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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쥐구멍과 통화하고 싶다
    작성자 : 11th | 조회수 : 1869 (2010-04-06 오후 1:13:41)
    나는 쥐구멍과 통화하고 싶다

    홍일표   

     

    쥐구멍은 바닥을 뚫어 개통한

     

    검은 전화통이다

    무슨 사연이 그리 깊고 아득한지

    지역번호를 누르면 뚜우뚜 통화 중 신호음이 들리기도 하는

     

    쥐구멍에 비타민 같은 햇볕 한 줌 넣어주면

    쥐구멍이 번창하리라고 믿는 태양은 진보주의자다

     

    목마른 쥐들은 최저생계비 같은 구멍을 뚫어 해를 불러들이고

    기웃거리던 햇볕들이

    쥐구멍의 앞날을 점치는 이른 아침

    봄볕을 얇게 썰어 만든 꽃잎이 하늘하늘,

    나무들의 연분홍 입술이 쥐구멍에 달라붙는다

    통화량 폭주로 천식 앓던 쥐구멍이 색색 달아오르는데

    구멍의 내력에 먹먹해진 나무가

    발등이 깨진 빗방울들을 호출한다

     

    치지직, 퀵 서비스로 달려온 한 줄기 소나기에 쥐구멍은 먹통이다                    

    나는 쥐구멍의 동그란 귀를 잡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온종일 바닥에 붙어있는 꽃잎 버튼을 눌러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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