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12 오후 1:53:05 Hit. 2158
바쁜 탓에 가지고 있는 게임 중 유일하게 엔딩을 못 보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엔딩도 보고 게임을 나름대로 즐겼다고 할 수 있겠군요.
이니셜D, 어느 정도의 인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주변에 이니셜D라는 만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봐선 나름대로 성공한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제 주변 사람들이 다 좋아할 뿐이라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겠군요. 하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만화에 이어 애니메이션, 게임, 결국 영화까지 나온 것을 보면 꽤 인기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처럼 후지와라 두부점이라고 글씨까지 새긴 팬더 트레노가 실제 있는 것을 보면 열풍인 모양이지요. (일본에서 AE86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상태 좋은 모델이 400만엔 정도 하는데 그것마저도 없어서 못 판다고 합니다.)
레이싱 게임..
일단 게임 리뷰니까 PSP 게임으로서 이니셜D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야할 듯 합니다.
일단 이니셜D는 기존의 레이싱 게임과는 다른 레이싱을 합니다. Need for Speed Hot Persuit처럼 수퍼카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트랙을 도는 것도 아닙니다. 일본의 아마추어 고갯길 레이서를 주인공으로 하는 원작 만화를 게임으로 옮긴 탓에 등장하는 차량은 일본의 나름대로 평범한(물론 성능은 좋다고 하지만 대개 배기량 2,000cc급 차량이 주류) 차량을 개조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것도 Need for Speed Underground나 Burn Out처럼 도심의 길도 아닌 실제 일본에 존재하는 언덕길입니다.
이니셜D의 약자는 아마 Drift일 것입니다.
원작 만화에서 고갯길을 빠르게 달리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 바로 드리프트입니다. 따라서 게임 역시 드리프트를 얼마만큼 능숙하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180도 헤어핀이 지긋지긋하게 나오는 이로하자카같은 코스는 다른 게임에선 본 적도 없을 정도이고 고속 코너링이 계속되는 아키나는 마지 모나코GP의 트랙을 연상할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레이싱 게임처럼 트랙을 몇 바퀴 도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겠지요.
이니셜D만의 독특한 룰
게임에서 드리프트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일단 드리프트 없이 라이벌을 이길 수 있는 코스가 초보자용으로 있는 묘기와 우스이를 제외하면 없을 정도인 데다가 게임만의 독특한 룰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니셜D에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가드레일에 부딪히지 않는 것입니다. 이니셜D 역시 다른 게임처럼 가드레일에 부딪힐 경우 차가 멈추거나 언덕 아래로 구르는 등의 실제 있을 법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속도가 약간 줄어드는 정도에 그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니셜D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가드레일에 부딪힌 경우 부딪힌 충격에 따라 일정시간 동안 차량의 속도가 더디게 올라갑니다. 실수하면 그만큼 많은 시간을 손해보는 시스템입니다. 게다가 컴퓨터와 대전할 경우 플레이어가 가드레일에 자주 부딪힐 수록 컴퓨터의 차량에는 가속도가 붙습니다.
스토리 모드에서 컴퓨터를 상대하다 보면 드리프트를 자연스럽게 숙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토리 후반부로 갔을 때에는 보다 완벽한 드리프트 궤도가 아닌 이상 프로젝트 D의 타쿠미와 케이스케를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본 게임은 플레이어를 훈련시킵니다.
제 경우 아키나에서 두부집 아들을 이기는데 30번도 넘게 좌절한 적이 있습니다. 이쯤되면 그 동안의 레이싱 게임과 다른 ‘근성게임’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군요.
튜닝하는 재미가 쏙쏙
뭐 많은 레이싱 게임처럼 이니셜D 역시 차량을 선택하고 튜닝하는 재미가 쏙쏙 납니다.
여기서도 이니셜D만의 독특한 재미가 묻어납니다.
PSP판 이니셜D 튜닝의 가장 큰 특징은 포인트로 튜닝하는 것이 아니라 튜닝카드를 통해서만 합니다.
그런데 이 튜닝카드란 것이 참 독특한 게 컴퓨터에게 이기면 카드가(특히 내장 튜닝카드) 잘 나오지 않습니다. 컴퓨터와 대전하다가 질 경우 튜닝카드가 나올 확률은 3번 중에 2번 정도입니다. 참 이상한 시스템입니다. 다른 게임 같으면 레이싱에서 이겼을 때 많은 포인트가 주어지고 그 포인트로 차량을 튜닝하여 더욱 더 진화를 거듭하는데 이 게임은 졌을 때 튜닝이 잘 되는 셈입니다. -_-;
사기 튜닝도 쏙쏙
차량의 튜닝 역시 Mazda Speed, TRD, Spoon 같이 실제 존재하는 튜닝 업체들이 주류입니다.
하지만 이니셜D 캐릭터가 보유한 차량에는 頭文字D 라는 마크의 튜닝 파츠도 있습니다. 뭐 게임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게임 속 등장인물의 차량이 어떻게 튜닝됐는지 불명확하기에 붙은 것이겠지만, 이 튜닝 파츠가 지나치게 주인공 중심이며 속된 말로 ‘사기성’에 가깝습니다.
풀 튜닝된 AE86 트레노 A파츠(후지와라 타쿠미)의 경우 엄청난 가속도에 말끔한 코너링을 자랑합니다. 반면 같은 AE86인데도 레빈 A파츠(아키야마 와타루)의 차량은 가속도가 타쿠미 차량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것 같지도 않은 데다가 코너링마저 불안합니다. 이는 같은 RX-7 Type R(FD3S) 차량이면서도 A파츠(타카하시 케이스케)와 B파츠(이와세 쿄코)의 성능 차이가 심하죠.
지나치게 타쿠미와 케이스케라는 주인공 중심의 사기성 튜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주인공을 찾지 못한 Lancer Evolution Ⅶ이나 Celica(게임 내에서는 아직)같은 차량은 다소 우울할 정도이며, 이츠키가 타는 AE85 레빈을 풀 튜닝할 경우 핸들링이 다소 불안한 것만 빼면 쓸만해지는...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튜닝 시스템은 이 게임의 유일한 단점으로 보입니다. -_-;
오래 할 수 있는 레이싱 게임
대부분 레이싱 게임은 어느 정도 게임의 조작에 익숙해지면 한정적인 차량과 트랙으로 인해 쉽게 질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니셜D는 레이싱 게임으로서는 드문 ‘근성게임’의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이머를 쉽게 질리지 않도록 합니다.
일단 공도최속전설을 클리어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 데다가 공도최속전설을 모두 클리어하면 다시 스토리가 리셋됩니다. 대신 별(★)이 붙으면서 난이도가 약간 올라가는데 이 별은 최대 8개까지 붙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공도최속전설을 클리어하면 ‘분타에게 도전’이라는 모드가 새로 생깁니다. 분타 챌린지라고도 하는 이 모드의 난이도는 한 마디로 극악입니다. 처음에 분타는 AE86으로 상대하지만 난이도가 올라가면 Impreza로 상대합니다. (참고로 AE86조차도 상대하기가 무척 버겁습니다.)
분타모드마처 클리어한 극악의 유저를 위해 이니셜D는 타임 어택 모드를 제공하는데 이 타임어택은 코스의 최고 기록 뿐만 아니라 각 차량별 최고 기록까지 별도로 저장하는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여타 레이싱 게임이 그간 차량별로 가속도, 최고속도, 핸들링만 차이가 났던 것과 달리 차량의 구동방식(FF, FR, MR, 4WD)에 대한 비중이 높은 만화의 특징을 잘 살렸기 때문에 차량을 바꿀 경우 가속도와 핸들링 뿐만 아니라 드리프트에도 미묘한 차이가 발생해서 새로운 기분으로 게임에 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처럼 일부 근성 없는(?) 게이머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게임 옵션에는 쉬움, 보통, 어려움의 3단계 난이도가 있습니다. 난이도를 ‘쉬움’으로 설정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적어도 스토리 모드만큼은 일반 라이트 유저도 쉽게 클리어할 수 있도록하는 배려도 있습니다. (‘쉬움’과 ‘보통’의 난이도 차이가 매우 큽니다.)
장사속 보다는 장인정신으로 게임을 만드는 SEGA답게 이니셜D는 매우 소장가치가 높은 게임입니다. 비록 일본어로 되어 있긴 하지만 한국에 정식발매된 타이틀인 만큼(북미판마저도 없는 타이틀인데다가 극한의 스몰 마켓인 한국의 PSP 시장을 생각할 때 한글화 발행은 아직 기대하기엔 무리) 적어도 게임을 즐기고 싶은 유저라면 중고품보다는 신품을 구입하는 게이머의 ‘호의’를 SEGA에 베풀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巳足...
게임의 그래픽과 사운드에 대해 아무 얘기도 없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쓴 후 다시 보니 제가 생각해도 이상하군요.
한 마디로 그래픽, 사운드 모두 좋습니다. 배경음악은 애니메이션에 나온 유로비트 노래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그래픽 역시 PSP 게임답다고나 할까요.
요즘 게임의 특성상 XBOX 360 게임이 아닌 이상 특별히 그래픽이 압도적인 게임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괜찮다’라는 말은 PSP 하드웨어의 성능을 잘 발휘한 게임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GBA판 이니셜D는 솔직히 우울했는데, PSP판은 아주 마음에 듭니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이니셜D는 NDS 버전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 (아마 SEGA에서 만들 생각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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