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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carriet | 조회수 : 1419 (2010-03-10 오전 11:48:21)


    뇌 한 편에 벌레가 알을 까놓은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긴 어디지...

    눈부신 빛에 눈이 절로 찡그려졌다. 상체를 일으키려 하자 머리맡에서 기계 특유의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재생액이 투입되기 전까지 신체 활동을 자제해 주십시오.”

    옆으로 곁눈질을 하자 길다란 바늘이 돋아있는 촉수 같은 것이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3차 기계 혁명 전에 병원에서 흔히 사용되던 신체 주입식 치료기구인 듯 했다.

    뻐근한 몸을 다시 뉘이며 기계에 몸을 맡기자 약간 따끔하더니 바늘이 살을 파고 들었다.

    약간 간질거리는 느낌을 즐기며 나른한 잠에 빠져들었다.

    ----------------------------------------------------------------------

    눈을 뜨자 반투명의 유리관 안이었다.

    “의식이 드셨군요.”

    예의 기계음이 들리면서 유리관이 들리더니 그대로 분리되어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회백색의 벽으로 도배가 된 방 안이었다.

    내가 어째서 이런 곳으로 오게 된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는 천장에 난 스피커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봐, 여긴 어디지?”

    기계음이 대답했다.

    “여긴 인공뇌개발 연구소입니다. 깨어나신 걸 축하드립니다. 중앙 식당에 당신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식사라...그러고 보니 허기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문 밖을 나가서 준비된 리프트에 탑승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 대 밖에 남지 않았으니 탑승하고 난 뒤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아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곤 자동문을 나섰다.
    과연 문 밖에는 두 사람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가진 합금판 위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자 천천히 리프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어딘가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천장으로 향한 뒤 물었다.

    “넌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에 들어오게 된 건지 알고 있나?”

    방향은 알 수 없지만 기계음이 다시 말했다.

    “모릅니다. 단지 입구를 돌아다니던 폐기물 처리 로봇이 당신을 주워 왔고 생체 반응이 느껴지길래 재생 장치에 당신을 넣어둔 것 뿐입니다.”

    “그래? 여기 나 말곤 다른 사람은 없나?”

    “이 곳은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20년 째입니다.”

    “의외로 깨끗하군.”

    “매일 청소하고 있으니까요.”

    마치 녀석이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다 이 곳이 비게 된 거지?”

    “알 수 없습니다.”

    “컴퓨터가 모르는 것도 있나?”

    “알려주지 않은 정보는 알지 못합니다.”

    시설은 비교적 구식이었지만 관리 상태가 깨끗해보였다.

    장비들도 파츠 교체만 몇 번 한다면 신형처럼 쓸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런 곳을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철수해 버렸다는건가? 예산이 썩어 넘치나 보군.

    한참을 지났는데도 길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럽게 넓구만.”

    “이 곳의 정확한 넓이는..”

    “아,아 강의는 됐어.”

    나는 녀석의 말을 끊었다. 친절하기도 하지.

    “알겠습니다.”

    왠지 녀석이 한숨을 쉬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 탓이려나..

    그나저나 이 정도 넓이의 연구소를 그대로 비우고 사라진다니 이건 정말 예산 낭비의 극치라고 생각했다.

    리프트는 일방통행으로 좌,우로 갈라지는 길 없이 꾸준히 앞을 향해 움직였다.

    수십 개의 방을 지나치니 거대한 공동으로 빠져나왔고 100m쯤 앞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길이 보였다.

    그리고 왼 편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화물 리프트 한 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화물 리프트가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곳에는 거대한 소각장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화물 리프트가 천천히 소각로를 향해서 굴러가기 시작했다.

    리프트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궁금해져서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거기에 실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때 순간적으로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

    화물 리프트 사이로 사람의 손이 삐져나와있었다.

    그리고 내가 탄 리프트 역시 빠른 속도로 갈림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나는 리프트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죠? 위험합니다. 자리에 그대로 앉아주세요.”

    기계가 지껄이는 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리프트를 등지고 리프트가 매달려 있는 케이블을 향해 점프를 했다.

    케이블에 매달려 뒤를 돌아보자 리프트가 멀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천천히 손을 앞으로 옮겨잡으며 지금까지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공동으로 나온지 얼마 안 되어 얼마 안 가 발이 바닥에 닿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계세요. 금방 다시 리프트를 보내겠습니다. 자리에서 떠나지 말아주세요.”
    웃기지마.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짚어 달리기 시작했다.

    까딱하면 죽을뻔 했다.

    끝이 안날 것 같은 복도를 따라 달리다 보니 모퉁이 저편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들인가....!

    까마귀들은 보통 군시설과 같은 주요시설에서 외부인 침입에 대한 방어를 담당하는 기계였다.

    녀석들 특유의 붉은 안광이 모퉁이 너머에서 비치기 시작했다.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녀석들에게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자동문의 좋은 점은 주인을 따지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 방으로 뛰어들었다.

    “언제까지 숨어있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놀이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그만 나오세요. 나의 호의를 거절하지 말아요.”

    웃기지 마시지.

    나는 자동문에 붙어있는 강제 잠금 장치의 레버를 내렸다.

    문 위의 경광등이 붉게 빛나며 자물쇠 모양으로 전환되었다.

    “그나저나...이제 어쩐다...”

    언제까지고 이 안에 숨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은 내가 이 안에 있는 이상 어디서든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왜 나를 죽이려는 것일까. 그리고 아까 봤던 시체들은 누구지?

    문에 무언가 둔탁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금새라도 문이 열릴 것만 같았다.

    방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운이라곤 정말 쥐털만큼도 없군.
    문을 발로 뻥 걷어차자 밖에서 까마귀들이 더욱 난리를 쳤다,

    놈들이 일으키는 소음에 방 안의 공기가 진동을 했다.

    덜컹덜컹-

    금속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어떤 이질적인 소리가 섞여들었다.

    문을 다시 한 번 걷어찼다. 역시 철문이 진동하면서 방 안의 다른 무언가도 같이 진동하는 듯 했다.

    천장을 바라보자 공기 정화구가 보였고 그것을 막고 있는 판막이 약간 헐거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책상을 끌어다대고 올라서서 온힘을 다해 정화구를 가격했다.

    판막이 떨어지고 통풍구가 보였다.

    입구가 좁아보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좁은 입구에 억지로 몸을 구겨넣었다. 의외로 내부는 그다지 좁지 않았다.

    치이익-

    금속 타는 냄새가 났다. 녀석들이 레이저 절단기로 문을 자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 채 무작정 앞을 향해 기기 시작했다.

    통풍구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곳을 비집고 들어오기엔 까마귀의 날개는 너무 컸다.

    기계 따위가. 나는 비웃으며 길을 따라 기었다.

    정화구는 건물 곳곳으로 이어져 있었고 난 방마다 나 있는 공기 정화구를 떼어내어 방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지나갔다.

    한 번 온 곳은 다시 오지 않으려고 손톱으로 벽을 긁어 X표를 하면서 지나갔다.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서 과연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이젠 기어다닐 힘도 없었다. 손톱은 전부 닳아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렇다고 정화구 밑으로 내려간다면 녀석은 반드시 나를 찾아낼 것이었다.

    살아있는 동안은 최대한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갑자기 역한 냄새가 코 끝을 파고들었다.

    금새라도 구토가 올라 올 것 같았다.

    무슨 냄새지?

    나는 악취가 나는 방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앞으로 갈수록 냄새가 심해졌다. 무언가가 썩는 듯한 냄새가 났다.

    냄새의 출처에 도달하자 숨조차도 쉬기 어려웠다.

    정화구를 가리고 있는 판막에 눈을 가져다댔다.

    그곳은 거대한 창고 같았다.

    쓰레기 처리 로봇 셋이 들락날락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처리하고 있는 것은.........!

    빌어먹을. 그것은 사람이었다.

    모두가 나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떤 건 사지가 절단되어 있었고 배에 구멍이 뚫려 내장이 흘러나온 자도 있었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그것들을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그들은 나와 같이 일하던 자들이었으리라.

    쓰레기 처리 로봇들이 시체들을 수거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오래 전에 죽어 부패된 것들부터 최근에 죽은 시체들까지...

    얼마나 이 일이 계속된걸까.
    나는 문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방 안의 상황을 주시했다.

    아까와는 달리 로봇들이 들어오지 않았다.

    시체를 처리하러 간 모양이었다. 아마 당분간은 들어오지 않을 것이었다.

    로봇이 밖으로 나간 틈을 타 정화구에서 뛰어내렸다.

    역한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지만 시체들을 이리저리 헤집어보았다.

    목이 잘려 죽은 시체에서 방탄 조끼를 벗겨내었다.

    조끼 안에는 합금제 군용 단검 하나가 부착되어 있었다.

    무기로 쓸만한 것이 없을까 뒤적이던 중 이미 뼈가 다 드러나보이는 시체에서

    혁명 전에 사용되었던 구식 소총 한 자루가 보였다.

    워낙 오래된 제품이라 발사가 될지는 의문이었지만 달리 무기로 쓸만한 것이 없었기에 일단 집어들었다.

    잔탄 표시계를 확인해보니 17발에 40발 들이 충전식 탄창클립이 두 칸이나 남아있었다.

    총을 어깨에 견착하곤 문을 향해 조준했다.

    녀석들은 다시 돌아와서 시체를 수거해 갈 것이었다. 그것이 녀석들의 일이니까.

    그리고 아까 들락날락하면서 나른 시체의 양은 단지 그들 셋이서 옮길 수 있을 만한 양이 아니었다.

    분명 밖에는 시체들을 옮기는 운반도구가 있을터였다.

    그걸 이용한다면 탈출도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볼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얼마나 뚫어지게 쳐다보았던지 도트사이트의 빨간색 점이 흐릿해자는 것도 같다.

    육중한 물체가 천천히 굴러와 문 밖에서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선다.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고 녀석들이 특유의 회백색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온다.

    지옥마저 얼어붙을 정도로 심장이 차갑게 식어간다.

    숨쉬는 것조차 잊어버린채 녀석들이 전부 들어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긴다.

    하나, 둘, 셋.

    녀석들의 가슴 계기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며 일어섰다.p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죠? 이건 무슨 짓입니까. 당신은 실수하고 있는 겁니다.”

    재수없는 소리 하지마.

    나는 문밖을 나서며 천장에 난 스피커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역시나.

    로봇들이 끌고온 화물 운반차량이 복도에 놓여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 까마귀들이 특유의 웅웅 거리는 소리를 내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재빠르게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른손 끝에서 찌릿 하는 느낌이 들면서 전신을 타고 올랐다.

    한 방 먹은 모양이었다.

    전신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제압용 탄에 맞은 모양이었다.

    애써 몸을 추스르며 문을 닫곤 운전석에 올라 지도를 켰다.

    몸이 아직도 말을 듣지 않았다.

    까마귀들이 문을 향에 절단 레이저를 발사하는 것이 보였다.

    난 무작정 가속 페달을 밟았다.

    다행히 막다른 길이 없어서 쭉쭉 뻗어나갔다.

    아직도 떨리는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왼손으로 핸들을 잡았다.
    “지도”

    나의 음성에 반응하여 유리창 한가운데에 연구소 내부도가 떠올랐다.

    출구쪽은 전부 붉은 색으로 빛나며 LOCK 이라는 단어가 화면에 떠 있었다.

    젠장!

    그렇다면 길은 하나뿐이었다.

    녀석을 끝장내고 수동으로 문을 여는 수밖에.

    나는 중앙 쪽을 향해 방향을 틀곤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았다.

    속도계가 미친듯이 요동쳤지만 무시했다.

    마비된 오른손도 제법 멀쩡하게 돌아왔다.

    중앙컴퓨터실이 다섯 블록 앞으로 다가왔다.

    넷...셋......

    갑자기 차체가 요동을 쳤다.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이 느껴지며 하늘과 땅이 뒤집어졌다.

    보안시스템이 작동한 모양이었다.

    의식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차의 천장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쳤다.

    ..................!!!!

    충격때문인지 그제서야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평화는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있을 곳은 전장이었다.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던 중 국가에서 다시 나를 찾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대통령을 만나보았다.

    옛 전우들도 만날 수 있었다.

    대통령이 직접 우리에게 의뢰한 내용은 이러했다.

    전쟁이 끝나고 철수해버린 군수산업체의 중앙 컴퓨터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거하려 보냈던 현역 부대원들의 전멸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곳에 담긴 산업적 가치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쉽사리 폭격할 수 없는 상황도 설명했다.

    군인이란 어차피 소모품이라는 거겠지.

    속으로 욕을 했지만 어쨌든 우린 임무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평화로운 시대에선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앞서 떠났던 부대와 다르지 않았다.

    기계들은 생각보다 막강했고 나만이 겨우 외부 보안시스템을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녀석들이 날 살려둔 이유는 의문이었다.

    어쨌든 녀석들이 적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뒤집어진 차체를 비집고 나오자 까마귀들이 날아들었다.

    옆으로 몸을 날리며 총을 갈겨댔다.

    까마귀들이 하나 둘씩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중앙 컴퓨터까진 앞으로 세 블록이 남았을 뿐이다.

    온 힘을 향해 달리며 탄창 클립을 교체하였다.

    바닥에서 빔 터렛이 솟아오르는게 보였다.

    모퉁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스턴 블렛이 스쳐지나갔다.

    내 차례다. 조끼를 벗어 모퉁이를 향해 던지자 터렛의 총구가 그 쪽을 향했다.

    잽싸게 튀어나오며 소총을 발사했다.

    터렛 하나가 연기를 내며 수그러들었다.

    그대로 앞을 향해 뛰어가며 다음 터렛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간만의 스릴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블록의 터렛들 역시 하나하나 처리를 하며 앞으로 향했다.

    중앙컴퓨터실을 한블록 남겨두자 까마귀들 특유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발악을 하는군.”

    나는 앞서 부수었던 터렛의 뚜껑을 조끼 안에 들어있던 군용단검을 지렛대 삼아 안에 있던 탄창 클립을 빼내들었다.

    중앙컴퓨터실 앞에 도달하여 클립을 던지곤 그것을 향해 총알을 날렸다.

    강한 폭발음과 함께 총알 튀는 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니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리는 녀석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파괴되어있었다.

    녀석들의 잔해를 지나 컴퓨터실 앞에 도달했다.

    문이 잠겨있었다. 까마귀 하나를 집어들어 절단 레이저로 절삭을 시작했다.

    “이러지 말아요.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드릴테니 그냥 이대로 떠나주세요.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죠?”

    컴퓨터가 다급해졌는지 나에게 이야기했다.

    죽는게 두려운 기계라니. 기도 안차는군.

    나는 녀석이 지껄이는 소리들을 무시하며 절삭을 계속했다.

    문이 떨어져나갔다.

    거대한 원형 방 안에는 수십개의 모니터를 번쩍거리며 빛내고 있는 육중한 기계가 몸을 누이고 있었다.

    “하. 기분이 어떠신가? 기계 양반.”

    모니터들의 화면 위로 why? why? why? why? 라는 단어가 무수히 많이 떠있었다.

    “당신이 뭔가.....”

    탕!

    녀석의 개소리가 듣기 싫어 스피커를 향해 총알을 발사했다.

    표시계를 보니 총알이 세 발 밖엔 남아있지 않았다.

    모니터에선 계속해서 why 라는 단어가 무수히 떠올랐다.

    나는 컴퓨터를 향해 남은 총알을 박아넣었다.

    기계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원형의 방 안에 놓인 테이블 위에는 아직 배터리가 남아있는 PDA 하나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고는 연구실 내부의 지도 시스템을 화면에 띄웠다.

    출입구 쪽의 잠금이 전부 풀려 있었다.

    나는 PDA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출구쪽을 향해 달렸다.

    나가면서 컴퓨터를 힐끗 보니 모니터는 의문형 부호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가래침을 뱉고는 출구를 향해 달렸다.

    출구에 다다랐을때 연구소의 전력 시스템이 꺼졌는지 불빛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외부 보안 시스템 역시 정지되어 있는 듯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PDA를 꺼내 국방부장관실 직통으로 전화를 걸었다.

    등 뒤에서 컴퓨터의 망령이 원망스런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처럼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축축한 흙의 내음이 코끝을 간질였고 금새 몸이 나른해졌다.

     

    ----------------------------------------------------------------------

     

    케이블을 따라 리프트가 오른쪽으로 돌아 이동하더니 널직한 홀의 외곽에 천천히 멈추어섰다.

    커다란 테이블이 홀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테이블 주위에선 사람처럼 양복을 차려입은 로봇들이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메인 요리가 배치되자 로봇들은 손님이 걸어들어올 문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곧 문이 열릴 것만 같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자 식탁의 음식들이 서서히 식어갔고 로봇들은 다시 새롭게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식탁이 음식들로 가득찼을때 홀 안의 불빛이 사라졌다.

    그래도 로봇들은 동요하지 않고 문을 향해 돌아서서 손님이 들어오시길 기다렸다.

    테이블에는 여전히 음식들이 가득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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