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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를 자르다
    작성자 : 11th | 조회수 : 1743 (2010-04-06 오후 1:18:41)

    무를 자르다

     

    홍일표


    억새를 그리면 가을이 온다고 믿는 사람은

    소나무를 안고 문자를 보내거나

    바위 속에 들어가 세 칸짜리 방을 들이기도 한다


    구름국화 향기는 안쪽에 둥근 울림통이 있어

    마음 닿는 데까지 날아가 우아하게 고민한다


    몸이 없는 것은 지는 해보다 멀리 간다


    바람의 떫은맛이 가실 무렵

    잘 익은 서쪽하늘을 한 입에 베어 먹는 사람은

    삼청동이나 가회동 골목을 만지작거리다가

    뒤통수에 홍시 한 점 반짝 켜지기도 한다


    아직 하늘에서 발굴되지 않은 별자리는

    오늘도 눈, 코, 입 돋지 않아


    없는 생이 심심하다

    무 안에 들어가 죽은 허공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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