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개인적인 이야기는 제쳐두고. 이번 취재에서 시연 장소로 안내 받은 곳은, 반다이 남코 게임스 본사에 있는 일반 회의실. 책상이나 의자 옆에 Morpheus를 위한 공간이 세팅되어 있었지만, 그다지 특별한 존재는 없다. 스파게티같은 코드가 흐르는 방에 셀수없이 무수한 디스플레이... 라는 SF 영화 같은 분위기의 방을 상상하고 바랬던건 아니지만 너무 "즉석에서" 준비한 느낌에 맥이 빠졌다.
그런데 Morpheus의 헤드 마운트 유닛을 장착하고 섬머레슨의 데모를 시작하니 갑자기 텐션이 높아졌다. 비에 젖은 아저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원찮은 사무실이 상쾌한 소녀의 방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 압도적인 "현실"에 마음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심코 "오옷!?"라고 바보 같은 소리를 질러버릴 정도였다. 불안한 기분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있으려니 갑작스럽게도 "선생님!"이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게 아닌가.
뒤돌아보니 그곳에 있는건 한 소녀. 심장이 요동친다. 다가 온다. 어떻게하지. 뭘 해야하지. 지금까지 경험한적 없는 상황에 무기력해져버렸다. 농담이 아니라, 필자는 이제까지의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필자를 "선생님"이라 부른 소녀는 책장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갈팡질팡하면서 그 모습을 응시 하며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자신은 교사이며, 이 아이는 나의 학생이다...라고
아, 주위의 분위기와 소녀의 복장에서 느껴지는 계절은 여름. 과연 "섬머레슨"이란 그런 의미라고 이해하자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소녀는 척 보기에도 목표인 책을 찾는게 애를 먹고 있었다. 이떄는 의지가 되어줘야지 하고 소녀에게 다가가 '빨간책'에 시선을 보내자 소녀는 그걸 이해하고 책을 꺼냈다. 유저의 시선 인식의 정밀도가 상당히 높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무서운건 "존재감" 전자계집에 이상하리만큼 면역을 가지고 있는 필자지만 얼굴을 가까이 했을때 당황하고 말았다. 마치 상쾌한 샴푸 냄새가 감돌고 있는 듯한... 어라? 소녀는 내가 가까워지면 살짝 물러나는 액션을 취했다. 이거 재밌군... 여러번 반복해보니 점점 진심으로 싫어하고 외면하는 느낌이 들어서 관뒀다.
여자는 눈 앞의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영단어를 읽으면서 잘 읽는지 질문을 해왔는데 이쪽은 고개를 가로 또는 세로로 흔들어 "Yes" 또는 "No"의 의사를 밝힌다. 잘 알고 있지만 그녀가 말을 할때마다 실제 사람에게 질문을 받는 듯한 느낌이라 아무래도 부끄럽다. 실제로 몇 번이나 "아..."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업도 하는둥 마는둥 소녀는 빈둥거리며 여름 스케쥴을 물어본다. 탈선하는 감각마저 묘하게 리얼...이라는 감상은 차치하고, 그 말에서 짐작해보면 여름 방학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녀는 흥분으로 가득차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자기에게 고개를 내밀어 달라고 하더리 그대로, 귓가에 속삭여져서 뛰어 오를뻔했다. 아니, 미안. 뛰어 올랐다. 황급히 방향을 바꿨다. 얼굴이 너무 가까웠잖아! 이른바 '바이노럴 사운드'로 실제로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한 컨텐츠는 접해봤지만, 그게 Morpheus와 결합하니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체감했다.
길다 짧다같은 시간 감각마져 애매해지는 섬머레슨. 그 끝은 돌연 찾아왔다. 화상이 사라지고, 헤드 마운트가 벗겨지고 보이는 사무실.... 그 때의 기분을 표현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랑스러운 얼굴로 웃고있는 하라다 씨를 보고 반은 웃음지으며 "와우"를 연발했던것 같다.
이런 것을 만들어낸건가.
필자는 지금,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건 게임 작가로써 패배일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시간을 얻더라도 생각나는 단어로 '섬머레슨'의 '위험성'을 전달할 자신이 없다. 이것만은 실제로 체험해야 느낄 수 있는 물건이다.
하라다 씨도 인터뷰에서 고생담을 얘기했듯이 '전하는 어려움'이 향후 모든 Morpheus용 콘텐츠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단진 휼룡하게 앞길을 간 '섬머레슨' 덕분에 쉬워졌을지도 모른다.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될지도 모른다.
Morpheus가 공식적으로 출시되어 플레이어에게 보급되는건 언제일까. 기술적인 지식이 부족한 필자로써는 예상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런 세계가 올테니 '뭔 짓을 해서든 살아 남아야한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이 '섬머 레슨'에 담겨있다.
또한, 하라다 씨가 말하길, 멀지않은 시기에 일반용으로 본작을 체험 할 수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 때 체험해보고 "이런거였나!"라고 납득해주면 필자로써 다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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