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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어와 악어새
    작성자 : carriet | 조회수 : 1785 (2010-03-11 오후 6:01:48)

     


    "그래, 잘들어가라. 참, 성만아 내일도 일있는거 알지? 일찍 나와라."

    "예 형,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뵈요."


    오랜만에 성만은 동업하는 최형과 밤 늦도록 술자리를 가졌다. 원래 일을 하러 나왔건만, 하루종일 뺑이만

    치고 기분만 상해 최형이 술을 사준다길래 넙죽 받아먹으러 따라온것이었다. 취기가 이마끝까지 차오른 성

    만은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낮의 일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지지만, 그래도 공짜술 얻어먹었다

    는 생각에 자신도 어디서 주워 들었는 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음을 기분좋게 흥얼거리며 네온사인 사이로

    걸어가는 그였다.


    알딸딸한 기운에 취해 언제 집앞에 왔는지도 모르는 그였다. 금전까지 있었던 휘황찬란한 간판들이 다 어디

    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성만은 눈앞에서 흔들리는 시야를 가다듬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앞이었다. 걸

    어올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초겨울이라고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어 성만은 왼손으

    로 벌컥 문을 열어 재쳤다. 가냘픈 양철제 문은 거센 성만의 손길에 애달픈 비명을 질렀지만 덜컹하고 닫히

    는 소리와 함께 곧 비명을 멈추었다.


    "어, 씨 추워."


    아무도 있을리 없는 어두운 방구석에 성만은 의미없는 말을 내뱉었다. 술 기운이 가시자 더 추워진 것만 같

    아 어서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뿐이었다. 이제는 이까지 덜덜 떨리는 그가 막 신었던 신발을 아무렇게

    나 벗어 던지고 오른쪽발을 비닐 장판위에 올려놓았을 때였다.


    '턱'


    무언가 둔탁한 물체가 바닥의 장판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수 초간의 정적. 성만은 갑자기 온몸

    이 경직됨을 느꼈다. 퍼뜩 머릿속에 저쪽에 귀신이라도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조금이

    라도 움직이면 나에게 달려드는 건 아닐까, 아니면 혹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숨어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

    각 까지 들었다. 여기서 불을 켜는 스위치 까지는 발걸음으로 대략 댓 발자국 정도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소리가 난 지점에서 여기 까진 금방 일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불을 켜서 무얼 한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아차싶은게 있었다. 문, 그 빌어먹을 양철제 문을 열때 성만은 열쇠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었

    다. 어째서 자신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는가 하는 후회가 물밀듯 몰려왔다. 어두운 저 너머 어느 구석에

    정말 날카로운 금속제 연장을 왼손에 쥔채 자신이 좀더 가까이 다가오기만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을것 만

    같았다. 자신이 몇 발자국 더 다가오면 숨 죽인체 뒤로 다가 와서 목줄기에 칼을 꽂아 넣어 버리는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불을 켜자 마자 칼을 꽂아 넣어 놓고서는 목에서 뿜어져 오르는 분수

    를 차분히 웃으며 감상하는 지독한 살인마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성만은 갖가지 생각을 하며 목조차 돌리지 않은채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아까까지 추워 덜덜 떨던 그는

    이제는 등줄기에 뜨뜻한 땀까지 흘렸다. 밖은 이제 바람까지 부는듯했다. 아까부터 등뒤에서 빌어먹을 양철

    제 문이 덜컹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 혹 살인마는 이 상황까지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밖에는 또다른

    동업자가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안에서 아무일도 없으면 밖에 있던 자가 갑자기 문을 박차

    고 들어와 나를 뒤에서 붙잡고 숨어있던 살인마가 느긋하게 걸어나와 나의 왼쪽 가슴팍에 구멍을 뚫어 놓

    을 것이다. 살인마는 살인을하고 동업자는 돈을 챙긴다. 그들로서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인것이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처럼 말이다. 성만이 한참동안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을때였다.


    '위이이이잉'


    갑자기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급격하게 주변의 공기가 바뀌는것을 느꼈다. 갑자기 정신이 말짱해

    지고 좀 전의 생각이 다 등신같은 망상같이 느껴졌다. 술에 취한 나머지 이젠 별 괴상한 생각까지 드는가

    하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성만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온것 같기도 했다. 오른손에 쥐어진 열쇠가

    재판의 중대한 증거물처럼 그것을 말하는것 같았다. 성만은 올려 놓았던 오른발을 떼었다. 오랜 시간 혹은

    아주 잠깐동안 비닐 장판에 붙었던 발바닥이 쩍하고 떨어졌다. 다섯발자국을 옮긴뒤 벽을 더듬거려 스위치

    를 찾아 올렸다. 방안이 끔뻑이다 환해졌다. 혹시나 하고 방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

    다. 그래 있을리 없지.


    목이 탔다. 별 머저리같은 생각을 한참 동안 해서 그런지 목이 말랐다. 한 자세로 오랫동안 있어서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풀며 냉장고에 다가갔다. 냉장고를 열어 재치고 물병을 꺼내 물을 컵에 따랐다. 컵 속에서

    기분좋은 소리가 들렸다. 물을 마시기전에 리모컨을 들어 티브이를 켰다.


    "꿀꺽, 꿀꺽."


    기울였던 물잔을 내려 놓아 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이리저리 일그러졌다. 꼭 악어마냥 생긴

    자신을 보고는 성만은 웃음을 터트렸다. 티브이 불빛이 점차 선명해지자 성만은 시간이 9시가 다된것을 보

    고는 뉴스로 채널을 맞추었다. 내일 일 할땐 날씨가 따뜻해야 할텐데 하고 생각했다. 날씨가 추우면 괜시

    리 긴장되고 긴장하면 괜시리 괴상한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럼 자신이 일하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닐것

    이다. 아까 자신이 체험했지 않았는가.


    성만은 리모컨을 들고 침대에 털썩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티브이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밤 8시30분경 귀가하는 20대 여성의 금품을 갈취하려던 30대 남성이 붙잡혔습니
    다. 귀가하는 이모양의 금품을 갈취하려던 최씨는 지나가던 행인의 신고로 붙잡혔습니다. 또한 최씨는 최
    근 연쇄 살인마와 인상착의가 유사한점으로 미루어..'


    성만은 전원 버튼을 누른 리모컨을 침대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티브이에서도 별 영양가 없는 방송

    만 흘러 나올뿐이었다. 성만은 내일 일할때 쓸 차가운 금속제 연장을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내일

    은 자신 혼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려고 마음먹는 그였다. 문득 악어와 악어새가 생각났다. 악어

    새는 악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분명 악어에게 식량을 공급받던 악어새는 다른 생활에 적응 하지 못하고

    굶어 죽을것이다. 허나 악어새가 죽으면? 성만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잠에 들었다.


    악어는 악어새가 없어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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