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드 엠파이어의 사운드를 들려줄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무공을 익히기에 앞서 화술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제이드 엠파이어는 주어진 스토리를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즐겨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똑같은 퀘스트라도 온유의 길(일반적인 RPG에서 말하는 선善)과 힘의 논리(일반적인 RPG에서 말하는 악惡)에 의해 사뭇 다른 진행을 보여주며 단순히 ‘A를 돕는다, A를 돕지 않는다’식의 선택이 아니라 ‘A를 돕는다, A를 도와주되 편법을 사용한다, A를 돕지 않는다’와 같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제이드 엠파이어에는 앞서 언급한 성향에 따른 대사 선택지와는 별개로 ‘회유, 직설, 엄포’로 나뉘는 ‘화술’이란 시스템이 존재한다. 캐릭터의 능력치들 중 신체와 의지가 강하면 회유, 정신과 의지가 강하면 직설, 신체와 정신이 강하면 엄포의 성공확률이 증가하는 시스템으로서 단순히 온유의 길을 따른다고 하여 회유만 사용하거나 아님 힘의 논리를 따른다고 하여 엄포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적절한 화술을 사용해야 하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화술로 인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욱 즐거워진다
이러한 화술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로 ‘안하무인 격인 서양인을 논리로 설득 시키는 퀘스트’를 들 수 있는데, 이 퀘스트에서는 회유와 직설, 엄포 뿐만 아니라 호소, 조롱, 멸시, 사실, 분노와 같이 더욱 세분화된 화술을 사용해야 한다. 이 퀘스트에 대한 더 이상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만 넘어가도록 하고, 어쨌든 제이드 엠파이어에서는 무공의 성취를 통한 캐릭터의 성장 못지 않게 화술이 중요하다.
제이드 엠파이어에서 가장 즐겁게 클리어한 퀘스트.
차기작에선 이와 같은 퀘스트가 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외가기공보다 더욱 중요한 내가기공
제이드 엠파이어의 전투는 발더스 게이트와 같이 AD&D룰에 기초한 실시간 액션을 흉내낸 턴방식이 아니라 완벽한 실시간 액션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지금까지와 같이 ‘일시정지 후 효율적인 커맨드 선택’과 같은 플레이는 사용할 수 없으며 오로지 재빠른 손놀림과 정확한 입력으로만 전투를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이드 엠파이어의 전투는 굉장히 손쉬우면서도 직관적인 입력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전체적인 전투의 난이도 또한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A 버튼으로 공격(연타시 연속공격), B 버튼으로 막기, X 버튼으로 적의 막기를 무효화 시키는 강력한 일격, 왼 쪽 아날로그 스틱과 B버튼의 조합으로 전 방향 피하기 등 한번만 접해보면 금방 익숙해질 수 있는 조작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버튼 입력과 캐릭터 움직임 간의 딜레이가 크지 않아서 빠르고 시원시원한 액션을 즐겨볼 수 있다.
손쉬운 조작으로 다양한 무공을 쓸 수 있다
또 제이드 엠파이어의 전투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요소로 ‘다양한 종류의 무예와 그에 따른 적의 상성’이 있다. 무예는 크게 나눠 권각(拳脚)술, 기공술(제이드 엠파이어에선 마법술이라고 하지만 무림이라는 특징상 기공술이라고 명칭), 병기술, 둔갑술(변신술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무림이라는 특징상 둔갑술이라고 명칭), 환술이 있는데 적의 종류에 따라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무예와 없는 무예가 있으니 한 가지 무예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인 사용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혼령들에겐 병기술과 환술이 통하지 않고 마괴와 토괴인형(土塊人形. 골렘이라고 하지만 유대전설의 골렘이 무림과 어울리지 않기에 토괴인형으로 명칭)에겐 기공술과 환술, 권각술(토괴인형만)이 통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양한 무예들을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복잡한 조작을 요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습득한 무예들은 십자버튼의 각 방향에 지정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전투 도중 메뉴화면을 열지 않고도 간편하게 퀵 체인지가 가능하다.
십자버튼에 무예들을 지정
제이드 엠파이어의 전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효율적인 ‘기(氣)’ 사용과 ‘집중력’ 사용이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 능력치인 신체, 정신, 의지가 전투에서는 체력(빨간색), 기(파란색), 집중력(노란색) 게이지로 표시되는데 체력은 말 그대로 캐릭터의 체력을 나타내며, 기는 둔갑술과 기 치유(흰색 버튼), 기 공격(검은색 버튼), 기공술(일반적인 RPG에선 마법)에 사용되고, 집중력은 필드에서의 빠른이동(축지법, Y 버튼), 전투중 고속이동(플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것이 느려짐, Y 버튼), 병기술에 사용된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제이드 엠파이어에서는 체력회복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를 사용하여 치유한다는 것과 검을 휘두를 때도 집중력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전투에 자주 쓰는 둔갑술과 기 공격, 고속이동 등을 사용하면 체력의 회복이나 검을 휘두른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특징들로 인해 결국 캐릭터가 레벨업을 할 때 신체 강화에 많은 능력치를 투자(한번의 레벨업에 3포인트가 주어진다)하기보단 정신과 의지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라는 결론을 얻게 되며, 무협소설이나 영화에서 항상 말하는 ‘외가기공의 단련(체력만 늘이는 것)보다 내가기공의 단련(기와 정신을 수양)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시스템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물론 적의 기를 흡수하는 ‘이혼대법’과 같은 무예를 사용하거나
레벨업을 통한 ‘기와 집중력 소모량 감소’ 같은 대처법도 잇지만,
어쨌든 신체보단 정신과 의지에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화면에서 보듯이 체력 비율은 저 정도만 되어도 상관없다
제이드 엠파이어의 전투에서는 동료와 함께 싸우는 것도 가능하다. 일반적인 RPG에서의 파티 플레이와 같이 여러 명의 동료가 한꺼번에 등장하여 전투를 할 수는 없지만(데리고 다니는 동료는 한 명뿐)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전투가 더욱 흥미로워진다.
동료에겐 플레이어와 같이 싸우는 공격명령과
후방에서 여러 가지 기술로 지원해주는 지원명령을 내릴 수 있다
(지원일 경우 동료는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XBOX를 통해 쓰여지는 오리엔탈리즘
캐릭터는 수호전에서 모티브를 따왔고 환상적인 배경과 분위기는 서유기에서 따왔으며 세계관 전반에 깔려있는 사상은 도교와 불교에서 따온 제이드 엠파이어는 사실 스토리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크게 볼거리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게임 곳곳에 동양적인 사상과 철학, 종교적인 터치가 이루어져 있지만 동양 문화에 뿌리를 둔 우리나라에서 자라온 게이머들이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으며, 오히려 ‘윤회와 환생, 카르마’에 집착하여 스토리에까지 이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제이드 엠파이어의 이야기가 고루한 느낌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또 인물들의 감추어진 비밀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시대의 추세에 맞게 반전도 준비해 두었지만 반전에 대한 부가설명과 이후의 진행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바람에 흐름 자체가 매끄럽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외에서 극찬을 받은 스토리라지만 솔직한 말로 ‘글쎄’.
아무래도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제이드 엠파이어의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앞서 소개한 화술에서 보여지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즐거우니까. 또 극중에서 대사 선택에 따라 등장인물들과의 상관관계가 변화하는 것은 물론(좋아하는 이성과의 연애도 가능) 플레이어의 진행방식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까지 달라지는 멀티 엔딩이기 때문에 더욱 즐겁게 몰입할 수 있다.
고루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게임이란 문화 콘텐츠에서
이 정도 이야기를 담아내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리고 제이드 엠파이어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완벽한 한글화이다. 과거 페이블에서 보여줬던 다소 아쉬운 한글화(퀘스트에 영향을 미치는 대사와 자막만 한글화)와는 달리 모든 대사는 물론 길잡이 족자와 같이 진행과 관계없는 내용들까지 남김없이 한글화하였기 때문에 더욱 즐겁다(한글화 된 텍스트 분량이 A4용지로 1000여장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길잡이 족자
제이드 엠파이어의 아쉬운 점
제이드 엠파이어의 가장 아쉬운 점으로는 전투의 단조로움과 로딩을 들 수 있다. 먼저 다양한 무예의 존재와 전략적인 사용, 손쉬우면서도 호쾌한 액션, 그리고 신체, 정신, 의지로 나뉘어진 캐릭터 성장의 재미 등 제이드 엠파이어의 전투는 여러모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적들의 형편없는 인공지능과 쉬운 난이도 때문에 앞서 언급한 장점들이 묻혀버리게 된다.
아무리 많은 적에게 둘러싸여도 A+X 버튼으로 발동하는 ‘주변공격(데미지를 입히지는 않지만 주위의 모든 적을 날려버린다)’과 왼쪽 아날로그 스틱과 B 버튼의 조합으로 발동하는 ‘피하기’를 사용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제이드 엠파이어의 전투는 공방의 긴장감으로 얻게 되는 즐거움보다는 스토리 진행 도중 잠깐씩 즐기는 이벤트에 불과한 느낌이다. 조금 과장된 표현을 하자면 주변공격과 피하기, 그리고 A 버튼 연타만으로 엔딩을 볼 수 있는 게임이라고나 할까. 이러다보니 제작진이 준비해둔 다양한 무예들은 존재 의미가 퇴색되고 게임의 진행 또한 이야기의 재미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연수합격이나 잡기, 흘리기와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적들의 형편없는 인공지능은 어떻게 안될까
그리고 뛰어난 그래픽, 방대한 분량의 음성 데이터를 감안하더라도 제이드 엠파이어의 로딩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다. 물론 바이오웨어의 작품답게 로딩 화면중 게임에 대한 어드바이스가 표시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루함을 줄일 수는 있지만, 그것도 플레이 초기 때나 가능한 일이지 후반으로 들어서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어드바이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지치게 된다.
한번 읽어들이는 시간이 30여초에 육박하는 로딩.
그래픽 퀄리티를 낮추고 음성 데이터의 분량을 줄이더라도
로딩을 좀 더 원활하게 해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총평
제이드 엠파이어는 발더스 게이트처럼 동료로 합류하는 게스트 캐릭터의 선택권은 없지만(어떤 선택을 하든 동료가 되며 게스트 캐릭터와 NPC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갖지 못한다) 다양하게 준비된 대사와 행동 선택을 통해 인물간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재미를 주며, 일반적인 의미의 선악(온유의 길과 힘의 논리)에 의한 단순 선택이 아니라 화술을 사용한 독특한 진행이 즐거운 게임이다.
더불어 손쉬운 조작으로 발동하는 다양한 무예들(심지어는 ‘취권’까지 존재한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고대 중국의 표현, 성우들의 훌륭한 음성연기 및 적절한 사운드 효과, 플레이어의 진행에 따른 멀티 엔딩, 방대한 분량의 대사를 남김없이 한글화시킨 철저한 현지화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다.
물론 고르지 못한 프레임, 적들의 낮은 인공지능, 거슬리는 로딩과 같은 몇가지 단점도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발매된 XBOX용 RPG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을 게임이다. XBOX에는 레이싱과 스포츠, FPS밖에 없다며 투덜대는 사람이라면 제이드 엠파이어를 통해 진정한 RPG의 세계를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제이드 엠파이어의 인물 디자인은 서양인이 본 동양인의 전형
(디즈니 에니메이션 ‘뮬란’이나 헐리웃 배우 ‘루시 리우’와 같은)과 같은 모습이므로
다소 불만스러울 수도 있지만 형형색색의 머리칼과 조각상 같은 외모를 가진
비현실적인 캐릭터보다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 안의 게임으로 종 스크롤 비행슈팅을 즐낄 수 있다
(타이틀의 메뉴화면에서 미니게임만 따로 즐겨볼 수도 있다).
난이도가 너무 쉽다는 단점이 있지만 슈팅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충분
게임 밖의 게임(?)으로 레어사의 기대작 ‘콩커 라이브 & 리로디드’의
체험판 및 동영상을 즐길 수 있다. 귀여운 다람쥐들이 펼치는 독설과
그로테스크하며 바이올런스 한 액션을 맛보고 싶은 사람은 놓치지 말도록
-게임샷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