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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카이다이빙
    작성자 : carriet | 조회수 : 1808 (2010-03-06 오후 10:43:59)

    넓고 푸른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뿌연 구름을 뚫고 지금의 난 빠른 속도로 추락을 하고있다. 아찔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돌았다. 강력한 맞바람에 볼살이 출렁인다. 이 상태로 지면과의 만남을 가진다면 나의 몸은 죽사발이 되어버릴것이 뻔하였지만, 그럴 일은 없다. 지금 나의 등엔 믿음직스런 낙하산이 매어져있다.

    항상 이것만을 의지하며 고공낙하를 시도한다. 나는 최상의 스릴감을 만끽하며 나의 등을 바라보았다. 어?

    뭐지? 낙하산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이 상태로, 이상태로... 바닥에 떨어져버린다면...

    피 칠갑을 하고 관절이 기괴하게 뒤틀린 나의 모습이 바닥에 어렴풋이 보이는것만 같다.

    끔찍하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허나 이 느낌은 또 뭘까? 묘하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상태로 지면에 닿는 순간에 느낌. 대체 어떤 느낌일까?

    지면에 완전히 닿기전 높게 자라난 풀이 나의 몸을 간지럽힐까?

    죽사발이 되어버린 나의 코는 흙냄새를 맡을수가 있을까? 내 살점들은 어느정도나 멀리 튀어 날아

    가버릴까? 내 머리통이 깨져버리는 느낌은 어떨까?

    아님 지면과 만남을 가지기전에 나의 정신은 끊어져 버릴려나? 궁금하다. 뭘까? 어떨까?

    그순간 어깨에 매어진 가방끈이 보인다. 다시 한번 뒤를 보니 어느새 낙하산이 있다.

    역시. 분명 난 낙하산을 잊지않고 착용하였다.

    그런데 왜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직도 머리속을 맴도는 묘한 호기심을 무시한채 나는 손버릇마냥 낙하산을 펼쳤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스카이다이빙은 나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

    어느새 난 동호회를 만들어 몇달에 한번씩은 꼭 이곳에 찾아와 동호회 사람들과 스카이다이빙을 하였다.

    그래서인지 어느덧 나의 실력도 꽤나 늘었다.

    위험하다며 반대하시던 나의 부모님들도 매번 무사히 귀가하는 나의 모습에 안도하셨다.

    평상시엔 회사에서 상사에게 뜯기며 살아가고있다. 그럴때마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였다.

    그럴때마다 난 이곳을 찾아왔다.

    그리곤 스카이다이빙을 하였다. 공허한 하늘은 나에게 안락함을 주고 추락은 아찔하며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공허함과 아찔함이 공존하여 색다른 즐거움을 나에게 선사했다.
     
    그러면 어느새 날 괴롭히던 스트레스는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요즘들어 회사에서 뜯기는 날이 늘어나 스트레스는 끊임이 없었다.

    그럴수록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횟수도 늘어만 갔다.

    몇달에 한번씩 찾던 이곳이 어느덧 매달 두번씩으로 바껴있었다.

    점점 난 스카이다이빙에 목이 말라만 갔다.

    이 주가 지나 난 또다시 이곳을 찾아왔다.
     
    향긋한 풀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나는 코평수를 넓히고 그것을 양껏 받아들였다.

    순간 비릿한 향이 풀냄새와 섞여 들어왔다. 뭐지? 바닥을 보았다.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내가 바닥에 누워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끔찍하다. 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러자 바닥에 누워있던 나의 시체는 모습을 감추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현상이다.

    낙하산을 등에 매고 헬리콥터에 몸을 실었다. 헬리콥터는 점점 떠오르더니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어느새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개미보다 작게 보이자 또다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팔 천 피트 상공. 어마어마한 높이까지 오르자 나와 동호회 사람들은 낙하 준비를 하였다.

    짧은 구호와 함께 푸른 하늘 바다속으로 다이빙을 하였다.

    온 몸이 흠뻑 젖는것만 같다. 상쾌한 기분이 정신을 몽롱하게까지 했다.
     
    새찬 맞바람은 또다시 나의 볼살을 후려쳤다.
     
    난 특유의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동호회 사람들도 즐거운지 너도나도 괴성을 질렀다. 푸른 초원에 가까워지자, 문득 또 그 생각이 났다.

    바닥에 그대로 떨어져버리는 느낌. 어떨까? 어떨까? 어떨까? 어떨까!

    "야! 너 뭐해!"

    "어엇?"

    - 퓌유우웅~

    큰일날뻔 하였다. 묘한 호기심에 잡혀있던 난 순간 낙하산을 펼쳐야하는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동료의 고함

    소리가 아니였더라면 정말 나의 호기심처럼 바닥에 쳐박혀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져버렸을 것이다. 두려움

    에 동공이 흔들렸다. 식은땀은 등을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건 왜일까? 지금 나의 머리속엔 두려

    움과 묘한 아쉬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스카이다이빙에 대한 나의 열정은 커져만 갔다.

    점점 그 횟수를 늘려 어느덧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그곳을 찾았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느끼는 쾌락은 상상 이상이였다.

    그 어떤 이쁘고 섹시한 여자와 몸을 섞더라도 이러한 쾌락은 느끼지 못할것이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쾌락이였다.

    나는 그걸 매번 느끼고 싶었고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핑계삼아 이곳에 들렸다.
     
    물론 스트레스를 해결하는것도 한 가지의 이유였다.
     
    처음 이것을 시작한것도 바로 그 이유때문이였고 말이다.

    요즘들어선 가끔 옥상에 빨래라도 널러 올랐갈때면 왠지 뛰어내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빨래를 널러온 나의 등엔 낙하산은 없었고, 높이도 나를 만족시켜줄수 없는 높이였기에 매번 꾸우욱 참았다.

    하루 빨리 스카이다이빙을 하고싶은 마음 뿐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날이왔다. 또다시 등에 맨 낙하산을 의지하며 고공낙하를 시도하였다.
    아니, 지금의 난 이 낙하산을 의지할 필요는 없을것같다.
     
    좀 더 색다른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

    지금 난 분명 스카이다이빙을 하고있다. 하지만 같이 낙하를 한 동호회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스카이다이

    빙을 하는것이다. 매번 날 옥죄어오던 호기심. 오늘은 그것을 풀어보려한다. 지면에 닿는순간에 느낌. 도대

    체 그게 어떤것이길래 나를 이처럼 호기심 구렁텅이에 빠져 못나오게 하는것일까? 낙하를 하는 지금 이순간

    에도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이다. 곧 모든 궁금증은 풀려버릴것이다.

    동호회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곳엔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난 그들과 좀

    더 떨어져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새찬 바람소리가 귀를 때렸지만 왠지 공허하다. 난 너무도 설레였

    다. 날 옥죄이던 호기심을 푼다는것이 이처럼 설레는 일이였을 줄이야! 그것은 마치 처음 여자의 봉긋한 가

    슴을 만지고, 그녀의 속옷을 벗겨 관계를 가지던 그날 밤처럼 설레였다. 아니, 그보다 더 큰 설레임이다.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 하였다. 잠시후다. 잠시후면 난 바닥에 쳐 박혀 살점이 흩날릴것이다. 그리곤 푸

    른 초원에 거름이 될 것이다. 이제 곧!

    - 쿠우웅!

    "끄어어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뼈가 분질러지는 고통이 온몸을 조여왔다. 극심한 고통이였다. 마치 거인이 커다란 손

    으로 날 붙잡고 악력을 주어 힘껏 조이는듯한 느낌이다. 호기심을 해결하는 대가가 이처럼 크단 말인가?

    난 고통스러웠지만 왠지모를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 모습이 참으로 초라하고 웃겼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 순간이였다. 세상이 거꾸로 돌았다. 난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몸은 하늘로 떠올랐다. 아니, 그 반

    대였다. 내 몸은 푸른 하늘로 추락을 하고있었다.

    - 쿠우웅!

    "으아아악!"

    내 몸은 우주밖으로 나가진 못했다. 하늘에 있는 어느 경계선에 몸을 강하게 부딪쳤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할 혼란이였다. 지끈한 고통이 몸을 힘껏 조였

    다. 온몸에 뼈가 가루가 되어버린듯 하다. 정신의 끈을 놓아버릴것만 같다. 하지만 나의 목숨은 결코 끊어

    지지 않았다.

    세상은 또다시 뒤집혔다. 나의 몸은 또다시 추락을 하였다. 다시한번 지상으로 말이다.




    난 스카이다이빙을 참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거세게 반대하였다. 그 모습이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모처럼 좋아하는일이 생겼는데 그것을 반대하시다니, 아무리 나의 부모님이라도 용서가 되지

    않았다.

    몇일이 흐른후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집으로 온 날 썩은내를 풀풀 풍기는 부모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

    다. 그 모습이 마치 날 반기는듯 하다.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두 분이였지만.




    회사에선 매달 나에게 쥐꼬리같은 월급을 주었다. 회사를 다니며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다 받으면서, 돌아

    오는 대가는 고작 쥐꼬리였다. 난 화가났지만 꾸욱 참았다. 그리곤 그 스트레스를 스카이다이빙으로 풀곤

    했다. 하지만 스카이다이빙이란게 돈이 만만치 않게 든다. 점점 횟수를 늘려가던 나는 그돈이 감당되지 않

    았다. 그래서 할수있는 모든 일을 해보았다. 대출을 받고 사채를 쓰고 도둑질도 해보고... 심지어 장기도

    팔아볼까 했지만, 그런 짓을하면 스카이다이빙을 못할것만 같아 참았다. 스카이다이빙은 나에게 색다른 즐

    거움을 주었지만, 그 즐거움만큼 빚이란 녀석도 따라왔다. 이미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버린 빚을보며 난 절망했다. 모든것이 원망스러웠다. 스카이다이빙을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날 괴롭히던 상사놈도, 그리고쥐꼬리같은 월급을 주는 회사마저도.

    난 푸른 초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되어버린거 저 푸른 초원을 나의 피로 물들여 버리는건 어떨까?

    저 밑을 보니 피칠갑을 하고 관절이 기괴하게 뒤틀린 나의 시체가 보였다. 내가 상상하던 끔찍한 모습 그대로이다. 묘하게 떠올랐던 저 모습. 어쩌면 난 이 순간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이렇게 되어버릴것을.

    - 쿠우웅!

    또다시 세상이 뒤집혔다. 이세상은 언제까지 날 괴롭힐 것인가? 난 또다시 하늘로 추락했다. 어마어마한 고

    통은 점점 증폭되어만 갔다.

    푸른하늘이 나에게 말하는거 같다.

    "미련한 자식. 한낱 호기심으로 자살을해? 그러면 이 내가 용서를 해줄것 같았니?"

    호기심? 그래. 호기심이였으면 좋았을뻔 했어. 하지만 원인은 호기심이 아니야. 난 그저 엿같은 나의 모습

    이 싫어서. 그래서 모든것을 포기해버린 내 자신이 너무도 쪽팔려서! 호기심이란 핑계를 대어버린거야. 나

    도 사실 죽고싶지않아. 하지만 어쩌겠어. 이 세상이 얼마나 지랄맞을 곳이면 내가 이러한 선택을 했겠어?

    그러니 내 마음을 이해해주고 용서해주면 안되겠니?

    - 쿠우웅!

    "끄으으으윽....."

    세상이 또 뒤집힌다. 이세상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미련하게 자살을 택한 날 용서하지 않을 모양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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