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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구멍으로 詩-를 읽다-시-
    작성자 : 11th | 조회수 : 1206 (2010-03-08 오전 10:13:31)

    구멍으로 詩-를 읽다

     

     

    -고 영민-

     

     

    겨울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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