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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의 소설입니다... 3
    작성자 : 바지가작다 | 조회수 : 3774 (2010-02-20 오전 4:25:45)

    *    김강사와 T교수

    문학사 김만필(金萬弼)은 동경 제국대학 독일문학과를 우수한 성적 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학생
    시대는 한때 "문화비판회"의 한 멤버로 적 지 않은 단련의 경력을 가졌으며 또 학교를 졸업한 후
    에는 일 년 반 동 안이나 실업자의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 왔지만 아직도 "도련님 " 또는 "책상물
    림"의 티가 뚝뚝 듣는 그러한 지식 청년이었다.
    s전문학교 교문(校門)을 들어선 택시가 기운차게 큰 "커어브"를 그 려 육증한 본청 현관 앞에 우
    뚝 섰을 때에는 벌써 김만필의 가슴은 두 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이학기 개학하는 날이라 학생들은 둘씩 셋씩 떼를 지어 웃고 떠들고 하면서 희희낙락하게
    교문을 들어가고 있었다. 저 학생들 저 다 큰 학생들을 앞에 놓고 내일부터 강의를 하는 것이로
    구나 하고 생각하니 몹시 기쁘기도 하나 일변 겁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었다. 김만필은
    세 내 입은 "모닝"의 옷깃을 가다듬고 "넥타이"를 바로 잡아 위의를 갖춘 후에 자동차를 내렸다.
    그윽한 "나프탈린" 냄새가 초 가을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새삼스레 코를 찔렀다. 그는 천천
    히 일 원짜리를 한 장 꺼내 주고 거스를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손짓을 하 고 무거운 정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은 김만필이 그의 울울턴 일 년 반 동안의 "룸펜" 생활을 청산하 는 날이며. 새로이 이 전문
    학교의 선생으로 시간 강사로나마 취임하는 날이며 또 이도 또한 이번에 새로 임명된 이 학교 교
    련선생과 함께 취임식의 단위에 오르는 날이었디. _1러므로 그가 기쁨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이
    학교 교문을 들어선 것은 이상해 할 일이 아닌 것이다.
    현찬을 들어서서 한참 어리둥절하다가 _1는 겨우 수부( 넌付) 에 가서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누구냐고 되묻는 것을 명함을 내주며 자기 는 이번에 이 학교 독일어 선생으로 새로 임명된 사람
    이라고 대답하니 그제서야 사무원은 몸을 납신하고 "아,씽러셔요"하면서 이 복도를 오 른쪽으로
    꺾이어 바로 둘째 방이 교장실이라고 일러 주었다.
    교장실은 넓고 화려하였다. 교장은 그 넓은 방 한복판에 커다란 .테 이블"을 앞에 놓고 두톰한 회
    전의자 위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마치 김 만필이가 들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나시피. 이
    왕에 김만필은 교장을 그의 사택으로 찾아간 일이 사오 차나 있었지만 그때에는 김에 게 대하는
    태도가 몹시 친절한 데다가 교장의 생김생김이 쭈그렁 밤송 이 같았으므로 마치 시골집 행랑 아
    범이나 대하듯이 몹시 만만했는데 이날 아침 교장실에 와서 그는 교장이요, 자기는 일개 사간 강
    사로서 마주 대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교장의 태도는 전과
    는 아주 딴판으로 독난 뱀 모가지같이 고개를 반fk 뒤로 젖히고 있어서 속심으로는 꼴 같지 않기
    짝이 없었으나 큼직하게 유덕스레 생긴 사람보다도 도리어 더 무서웠디.
    "어 ! 잘 오셨소. 자 이리 와 앉으시오."
    교장은 목소리를 지어가며 "테이블 "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말 할 때에 그는 두 볼의 주름
    살 한 줄기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김만필은 몸이 _=_:1라지는 것을 느끼며 황송해 의자에 앉았다.
    "우리 학교에 이왕에 오신 일이 있던가요. 아마 처음이죠 ?t.
    "네. 처음입니다."
    "어때요. 누추한 곳이라서 "
    "천만에요, 정말 훌륭합니다."
    김만필은 교장실 창에 반쯤 걷어 놓은 호화스런 "커튼"으로 눈을 옮 기며 대답하였다. "커튼"은
     

    정말 훌륭하였다.
    교장은 "테 이블"위에 놓인 종을 서너 번 울렸다. 급사가 들어오나 했 더니 옆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뚱뚱한 "모닝"을 입은 친구가 허리 를 굽실굽실하며 들어왔다.
    "여보게 그것 가져오게."
    "핫."
    뚱뚱한 친구는 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리를 굽실하고 도로 나 갔다. 잠깐 있다가 그는 무
    슨 종이 조각을 들고 들어와 교장에게 전했 다. 교장은 김만필에게, "김만필 씨.이것이 당신 사령
    서 입니 다, 자 이리 오시오." 김만필은 공손히 걸어가 사령서를 받아 들고 허리를 굽혔다.
    "인젠 자네도 "
    김만필이 허리도 채 펴기 전에 교장은 그의 머리 위에 대고 말을 퍼 부었다.
    H우리 학교의 한 직원이니까 우리 학교를 위해 전력을 다해 주게. 더 구나 우리 학교에서 조선
    사람을 교원으로 쓰는 것은 자네가 처음이니 까 한층 더 주의하고 노력하도록 하게."
    "핫,"
    김만필은 아까 그 뚱뚱한 친구가 하던 그대로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 를 굽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에 그리고 김군.T군을 소개하지.우리 학교 교무일을 " 교장이 말도 맺기 전에, "내가 T올시다."
    하며 뚱뚱한 친구가 몹시 친절하게 허리를 굽혔다. 김만필은 아까는 그 를 경멸의 눈으로 보았지
    만 지금 그가 이 학교 교무를 보는 이인 줄을 알고 더구나 이렇게 공손하게 자기한테 하는 것을
    보니 도리어 황송해 서 그보다도 한층 더 허리를 굽혔다.
    자, 저 방으로 가서 기다립시다. 곧 식이 시작될 테니까. 이번에 새 로 오게 된 교련 선생 A소좌
    도 벌써 와 계십니다."
    T교수는 앞서서 김만필을 그 옆방 교무실로 안내하였다. 교무실에는 A소좌가 긴 칼을 짚고 만들
    어 논 사람같이 단정하게 았아 있었다. 모 든 것이 김만필에게는 어째 꿈나라에나 온 것 같았다.
    김만필과 A소좌의 취임식은 개학식 끝에 간단하게 거행되었다. 위엄 을 차리느라고 한충 더 눈에
    살기를 띤 교장이 먼저 단 위에 올라가 김 만필을 동경 제국대학 출신의 보기 드문 수재라고 소
    개하고 이어 이번 에 새로 교련을 맡아 보게 된 A소좌는 그의 경력과 인물에 대해 자기로 서 감
    히 어떻다고 말할 생각도 없으며 다만 이번에 특히 그의 분주한 사무의 틈을 타 우리 학교일을
    보아주게 된 데 대하여 감사의 말을 드 릴 뿐이라는 인사를 한 후에 김만필과 A소좌는 동시에
    단 위로 올라갔 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가는 김만필이 앞서서 "나프탈린" 냄새를 피 우며 층대
    를 올라가고 바로 그 뒤에 검붉은 햇볕에 탄 얼굴과 강철같은 체격에 나이도 김만필의 존장벌이
    나 됨직한 소좌가 가슴에 훈장을 빛 내며 유유히 따랐다. 강당 안에 가득찬 학생들은 이 진기한
    행진에 거 의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터뜨릴 뻔하였으나 "기오쓰갯"하는 체조 선생 의 일갈로 겨우
    참았다. 김만필과 A소좌가 나란히 단 위에 서자 체조 교사는 다시 "게 레잇"하고 외쳤다. 동시에
    수백 명 검은머리가 일제히 숙였다.
    생각하면 S전문대학교의 신임 교원 취임식이 이렇게 장엄할 줄이야 미리부터 모를 바 아니었지
    만 막상 눈앞에 대하고 보니 김만필은 기가 막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기는 무엇으로 수백
    명 학생의 경례를 받을 가치가 있는가. 김만필은 예를 받고 섰는 그 짧은 동안에 착잡된 모순의
    감정으로 그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였다. 대학시대에 "문화비 판회.의 한 "멤버 "이었던 일, 졸업
    하자 "취 직 "을 위해 일상 속으로 멸 시하던 N교수를 찾아갔던 일, N교수로부터 경성의 어떤
    유력한 방면 으로 소개장을 받던 일. 그리고 서울로 돌아온 후 수차 조선일보, 동아 일보 등에 독
    일어 좌익문학 운동을 소개하던 일. 그리고 H과장의 소개 로 작년 가을에 이 s전문학교 교장을찾
     

    던 일 이 모든 기억은하 나도 모순의 감정없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생의 모순의 축도를
    자기 자신이 몸소 보이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지 식계급이란 것은 이 사회에서는 이중 삼
    증 사중 아니 칠증 팔중 구중의 증첩된 인격을 갖.드록 강제되는 것이다. 어떤 자는 그 많은 인격
    중에서 자기의 정말 인격을 명확하게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자는 자기 자신의 그 수많은 인격
    에 현황해 끝끝내는 어떤 것이 정말 자기의 인격인지도 모르게 되 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자기
    는 이 두 가지 중의 어느 것인가 ? 이 모든 생각이 김만필의 머리를 번개같이 지났다. 그는 학생
    들이 경 례하고 있는 _1 짧은 시간이 지긋지긋하게 지리하게 생각되었다. 어께 눈이 핑핑도는 것
    같고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식이 끝나고 강당에 나올 때 T교수는 친절히김만필 아니김강 사
    의 옆으로 오며, ,"긴상" 몹시 약하시구먼. 얼굴 빛이 대단히 흥지 않은데요. 어디 괴 으로우십니까
    ?
    하고 물었다.
    아 뇨.별로 몸에 고장은 없습니다마는 "
    김강사는 등에 식은 땀이 흐른 것을 느끼며 대답하였다.

    김만필은 생전 처음 서는 교단이라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1날 밤은 늦도록 공부하였다. 학생들의
    독일어는 거의 "아 -,베 -,체 -" 부터 가르치는 것이니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_1래도 실수가 있을
    까봐 " 아 -.베 -,체 -"하고 발음 연습까지 해 보았다.
    아침의 교원실은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기운찬 소리 으로 의미없는 대화를 껄껄거리
    며 끝없이 계속되었다. 김강사는 원래가 말이 적은 데다가 "신 마이 "고 보니 어디가 말 한마더
    붙여 볼 용기가 없었다.
    교원실의 그 소동을 피해 신문실로 들어가 새로 온 독일의 _1림 신문 을 펴 들고 있노라니 문이
    열리며 T교수의 냉글하는 친절한 얼굴이 나 타났다.
    "어 여기 와 계셨습니까. 신진 학자는 디르시군."
    김강사는 의미없이 얼굴을 붉히며, "어떠십니까, 오늘은 매우 산들산들합니다 "
    하고 인사에 궁했다.
    T교수는 신문실로 들어와 김강사 옆에 와 앉으며, "바로 이번 첫째 시간이 당신 시간이지요 ? "
    네.
    "허...... 무어. 어련하실거 아니지만 그래두 당신은 교단에 서시는 것이 처음이 되니까. 더구나 우
    리 학교로 말하면 학생이 섞여 있으니까 한층 더 해나가기가 어 렵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버릇
    이란 처음 오는 선생, 더군다나 당신같이 젊은 선생에게는 쓸데없는 질문을 자꾸해 괴 롭게 굽니
    다. 나도 역시 그 전에 당한 일입니다만 말하자면 학생이 선 생을 시험하는 게랄까요. 이 시험에
    급제를 헤야만 학생들을 다스려 나 가지 만일 떨어지는 날이면 뒤가 몹시 괴롭습니다. 허.... 어
    허......" T교수는 말을 끝내고 호걸같은 웃음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김강사는 교수의 친절을 감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쯤이야 자기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바이지만 아무도 자기한테 좋
    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는 이때에 일부러 자기를 찾아와 이런 귀뜀을 해 주는 것이 몹시 고
    마웠다.
    T교수는 몇 마디 잡담을 더 하고 곧 일어나 나갔다. 뚱뚱한 몸을 흔 들흔들하며 나가는 뒷모양이
    김강사에게는 몹시 믿음직해 보였다. 사 실을 말하면 김강사는 과거에 "문화비판회원"이었던 것이
    선생으로서 는 "정강이의 흠집"인 데다가 이 학교를 오게 된 것도 초빙을 받아서 온 것이 아니라,
    이 학교 교장이 H과장 밑에 꼼짝을 못하는 관계로 또 H과장은 보통 사제 이상으로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 동경제대 N교수 에게 대한 의리로, 이렇게 어쩔 수 없는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만 필에게 일주일에 네 시간의 강사의 자리가 차례로 온 것이었으므로 김 만필은 이 학교 안에
    우선 교장을 필두로 자기를 환영치 않는 공기가 있을 것을 예기하고 있었다. 교장은 정말로 김강
    사를 싫어서 그러는 것 인지 또는 그의 오종종한 성미 때문에 =I 떻게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
    으나 어쨌든 그를 별로 환영하지 않는 듯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당연 한 일이요. T교수같이 친절
    하게 구는 것은 예기치 못하였던 바이다.
    학생들은 예상보다 얌전들 하였다. 질문이 있을 때마다 김강사는 "이키 인제 왔구나"하며 웠수나
    만난 듯이 준비를 차렸지만 일부러 선 생을 골탕 먹이기 위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새
    로 온 젊은 선 생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오는 동정의 빛이 보였다.
    시간을 끝내고 교원실로 돌아오자 T교수는 친절하게도 또 찾아와서 처음 서는 교단의 감상이 어
    떠냐고 물었다.
    "감상이 무어 별거 있습니까. 학생들은 생각던 것보다 얌전하더구먼 요.

    김강사는 학생들이 처음 온 선생에 대해 으레 해 본다는 그 시험에 자기가 합격이나 한 듯이 약
    간 득의의 웃음을 띠며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긴상", 얌전한 것은 표면뿐입니다. 별별 고약한 놈이 다 있으니까요.미리 주의해 드럽
    니다마는 "
    하면서 T교수는 학교 수첩 학생들이 "엥마쯔"라 부르는 것 을 꺼내 김강사 앞에 놓고 연필 끝으
    로 죽 흩어 내려가다가, "우선 이 "스스끼"란 놈만 해도 웬 고약한 놈입니다. 학교는 결석만 하고
    모처럼 출석하면 선생한테 시비나 걸려 덤비고 교실에서는 장난 이나 치고 그리구 게다가 품행이
    좋지 못해 여학생한테 편지 질하기가 일쑤입니다. "스스끼"뿐입니까, 옳지, 이놈 이 ".야마다"란
    놈도. 도대 체 이 반은 급장부터 맘에 안 듭니다. 학교 성적은 좋지만 성질이 못 되 어서."
    김만필은 T교수의 의외의 열변에 기가 막혀 가만히 그의 얼굴을 치 어다 보았다. 그의 눈은 층심
    으로부터의 미움에 타고 있었다. 신참자 인 김강사에게 들려 주는 친절한 조언(助言)으로서는 좀
    정도가 지나 치리라고 생각될이만큼.
    "허지만......"
    하고 김강사는 T교수의 얼굴 빛을 보아가며 가만히 자기의 의견을 끼 웠다
    . 우리는 학생을 대할 때 좀 더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대하여야 할 것 이 아닌가요.
    "허 "
    하고 T교수는 조금 체면이 안 된 듯, "그야 물론 그렇지요. 허지만 학생들이 선생들의 그 친절을
    받아주 지 않는데야 어떡하오. 당신도 이제 좀 치여나 보시면 차차 내 생각에 가까워지십니다. 두
    고 보시오."
    T교수는 마침 급사가 찾아왔으므로 그대로 교무계로 가 버렸다. 그 러나 김강사는 몹시 우울하였
    다. T교수가 인격상 결점이 있는 것인 가 ? 또는 자기가 아직 책상물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
    그러나 어쨌 든 김강사에게는 T교수에게 몹시 탈을 잡히던 "스스끼"라는 학생이 도 리어 흥미가
    있었다.
    며칠 지난 후 토요일 밤이었다. 김만필은 오래 찾아 보지도 못한 H 과장에게 치하의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H과장이 교장에게 억지로 떼 를 쓴 것이 아니었더면 김만필은 도저히 s전문학교에 자
    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H과장은 조선에 와 있는 관리로서는 퍽이나 평민적인 친절한 신사
    였다.
     

    H과장은 집은 북악산 밑 관사촌의 북쪽 끝으로 있었다. 저녁 후의 고요한 관사촌은 김만필의 발
    자국 소리에 놀란 "셰퍼드 "인지 무서운 개들의 짖는 소리에 몹시 요란스러웠다. 김만필이 닌과장
    집으로 들어 가는 골목을 돌려는 순간 등 뒤에서 다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 다. 고개를 획
    돌리자 바로 등 뒤에까지 온 그 사람의 얼굴과 거의 마주 칠 뻔하였다
    . 어 !"
    "어 이거 누구시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뒤에 온 것은 무슨 보퉁이를 낀 T교수였
    다 "얏데루나"(할 짓은 다 하는구먼. )"
    T교수는 김만필의 어깨를 툭 치며 비밀을 서로 통한 사람들끼리만이 서로 주고 받는 그러한 미
    소를 띠었다. 미소의 의미는 김만필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베쓰니 얏데루 와께데모 아리마생가"(별로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 닙니다.)
    "흥. 당슨도 나는 책상물림으로만 알았더니 상당하구먼." T교수는 여전히 :그 미소를 띠고 있었
    다.
    "하긴 당신도 아시겠지만 나는 H과장의 힘으로 이번에 취직이 된 것 이니까요. H과장은 나의 은
    인이니까요."
    "그야 물론 그렇지. 그떻구말구. 나는 H과장하고 고향이 한 곳이라 오.
    "네 그러세요."
    김만필은 더 할 말이 없었다.
    T교수는 잠깐 무슨 생각을 하더니 별안간 H과장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며 김만필을 보고, "
    잠깐만 거기서 기다려 주시오. 우리 같이 들어갑시다." "꿔요 ?
    "허...... 이거 왜 이러슈 세상이란 다 이런 게 아니우 ? " 하며 T교수는 손에 들었던 물건을 한번
    번쩍 쳐들어 보이고 부엌 문으 로 사라졌다.
    김만필은 T교수가 가지고 들어간 것이 무엇인지를 캐달았다. 이 꼴 을 한 번 학생들을 보여 주었
    으면 하고 생각하니 김만필의 마음은 몹시 우울하였다.
    부엌 속에서 하녀하고 무엇인지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T 교수는 도로 나왔다. 이번에
    는 들어 갈 때와는 달리 몹시 위엄있는 태 도를 회복하고 있었다.
    "기다리셨지요."
    그는 김만필에게 간단히 말하고는 잠자코 앞서 가서 정면 현관의 초 인종을 눌렀다.

    그날 밤 H과장 집에서 나온 후 T교수는 자꾸 어디든지 잠깐 차라도 마시러 같이 가자고 졸랐다.
    김만필은 그것을 감사하게는 여길망정 거 절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그를 따라 갔다.
    두 사람은 "세르땅"이라는 찻집으로 갔다. 이 집은 김만필도 몇번 간 일이 있었으나 T교수는 매
    우 친히 아는 것 같았다. "카운터"에 앉은 매 몰스럽게 된 여자가 T교수가 문을 들어서자마자.
    "아라 센세(先生). 이랏샤이마시. 스이붕 오히사시 부리네." 하고 정떨어지게 외 쳤다. 무슨 의미인
    지 T교수는 입에다 손가락을 대 이고 쉬 쉬 하면서. 그러나 벙글벙글 웃으면서 구석 "테이 블"을
    차지하였다.
    "흥차 둘. 위스키를 타 다구."
    T교수는 보이에게 주문을 하고 김만필을 보며, "긴상", 어떠슈, 술을 잘 하신다지요."
    "천만에요,조금만 먹으면 빨갛게 올라서 "
    "이거 왜 이러슈. 소문 다 듣고 앉았는데, 허...... 허......" T교수는 의미 모를 너털웃음을 크게 웃고
     

    나서, "긴상". "긴상" 일은 내 다 잘 알고 있지요. 벌써 작년에 H과장께 당신 말씀을 들었어요. 사
    실은...... 이거 무어 내가 공치사하는 게 아니 라 당신을 교장에게 추천한 것도 실상은 내가 한 것
    이지요. 허...... 어
    김만필은 T교수의 후림대와 너털웃음에 몹시 야비한 느낌을 받았으 나 하여간 고개를 숙여 그에
    게 감사의 표정을 아니할 수 없었다. T교 수가 무엇 때문에 자기를 추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
    나 적어도 담과장 의 명령을 교장에게 전하는 일만은 하였음직한 일이었다. T교수는 차 를 한숨
    에 마시고 이번에는 알짜 위스키를 청하며, "당신은 나를 모르셨겠지만. 나는 당신을 이왕부터 잘
    알고 있었습 니다. 사실은 저 작년부터 나는 조선 말을 공부하느라고요." 김만필은 T교수가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T교수가 배우 는 조선 말과 김만필과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 T교수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김만필에게 친밀의 감정을 표시하기 위한 것 같았으 나 김
    만필은 무슨 말이 또 나올는지 몰라 슬그머니 겁이 나는 것이었 다.
    "......조선 말을 배우느라고 신문에 나는 소설과 논문을 학생더러 통 역해 달래며 읽었는데 우연히
    당신이 쓰신 "독일 신흥 작가 군상(群 像)"이란 논문을 읽었어요. 정말 경복하였습니다. 독일 문학
    에 대해 당 신만큼 연구와 이해가 깊은 이는 온 일본 안에도 적을 것입니다. 그래 서 나는 H과장
    집에서 당신 이야기가 났을 때 그런 분을 우리 학교에 맞았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고 속으로
    대단 바랐던 것입니다. 허허 허, 좋은 일입니다. 앞으로도 많이 써 주십시오."
    김만필은 상처나 다친 듯이 속이 뜨끔하였다. 도대체 이런 말을 하는 T교수의 내심을 알 수 없었
    던 것이다. 작년 겨울에 조선일보에 연재하 였던 "독일 신홍 작가 군상"이란 논문은 몇 푼 안 되
    는 원고료를 목표 로 총총히 쓴 것에 지나지 않으며 더구나 그 논문의 내용은 독일 좌익 작가의
    촬동을 소개한 것이므로 지금 그런 종류의 일은 그의 s전문학 교에서의 지위를 위해서는 절대로
    비밀에 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밀을 T교수가 일부러 처들어 칭찬하는 것은 칭찬이
    라느니보 다 도리어 위협으로 들렸다. 도대체 T교수는 무슨 까닭으로 김만필에 게 친절을 억지로
    보이려는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
    "세르팜"을 나왔을 때에는 둘이 다 얼근히 취하고 시간도 열한 시가 지났었다. 그러나 T교수는
    어디든 한군데 더 다녀가자고 놓지 않았다 T교수는 몹시 명랑한 태도로 앞장을 서서 "바하트.암.
    라인"을 콧노레 로 부르며 "아사히마찌(욱정)"어느 뒷골목 깨끗하게 차린 "오뎅"집 "노랭"을 젖히
    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에도 그는 가끔 오는 눈치인 것 이 삼십이 넘을락말락한 "게 이샤(기생
    )"퇴물인 듯싶은 여자가 아까 "세르팜"의 마담이 외치던 것과 똑같은 소리로 외치는 것으로 알
    수 있 었다. 다만, "센세 "를 "센세 이 "라고 발음하는 것만이 달랐다.
    김만필과 T교수가 그 "오뎅 "집을 나왔을 때에는 둘이 다 비틀걸음을 켰다. "삼월 백화점" 앞에
    와서 T교수는 단장을 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걸어가겠으니 택시는 일 없다고 김만필이 사
    양하니까 전차도 끊어졌는데 여기서 동소문 안까지 어떻게 걸어 가느냐. 당신 집이 우리 집에서
    가깝지 않느냐고 T교수는 말했다.
    "아니 우리집은 어떻게 아십니까 ? "
    김만필은 너무나 의외여서 물었다.
    H아다마다요. 더러 댁 문 앞으로 지나다니는 걸요. "긴상" 문패가 붙 었기에 그저 그런가 했지요.
    우리집은 긴상 댁에서 바로 거깁니다. 그 저 c씨의 커다란 문화주택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밑
    입니다. 인제 자주 놀러 오세요,"
    "네 놀러 가지요."
    하고 김만필은 대답했으나 속심으로는 결단코 T교수를 찾아가지 아니 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어째
     

    서 그는 탐정견같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일까 ? 그와 교제를 계속하면 할수록 자기는 손해
    만 볼 것같이 생각 되었다.
    자동차가 박석고개를 전속력으로 넘어갈 때 T교수는 김만필의 귀에 다 대고, ,인제 차차 아시겠
    지만 우리 학교 안에도 여러 가지 세력이 있어 대 단히 시끄럽습니다. "긴상"도 주의하시오. 그리
    고 仁군에게도 주의하 시오."
    하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속삭였다. C파는 사람은 지난 봄부터 s전문 학교의 독일어 강사로 있는
    사람이었다. 인물이 심술궂게 된 데다가 김 만필과 같은 독일어 선생이므로 어찌 생각하면 경쟁
    자의 입장에 있는 듯도 하나 C의 우월한 지위는 도저히 김만필의 대적이 아니었으며 또 김만필
    은 일주일에 네 시간이든 한 시간이든 시간을 얻은 것만 고마웠 지 그것을 오래 하리라 또는 좀
    더 얻어 보리라는 욕심도 없었던 것이 다.
    김만필이 무슨 영문을 모르고 대답을 못하고 있노라니까 T교수는 별 안간 껄껄 웃으며,
    아니 무어 별로 마음에 새겨 들을 것은 없습니다. 그저 그렇단 말이 I1_티. "
    그떻습니까."
    김 만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떨어진 대답을 하였다. 무슨 무서운 악 몽(惡夢) 에 붙들린 것 같아
    서 일각이라도 빨리 T교수의 옆을 떠나고 싶었다.

    s전문학교에는 김만필은 일주일에 이틀밖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러 나 그 이틀이 김강사에게는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 첫째로 그 쭈그 렁 밤송이 외양도 맘씨도 쭈그렁 밤송이같은 교장을
    생각하면 당 초에 정이 뚝 떨어졌다, 교무계에를 가면 T교수가 너털웃음을 치며 친 절스레 말을
    거는 것이 무서웠고. 교원실에를 가면 모두가 제 잘났다고 김강사 같은 것은 외쪽 눈으로 거들떠
    도 안 보는 데다가 언젠가 T교수 가 주의하라고 말하던 C강사의 그 심술궂게 생긴 낯짝도 보기
    가 싫었 다. 하루 이틀 지나가는 동안에 김강사는 학교에 나가도 교장실에도 교 무계에도 들르지
    않고 교원실로 가 모자를 벗어 걸고는 바로 신문실로 들어가 독일서 온 신문잡지를 펴들고 종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교실에서는 언젠가 T교수가 귀뜀해 주던 "스스끼"라는 학생에게 특 별히 주의를 했으나 별로 시
    비를 걸려는 눈치도 안 보이고 평범하게 착 실히 공부하는 모양이었다. 가끔 역독(譯讀)을 시켜
    보아도 번번히 예 습을 해 온 것이었다.
    시월 하순의 어느 일요일 아침 후 김만필이 자기 집에서 새로 도착한 "룬드.샤우"를 펴들고 있노
    라니까 마당에서 "긴센세 이 "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보니 그것은 의외에도 무슨 책을
    옆에 낀 "스스끼" 였다. T교수의 말이 생각났으나 도리어 반가운 생각이 나서 거뜬 방으 로 청해
    들었다.
    "스스끼"란 학생은 광대뼈가 약간 내밀고 아래턱이 크게 생긴 것이 조선 사람의 얼굴 비슷한 데
    다가 고집이 좀 있어 보였다. 그 얼굴의 인 상이 T교수를 불쾌케 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말
    하는 품은 그의 생 김생 김과는 달리 상냥하고도 조리가 있어 두뇌가 명석함을 보였다.
    그는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아직 일 년도 안 되었건만 독일 문학 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어떤 것은 김강사도 모르는 것을 알 고 있었다. 더구나 그해 봄에 "히틀러 "가 독일의 정
    권을 잡은 뒤의 일 은 김만필이 취직에 쪼들려 자세히 알아볼 여유가 없었던 만큼 "스스 키 "가
    도리어 자세하였다.
    "에른스트 톨러", "게오르그 카이서 ". " 렌 레마르크". 심지어 "토마 스 만" 형제까지 예술원을 쫓
    겨났다지요 ?"
     

    그랬지요,"
    김만필은 어디까지든지 "스스끼"를 경계하면서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문학자 박해로부터 "
    파시즘" 자체의 공격으로 들어갔다. "스 스끼"는 열을 띠어 가며 "히틀러 "를 공격하였다. 처음 찾
    아온 김만필을 어째서 그리 신용하는지 "스스끼"는 할 말 아니 할 말 섞어 떠들었다.
    그 이야기하는 품이 몹시 단순하였다. 만일 "스스끼"가 김만필 이외의 선생을 찾아가, 이를테면 T
    교수 같은 이를 찾아가 그런 말을 떠들어댄 다면 미움을 받을 것은 정한 이치였다.
    이야기는 "파시즘"으로부터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스스끼"는 s 전문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은
    아무 생각없이 그시 그시의 생활에 도취 되어 있는 것을 몹시 공격하고 그것도 다 시세의 변천.
    학교당국의 가 혹한 탄압 때문이라고 불평을 말했다.
    "선생님이 동경 제대시 "문화비판회원 "으로 활동하실 때만 해도 그 떻지는 않았지요 ?"
    "스스끼"의 질문은 김강사에게는 청천의 벽력 까지는안 가더 라도 너무나 의외였다. 김만필은 취
    직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그가 일찍 이 "문화비판회웠 "이었던 것을 아무에게도 말한 일이 없고
    그것이 흐 시나 알려질까 봐 몹시 주의헤 왔던 것이다.
     "문화비판회 "라니요 ?"
    "선생님이 ]I 회원으로 굉장하게 활동하신 것은 학생들이 모두들 압 니다.
    "스스끼"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 뇨. _1건 무슨 살못이겠죠. 나는 _1런 회는 잘 모르는데." 김만필은 모처럼 얻은 그의 지위와
    자기의 양심과를 저울에 달아가 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세요 ?
    "스스끼"는 몹시 의외라는 표정을 하면서, "아. 그 회가 해산할 때 선생님이 일장 연설까지 하셨
    다는데요 ?" 그것은 사실이었다. 또 =I 사실은 지금의 김강사로서 결코 후회하는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데체 자기의 현재 지위에 불리한 이러한 소문은 어디로부터 나는 것일까 ? 김강사는 자기
    가 가르치는 학생 중의 이 사 람 저 사람을 생각해 보았으나 자기의 과거를 앎직한 사람은 생각
    나지 않았다.
    "그런 소문은 대체 어디서 들었소 ?"
    요전 "다까하시"라는 학생이 T교수한테 놀러 갔더니 T선생님이 =I 러시더 래요 ?
    "T선생님이 무어라구 ? "
    "김선생님은 그만큼 수재시라구요. "
    "스스끼 "는 김강사의 질문에 그만 겸연쩍어 얼굴이 붉어지며 웃는 얼굴을 지었다. T교수는 또
    어떻게 해서 그런 사실을 알았으며 알았기 로 무엇 때문에 _1런 말을 학생들에게 펴 놓은 것일까
    ? 괼연쉰 그것은 무슨 계교를 쓰는 것에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더 이 것은 성녕코 김강사 를 먹으
    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김만펼에 게는 오늘 자기를 찾아와 독일 문학으로부터 "히들
    러 "와 "파시즘"과 힌 사회정세의 공격 까지를 탁 터놓고 이야기하던 "스스끼"의 본심까지도 의심
    되기 시작하 였다. 의심을 시 작하고 보면 다음다음 끝이 없었다. 대체 개학식 다음 날 왜 T교수
    는 유난스럽게도 "스스끼" 험담을 자기에게 들려 주었을 까 ? 딘과장 집에서 만나던 밤에 왜 T
    교수는 자기에게 한 턱을 써가며 친절을 보여 주면서 슬그머니 자기의 비밀을 아는 것을 암시하
    였을 까 ? 그리고 이 "스스끼"란 학생은 사실은 T교수와 한 통이어서 오늘 김만필의 본심을 한
    번 떠보려 온 것이나 아닙까 ? ...... 이렇게 생각하 고 보니 김만뀔은 공연히 모든 것이 무서워지
    며 앞에 앉았는 "스스끼" 의 얼굴이 새삼스레 치어다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스키 "는 김만
    필의 표정이 별안간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 도리어 의외라는 듯이 김만 필의 얼굴을 치어다보고
     

    있었다. 김만필은 "이 놈이 이렇게 순진한 체 하고 있어도 실상은 T교수의 "스파이"이기가 쉽다"
    하고 생각하니 "스 스끼"의 그 놀란 듯한 표정이 도리어 가증스럽고도 무서웠다.
    "스스끼"는 흥이 깨진 듯이 한참 앉았다가 모자를 들고 일어선다. 그 의 얼굴에는 무엇을 생각하
    는지 미처 결단을 못해 곤각(困레)하는 표 정이 떴다. 일어선 채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는 결심한
    듯이 소리를 낮 추어
    , 사실은 선생넘께 청이 있어 왔는데요."
    하고 김만필이 얼굴을 잠깐 쳐다보고, 우리반 안에 조금 생각있는 동무 몇이 모여 독일 문학 연
    구의" .1룹" 을 만들었는데 선생님 종 참가헤 주시지 못할까요 ?" "스스끼 "의 목소리는 몹시 진
    실하였다. .7L러나 불안(不安)과 회의 (懷疑)에 쪼들린 김만필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를 해하려는
    흉계로만 들렸다.
    "바빠서 난 참가 못하겠소."
    그는 난번에 "스스끼"의 청을 딱 거절했다.
    "선생닝 듬 계신 대로라도-....."
    "스스끼"는 다시 열심으로 청했다.
    "몹시 바쁘니까 도저히 못 가겠소."
    김강사는 여전히 딱 잡아떼었다.
    정 그러시면 하는 수 없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스스끼"는 몹시 실망한 낯으로 모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대문을 나 갔다,
    "스스끼"가 찾아 왔다 간 후 김만필의 우울은 한층 더 심했다, 일종 의 강박관념(强迫觀念) 에 쪼
    들리는 정신병자같이 김만필은 항상 무엇 엔가 마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우울은 또 그
    의 태도를 한충 더 비겁하게 하였다. 그는 s전문학교에 가면 어째 모든 사람이 자기를 손가락질
    하며 공론하는 것 같아 점점 더 동료들과 말을 하기도 싫어졌.
    다. 교장도 T교수도 H과장까지도 영영 찾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T교 수는 가끔 자진해 김강사를
    찾아와 말을 붙였지만 교장은 가을 이후 겨 우 두서너 번 낭하에서 마주쳐 간단히 인사를 교환하
    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날이 감에 따라 김강사는 s전문학교 직원 사이 의 공기를 차차로 짐작하게
    되었다. 자세히는 모르나 지금 세력을 잡고 있는 교장과 T교수의 일파가 대가리를 휘젓고 있고
    그에 대항해 물리 학의 s교수와 독일어의 C강사가 대립해 있는 듯싶었다. 김만필은 그 어느 편에
    도 가담할 이유도 자격도 없었으나 교장과 T교수에 대한 반 감 때문에 슬그머니 c강사 편으로
    동정이 갔다.
    s교수는 교장 반대파라 해도 비교적 든든한 지위를 갖고 있었으나 C 강사는 까딱하면 이 두 파
    의 알력의 희생이 될 듯싶어 과부의 설움은 과부가 아는 격으로 그에게로 동정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c강사의 심술궂게 된 얼굴과 김강사의 "히포콘드리"는 결합 될 기회가 없이 지냈다.
    흐린 하늘에서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고 가게 처마마다 "세모 대매 출"의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연말이 가까운 어느 날 아침 김강사는 수 업하러 들어가다가 낭하에서 T교수와 마주쳤다.
    "몹시 춥습니다."
    "대단히 추운데요."
    인사를 던지고 지나가려니까 T교수는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저 잠깐만"
    하고 돌아서서 김강사를 멈추었다.
    "저 이런 말씀은 허기가 좀 무엇하구먼두 "
     

    하고 T교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소리를 낮추어.
    "긴상". 가을 생각하세요 ? 저 딘과장 집에서 만나던 밤......"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김강사는 잠자
    코 T교수를 쳐다만 보았다. 교 수는 여전히 웃으며, "내가 과자상자 들고 간 것 보았지요. 세상이
    잘 다 그런 갭니다. 우 리 교장도 그런 것을 대단 생각하는 사람이니 연말도 되구 허니 한 번 과
    자나 한 상자 가지구 찾아가 보시란 말이오."
    "흐......"
    김강사는 할 말이 없어 얼굴을 비뚤어뜨린 웃음으로 대답하고 그대 로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시간에는 가르치는 데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T교수의 그 말에만 정신이 팔렸다. T교수는 대
    체 무슨 동기로 자 기에게 그런 말을 또 들려 주는 것일까 ? 친절인가 ? 조롱인가 ? 그러 나 그
    것은 어쨌든 T교수의 그 말로 교장이 김강사에 대해 몹시 불쾌하 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밤에 김강사는 "명치옥"에 가서 서양과자를 한 상자 샀다. 윗 덮개에 교장의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자기의 명함을 붙였다. 그러나 그 의 마음 속에서는 종시 두 가지 의사가 싸우고 있었다. 창
    피하다. 아무 리 자기를 위해서라해도 차마 이 짓만은 할 수 없다. 이제 이왕 노염을 산 다음에야
    이까짓 과자상자를 사다 주면 무얼 하1-: 냐. 도리어 노염을 돋울 뿐이다. 내가 이것을 사다 주떤
    은 등뉘에서 "r 가 _7I 러卞능글한 웃음을 띠고 나의 어리석음을 조소할 것이다. 아니 7 I.래도 .1
    렇지 않 아. 이것이 세상이 아닌가. 나는 나의 씬물을 반조 기뻐하고 또는 나의 어리석은 심정을
    조롱하는 사람을 도리어 경멸하면 ?I만 아닌가. 선물 을 보내는 것 때문에 더 럽혀지는 것은 나의
    인격이 아니라 도리어 받는 자의 인격이 아닌가......
    그퍼나 김강사는 드디어 그 과자상자를 교상의 집에까지 가지고 갈 용기는 없었다. 전차를 타고
    가다 말고 중간에서 네려 힌창이나 헤매다 가 생각난 것이 욕심쟁이로 일가간에 돌림뱅이가 난
    아주머니였다, 아 주머니는 뜻 아니한 선물에 무슨 영문을 모르겨 7I 러니 넌지시 과자상 자를 받
    아들었다.

    어느덧 동기 휴가가 되고. 새헤 가 되고, 다시 학교가 시작되었다. 그 러나 그 동안 김강사는 아
    무 데도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 책상 위에 는 먼지가 쌓이고 외국서 온 신문 잡지는 겉봉도 안
    뜯긴 채 방안에 흩 어졌으나 그것을 정돈하기도 싫었다. 김강사는 아 침에 일어나서는 밥 을 한
    술 떠넣고 바람 부는 거리를 헤매는 것이 일파가 되었다. 피견하 면 거리에 갑자기 많아친 찻집
    을 찾아 정신 나간 사람같이 앉아 있었 다. 날이 갈수록 그는 점점 더 피곤을 느꼈다. 감당해 나
    가기에는 너무 나 많은 모순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편으로든가 그는 키 모순 의 터져 나
    갈 길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7I 것을 구할 방도와 용 기가 없는 것이었다.
    L"ennur lur vrnt
    벌써 칠팔 년 전에 읽던 "도오데"의 소설에서 우연히 기억한 이 짧은 구절이 무슨 깊은 의미나
    가진 것처럼 매일같이 머리에 떠올랐다 T교수는 겨울 동안에 몸이 한층 더 뚱뚱해진 것 같았다.
    아무리 추 워도 답답하다고 바지 밑에는 잠뱅이 하나밖에 안 입고 다니건만 얼굴 은 기름이 번
    질하게 흐르고 붉은 빛이 이글이글하였다. 교무실 안은 그 의 너털웃음과 떠드는 소리로 일상 떠
    들첵하였다. 겨울 이후로는 그는 조선의 민속(띠浴)을 연구한다고 젊은 무당과 양금 가야금 뜯는
    기생 을 돼지떼처럼 몰고 돌아다녔다. 학교에서는 누구를 붙들기만 하면 무 당의 신장 내리는 신
    비에 대해 끝없는 열변을 토하였다. 그리고 T교수 가 젊은 무당이나 기생을 데리고 무엇을 연구
    하는지 아무도 모르듯이 또 그가 일상 떠들닌 웃고하는 이면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는 T교수가 또 예의 인품 좋은 웃음을 띠고 김강사를 찾아와 집 으로 나가는 길에 장깐만
    어디로 같이 가자고 청했다. 김강사는 지금까 지 T교수와 접촉해서 유쾌한 기억을 가진 일은 한
    번도 없었으나 어쨌 든 또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이 갔던 "세르광"이라는 찻집으로 갔다. 그러나 T교수의 이야기는 또 언제나
    마찬가지로 불쾌한 것이었다.
    "어제 저녁에 H과장을 만났더니 "긴상"을 좀 만나자고 .1럽디다......
    우리 교장의 성미는 내가 잘 아니까 요전에도 무슨 과자상자라도 갖다 주라니까 아마 안 닝랬지
    요. 허. ...."긴상 "은 실례의 말이지만 아직 세 상을 모른단 말이오. 무슨 말이 어떻게 들어 갔는지
    나는 모르지마는 어째 도무지 공기가 좀 제미없는 듯하던 걸요. 아마 H과장도 이 근래 는 한 번
    도 안 찾아갔지요. 그것도 다 " 긴상"의 섣부른 짓이란 말씀이 오. "긴상"으로 말하면 H과장의 추
    천으로 들어 왔겠다. 잘만 하면 차 차 시간도 더 얻을 수 있구 할 텐데 왜 "헤다"를 한단 말씀이
    오. " T교수는 층심으로 김강사를 동정하는 눈치를 보였다. 어찌 생각하면 ?I 말도 그럴 듯한 말
    이나 김만필에 게는 어째 T의 하는 말이 뺨치고 등 만지는 수작같이 생각되었다.
    "네.잘 알았습니다. H과장은 곧 찾아가지요."
    그는 침이나 뱉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으로 곧 H과장 을 찾아갔다. 불안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H과장 집 현관에는 마침 손이 있는지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응접실에는 H과장 혼
    자서 앉아 있었다. 하녀가 와서 "테이블" 위의 찻종(茶鐘)을 치우고 있는 것이 누가 왔다가 금방
    간 모양이다.
    H과장은 웬일인지 노기가 등등해 앉아 있었다, 일상의 그 온후하던 안색은 간 곳 없고 독살스런
    눈으로 김만필을 노려보았다.
    "무엇하러 왔나 ? "
    그는 김만필이 방을 들어서자마자 대고 쏘았다. 김만필은 너무 의외 여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겨
    우 대답하였다.
    "T말이 과장께서 좀 만나자고 하신다기에.... -"
    만나자고 해야만 만나겠나. 자네한테 긴할 때는 자꾸 찾아 오고 자.
    네한테 일 없이 되니까 발을 뚝 끊는 그런 실례의 경우가 어디에 있 나 ! 그러기에 조선 사람은
    배은망덕을 한다고들 하는 게야." "잘못 되었습니다. "
    김만필은 앉지도 못하고 과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하녀가 차를 가져 왔다. H과장은 노
    한 소리를 한층 높여.
    "자네는 또 그런 경우가 어디 있나. 나는 자네만 믿었지, 남을 그렇 게 감쪽같이 속여 남의 얼굴
    에 똥칠을 해 주는 그런 법이 어디 있나." "제가 과장님을 속이다니요 ?
    "속이다니요 ? 자네는 나한테 와서 취직 청을 할 때 무어라고 ?랬 어. 사상 방면에는 절대로 관
    계 없다고 그랬지. 그래 그렇게 남을 감쪽 같이 속이는 데가 어디 있나."
    을 것이 온 것이다, 라고 김만필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되고 보면 어디까지 한 번 버티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상이니 무어니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더군다
    나 과장님을 속이다니요.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무엇 ! 그래도 자네는 나를 속이려나 ?"
     

    H과장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찻종을 덜그럭 하고 놓고 의자를 뒤로 떠밀며 몸을 벌떡 젖혔다, 그
    때 이웃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언제나 일반으로 봄 물결이 늠 실늠실 하듯. 온 얼굴에 벙글
    벙글 미소를 띤 T교수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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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 천검 (2010-02-21 01:55:15)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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