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 전나무의 몸 속에 봉인된어제의 새소리와 그제의 바람소리가몸 밖의 시간을 끌어당긴다과거가 혹처럼 불거진다양팔을 벌리고 손을 휘젓는 나뭇가지에 척척 감기는 푸른 공기는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숨결이다앞뒤로 기우뚱거리며 중심을 잡다가화들짝 놀라 몸을 추스르는 전나무이미 멀어진 발자국들이 우르르 쏟아져나무 아래 어지러이 흩어진다무성했던 수심(愁心)이 위로 오를수록 짧아진다 단발이다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표창이다가마침내 한 자루 붓이다 우뚝 선 붓끝,나무의 오랜 기억들이 일필휘지로 내달리는 순간심중에 박힌 나무 한 그루 파르르 떨며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