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산
어느 의사(醫師)의 수기(手記)
그것은 여(余)가 만주를 여행할 때 일이었다. 만주의 퐁속도 좀 살필 겸 아직껏 문명의 세례를 받 지 못한 그들의 사이에 퍼져 있는 병(病)을 좀 조사할 겸해서 일 년의 기한을 예산하여 가지고 만주를 시시콜콜히 다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에 XX촌이라 하는 조그만 촌에서 본 일 올 여기 에 적고자 한다.
XX촌은 조선 사람 소작인만 사는 한 이십여 호 되는 작은 촌이엇 다. 사면을 둘러보아도 한 개 의 산도 볼 수가 없는 광막한 만주의 벌판 가운데 놓여 있는 이름도 없는 작은 촌이었다. 몽고 사람 종자(從者)를 하나 데리고, 노새를 타고 만주의 촌촌을 돌 아다니던 여가 그 XX촌에 이른 때는 가을도 다 가고 어느덧 광포한 북국의 겨울이 만주를 찾아온 때였다. 만주의 어느 곳이나 조선 사람이 없는 굿은 었지만, 이러한 오지(輿 地)에서 한 동네가 죄 조선 사람뿐으로 되어 있는 곳을 만나니 반가웠 다. 더구나 그 동네는 비록 모두가 만주국인의 소작인 이라 하나 사람들 이 비교적 온량하고 정직하여, 장성한 이들은 그래도 모두 천자문 한 권쯤은 읽은 사람들이었다. 살풍경한 만주. 그 가운데서 살풍경한 살 림을 하는 만주국인이며 조선 사람 의 동네를 근 일 년이나 돌아다니다 가 비교적 평화스런 이런 동네를 만나면 그것이 비록 외국인 의 동네라 하여도 반갑겠거늘, 하물며 우리 같은 동족임에랴. 여는 그 동네에서 한 십여 일 이상 을 일 없이도 매일 호별 방문을 하며 그들과 이야기로 날을 보내며, 오래간 만에 맛보는 평화적 기분을 향락하고 있었다. "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정 익호 "라는 인물을 본 것이 여기서 이다.
익호라는 인물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XX촌에서 아무도 몰랐다. 사 투리로 보아서 경기 사투리인 듯하지만 빠른 말로 재재거리는 때에는 영남 사투리가 보일 때도 있고, 싸움이라도 할 때는 서북 사투리가 보 일 때도 있었다. 그런지라 사투리로서 그의 고향을 짐작할 수가 없었 다. 쉬운 일본 내지 말도 알고, 한문 글자도 좀 알고, 중국말은 물론 꽤 하고, 쉬운 러시아 말도 할 줄 아는 점 등둥. 이곳 저곳 숱하게 주워 먹 은 것은 짐작이 가지만. 그의 경력을 똑똑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여(余)가 XX촌에 가기 일 년 전쯤 빈손으로 이웃이라도 오듯 후더덕 XX촌에 나타났다 한 다. 생 김생김으로 보아서 얼굴이 쥐와 같 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며 눈에는 교활함과 독한 기 운이 늘 나타나 있 으며, 발룩한 코에는 코털이 밖으로까지 보이도록 길게 났고 몸집은 작으나 민첩하게 되었고. 나이는 스물다섯에서 사십까지 임의로 볼 수 있으며. 그 몸이나 얼굴 생김이 어 디로 보든 남에게 미움을 사고 근접 치 못할 놈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의 장기(릇技)는 투전이 일쑤며. 싸움 잘 하고, 트집 잘 잡고. 칼 부림 잘 하고. 색시에게 덤벼 들기 잘 하는 것이라 한다.
생 김생김이 벌써 남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거기다 하는 행동조차 변변치 뭇한 일만이라, X X 촌에서도 아무도 그를 대척하는 사람이 없 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피하였다. 집이 없는 그였으
나 뉘 집에 잠이 라도 자러 가면 그 집 주인은 두말 없이 다른 방으로 피하고 이부자리 를 준비 하여 주곤 하였다. 그러면 그는 이튿날 해가 낮이 되도록 실컷 잔 뒤에 마치 제 집에서 일어나듯 느직이 일어나서 조반을 청하여 먹고 는 한마디의 사례도 없이 나가버린다. 그리고 만약 누구든 그의 이 청구에 응치 않으면 그는 그것을 트집으 로 싸움을 시작하고. 싸움 을 하면 반드시 칼부림을 하였다. 동네의 처녀들이며 젊은 여인들은 익호가 이 동네에 들어온 뒤부터 는 마음 놓고 나다니지를 못 하였다. 철없이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 도 몇이 있었다. "삵 " 이 별명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어느덧 XX촌에서는 익호를 익 호라 부르지 않고 "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삵이 뉘집에서 묵었나 ?" "김서 방네 집에서." "다른 봉변은 없었다나 ? " "요행히 없었다네." 그들은 아침에 깨면 서로 인사 대신으로 "삵"의 거취를 알아보고 하 였다. "삵"은 이 동네에는 커다란 암종이었다. "삵"때문에 아무리 농사에 사람이 부족한 때라도 젊고 튼 튼한 몇 사람은 동네의 젊은 부녀를 지키 기 위하여 동네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삵" 때문에 부녀와 아이들은 아무리 더운 여름 저녁에라도 길에 나서서 마음을 놓고 바람 을 쏘여 보 지를 못하였다. "삵"때문에 동네에서는 닭의 가리며 돼지우 리를 지키기 위하여 밤을 새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네의 노인이며 젊은이들은 몇 번을 모여서 "삵"을 이 동리에서 내 어쫓기를 의논하였다. 물론 합의는 되었다. 그러나 내어쫓는 데 선착 할 사람이 없었다. 첨지가 선착하면 뒤는 내 담당하마." "뒤는 걱정 말고 형님 먼저 말해 보시오." 제각기 "삵"에게 먼저 달려들기를 피하였다. 이리하여 동리에서는 합의는 되었으나 "삵"은 그냥 태연히 이 동네 에 묵어있게 되었다. "며늘년들이 조반이나 지었나 ? " "손주놈들이 잠자리나 준비했나 ? " 마치 그 동네의 모두가 자기의 집안인 것같이 "삵"은 마음대로 이 집 저 집을 드나들었다. XX촌에서는 사람이라도 죽으면 반드시 조상 대신으로 "삵이나 죽지 않고." 하는 한마디의 말을 잊지 않고 하였다. 누가 병이라도 나면, "에익 ! 이 놈의 병 "삵"한테로 가거 라." 고 하였다. 암종-누구나 "닭"을 동정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다.
"삵"도 남의 동정이나 사랑은 벌써 단념한 사람이었다. 누가 자기에 게 아무런 대접을 하든 탓하 지 않았다. 보이는 데서 보이는 푸대접을 하면 그 트집으로 반드시 칼부림까지 하는 그이었지만, 뒤에서 아무런 말을 할지라도-그리고 그것이 "삵"의 귀에까지 갈지라도 탓하지 않았다. "흥......"
이 한마디는 그의 가장 큰 처세 철학이었다. 흔히 곁동네 만주국인들의 투전판에 가서 투전을 하였다. 때때로 두 들겨맞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하 소연을 하는 일이 없었다.한다 할지라도 들을 사람도 없거니와 무리 무섭게 두들겨맞은 뒤라도 하루만 샘물에 상처를 씻고 절룩절룩 한 뒤에는 또 이튿날은 천연히 나다녔다.
여(余)가 XX촌을 떠나기 전날이었다. 송첨지라는 노인이 그해 소출을 나귀에 실어가지고 만주국인 지주가 있는 촌으로 갔다. 그러나 돌아을 때는 송장이 되었다. 소출이 좋지 못 하다고 두들겨맞아서 부러져 꺾어진 송첨지는 나귀 등에 몸이 결박되 어서 겨우 XX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놀란 친척들이 나귀에서 몸을 내릴 때에 절명되었다. XX촌에서는 곽자하였다. "원수를 갚자 ! " 명 아닌 목숨을 끊은 송첨지를 위하여 동네의 젊은이는 모두 흥분되 었다. 제각기 이제라도 들고 일어설 듯하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누구든 앞장을 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이 때에 누구든 앞장을 서는 사람 만 있었더라면 그들은 곧 그 지주에게로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가 앞장을 서겠노라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제각기 곁사람을 돌아보았다. 발을 굴렀다, 부르짖었다, 학대받는 인종의 고통을 호소하며 울었 다.그러나-그뿐이었다.남의 일로 지주에게 반항하여 제 밥자리 까지 메우기를 꺼림인지. 용감히 앞조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여는 의사라는 여의 직업상 송첨지의 시체를 검시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여는 "삵"을 만났다. 키 가 작은 "삵"을 여는 내려다보았다. "삵" 은 여를 쳐다보았다. "가련한 인생아. 인종의 거머리야. 가치없는 인생아. 밥버러지야. 기생층아 ! " 여는 "삵"에게 말하였다. "송첨지가 죽은 줄 아나?" 여의 말에 아직껏 여를 쳐다보고 있던 "삵"의 얼굴이 아래로 떨어졌 다. 그리고 여가 발을 메려는 순간 얼핏 "삵"의 얼굴에 나타난 비참한 표정을 여는 넘길 수가 없 었다.
고향을 떠난 만리 밖에서 학대받는 인종의 가엾음을 생각하고 그 밤 은 여도 잠을 못 이루었다. 그 억분함을 호소할 곳도 못 가진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고. 여도 눈 물을 금치를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여를 깨우러 오는 사람의 소리에 여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삵"이 동구(洞口)밖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는 "삵"이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상 곧 가방을 수습하여 가지고 "삵" 이 넘어진 데까지 달려갔다. 송첨지의 장 례식 때문에 모였던 사람 몇은 여의 뒤로 따라왔다. 여는 보았다. "삵"의 허리가 기역자로 뒤로 부러져서 밭고랑 위에 넘 어져 있는 것을, 여는 달려 가 보았다. 아직 약간의 온기는 있었다.
"익호 ! 익호 !" 그러나 그는 정신을 못 차렸다. 여는 응급 수단을 하였다. 그의 사지 는 무섭게 경련되었다. 이윽 고 그가 눈을 번쩍 떴다. "익호 ! 정신 드나 ?" 그는 여의 얼굴을 보았다. 끝이 없이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 자가 움직였다. 겨우 처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선생님, 저는 갔었습니다. " "어디를 ? "그놈-지주놈의 집에 " 무얼 ? 여는 눈물 나오려는 눈을 힘있게 닫았다. 그리고 덥석 그의 벌써 식어가는 손을 잡았다. 잠시의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의 사지에 서는 무서운 경련이 끊임없이 기 힘든 작은 그의 소리가 또 "선생님. "왜 ?" "보고 싶어요. 전 보고 시......" "뭐이 ?" 그는 인을 움직였다. 그러나 말이 안 나왔다. 기운이 부족한 모양이 었다. 잠시 뒤에 그는 또다시 입을 움직였다. 무슨 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무얼 ? " 보고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횐 옷이 !" 아아, 죽음에 임하여 그는 고국과 동포가 생각난 것이었다. 여는 힘 있게 감았던 눈을 고즈너기 떴다. 그때에 "삵"의 눈도 번썩 뜨였다. 그 는 손을 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부러진 그의 손은 들리우지 않았 다. 그는 머리를 돌이키려 하였다. 그러나 힘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혀끝에 모아 가지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 ! "왜 ?" "저것 저것 " 무얼 ?" ,저기 붉은 산이 그리고 횐 옷이 선생님, 저게 꿔예요 !" 여는 돌아보았다. 그러나 거기는 황막한 만주의 벌판이 전개되어 있 을 뿐이었다. "선생님, 노래를 불러주세요. 마지막 소원 노래를 해주세요. 동 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여는 머리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의 입에 서는 창가가 홀러나왔다.
일었다. 그것은 죽음의 경련이었다. 듣
그의 입에서 나왔다. 여는 고즈너기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 " 고즈너기 부르는 여의 창가 소리에 뒤에 둘러섰던 다른 사람의 입에 서도 숭엄한 코러스는 울리 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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