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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숟가락과 삽
    작성자 : 11th | 조회수 : 1714 (2010-04-13 오후 2:07:50)
    숟가락과 삽

    홍일표


    나는 한 생애를 숟가락질로 탕진하였다
    내 속의 허공을 메우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이때껏 작은 고랑 하나도 메우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왼손 오른손 다 동원해도
    나는 텅텅 울리는 커다란 독이다
    채워지지 않는 슬픈 욕망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금속성의 연장은 자란다
    조금씩 키가 커지고
    쓰면 쓸수록 욕망의 몸집도 불어난다
    기진하여 더 이상 생의 도구를 들 수 없을 때
    숟가락은 슬슬 떠날 채비를 한다
    작고 날렵했던 한 시절을 청산하고
    평생 섬겼던 주인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한다
    밥 대신 붉은 땅을 파내어 잠자리를 마련하고
    주인과 더불어 고단한 생애를 마감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청동숟가락이
    터무니없이 크고, 많이 야윈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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