으로 옳지만, 이 주제가 옳다는 것은 초등학교 도덕시간에 다 배운다.‘이모션 캡처’라는 신기술을 통해 표현된 나비족의 표정과 동작은 정교하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창조된 캐릭터도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를 할 때가 됐다고 <아바타>는 선언한다. 그러나 그것도 표현할 ‘감정’이 있을 때의 얘기다. 입체 안경을 쓰고 보는 3D 효과는 여전히 이물감이 있었다. 영화가 상영된 후 초반 30여분은 불편한 듯 줄곧 입체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관객을 볼 수 있었다. 3D <아바타>를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2D <아바타>도 좋아할 것이다. <아바타>도 깊이를 가질 기회는 있었다. 죽은 형을 대신해 아바타를 조종하는 제이크는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활동이 자유로운 아바타를 처음 조종하면서 제이크는 흥분한다. 대체자가 대체자를 움직이고, 현실의 결핍이 또 다른 현실에서 충족된다. 가상현실을 부정적으로 보는 <매트릭스>와는 반대 방향의 논점이다. 그러나 카메론은 흥미로울 수 있었던 논쟁을 서둘러 마무리한 뒤, 서둘러 액션과 특수효과와 고대 신화 속에서 본 듯한 기묘한 동식물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타이타닉>이 11개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한꺼번에 가져간 뒤 카메론은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외쳤다. 카메론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바타>의 제작비는 역대 할리우드 최고 수준인 4억달러다. <아바타>는 왕같이 돈을 썼지만, 왕 같은 품위를 지닌 영화는 아니다. <아바타>는 ‘볼만한 블록버스터’지, ‘영화의 미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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