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21 오전 12:45:40 Hit. 2883
리뷰 엄정현 (acekilla@hananet.net) 게임스팟(http://gamespot.zdnet.co.kr)창세기전 시리즈로 국내 최고의 롤플레잉 게임 제작사로 군림하고 있는 소프트맥스와 이스 시리즈, 영웅전설 시리즈 등 주옥같은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어낸 일본의 롤플레잉 명가 팔콤이 함께 게임을 만든다. 이것은 롤플레잉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제작사의 대표작인 창세기전 시리즈와 이스 시리즈는 국내 게임 시장에서 오랜 시간동안 폭넓은 인기를 누리며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소프트맥스와 팔콤이 함께 롤플레잉 게임을 만든다는 것 그 자체로 무언가 물건이 하나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는가.
창세기전 시리즈는 국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 롤플레잉 게임이다. 서풍의 광시곡은 창세기전 시리즈의 외전이기는 하지만 창세기전 팬들 사이에서 시리즈 중 최고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 인기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해도 그 게임이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성공할 것인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위험 부담을 덜고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양국의 유명 제작사가 손을 잡았다.
해외 게임들도 국내에 출시될 때는 언어의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국내 사정에 맞추어 컨버전하는 현지화 작업이 필요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서풍의 광시곡 일본판 컨버전 작업은 우리도 익히 알고있는 명제작사 팔콤이 맡아서 언어 문제를 비롯한 게임의 일러스트 수정 등의 작업을 통해서 일본인의 구미에 맞는 게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고가 일본 게이머에게 어필하며 일본 PC 게임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서 비디오 게임 시장에도 진출하게 된 것이다.
창세기전이 일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감동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안으로 하여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 속에서 복선과 반전을 거듭하며 게이머에게 충분한 감동을 준다.
시나리오 하나만 놓고 본다면 서풍의 광시곡은 매우 뛰어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롤플레잉 게임이 단지 시나리오만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다. 게임은 종합 예술로서 영상, 음악, 시나리오, 캐릭터, 게임성 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게임이라 할 수 없다.
서풍의 광시곡을 일본판의 PC 게임으로 컨버전할 때에 시나리오와 인터페이스 등은 원작의 것을 그대로 두고 언어와 일러스트를 바꾸는 정도에서 현지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원작의 시나리오가 매우 뛰어났고 그래픽, 사운드, 인터페이스 등이 전체적으로 잘 조화돼 있어 일본판 PC 게임은 수준급 게임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PC 게임으로의 컨버전은 매우 잘 이루어진 반면 비디오 게임으로의 컨버전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것은 누구라도 DC판 서풍의 광시곡을 하면 느끼게 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점 2가지는 인터페이스와 메뉴 화면과 대사를 비롯한 게임의 모든 폰트가 뭉그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PC 게임을 비디오 게임으로 컨버전하는 과정에서 비디오 게임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C의 인터페이스는 이동은 키보드로 그 외의 부분은 마우스를 이용하게 돼 있다. 이것은 마우스로 모든 것을 하는 게임에 비해 조금 불편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나름대로 상당히 쾌적한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DC는 패드를 이용해서 게임을 해야하므로 그에 맞추어서 게임의 인터페이스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음에도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조작을 키패드에 집중시켜 버림으로써 게임의 쾌적한 진행이 어렵게 만들었다. 단지 맵을 이동할 때는 이러한 불편함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전투 시에는 매우 불편하다. 단지 조작의 불편함만이 아니라 메뉴를 지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어 전체적으로 게임의 진행속도가 느려지고 지루함을 주게 된다.
폰트의 뭉개짐에 대한 문제는 인터페이스보다 게이머를 더욱 짜증나게 만드는데 PC 모니터와 TV의 해상도 차이 때문인지 메뉴 화면과 대사화면의 대부분의 글자들이 전체적으로 뭉그러져 보여 한눈에 읽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큰 불편 2가지를 감수하고 게임을 시작해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그래픽과 한마디 말도 못하는 벙어리 캐릭터에게 다시 실망하게 된다. 98년에 발매된 원작에서 거의 향상되지 않은 그래픽과 일체의 음성 지원이 없는 사운드를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과연 DC 게임인지 새턴 게임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점이라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배경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정도.
서풍의 광시곡이 3년 전 국내에서 발매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금세기 최초의 128비트 비디오 게임기인 DC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해 볼 게이머는 이미 PC 게임으로 모두 즐겨봤을 국내 사정을 감안 한다면 수 만원의 돈을 지불하고 굳이 DC판 서풍의 광시곡을 구입할 게이머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롤플레잉 라인업이 부족한 DC에서 할만한 롤플레잉 게임을 찾고 있었다면 서풍의 광시곡에서 전통 SRPG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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