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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밀꽃 필 무렵
    작성자 : 바지가작다 | 조회수 : 3624 (2010-02-19 오전 10:15:08)

    *       메밀꽃 필 무렵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 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 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 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
    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칩칩스럽게 날아 드는 파리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 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이 동업의 조선달을 나꾸어 보았다.
    그만 겁둘까 ? "
    "잘 생각했네. 봉평 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었을까. 내 일 대화 장에서나 한몫 벌어
    야겠네."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번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 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
    을 걷고 벌려 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 였다. 무명 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 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의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 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쪽
    으로든지 밤 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뒤 마당같이 어
    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 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
    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 해 놓고 계집의 고함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시침을 떼두 다 아네. 층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떻지두 않을 걸. 축들이 사족
    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떻다고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층줏집을
    후린 눈 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 물건 가지고 낚았나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 았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 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설 숫기도 없었
    으나, 계집 펀 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층줏집을 생각만 하여
    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 라쳐 버린다. 층줏집 문을 들어서 술
    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 는 어찌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 버렸다. 상위에 붉은 얼굴
    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 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 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
    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 이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
    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
    겨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제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 겠으나, 네게
    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 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
    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 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
     

    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 까 하고 마음이 섬껏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 손
    님이면서도 아무 리 젊다고 자식 낫세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 세울 것은 무어야 원.
    층줏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애들한테 는 그것이 약이 된다고 하
    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 애숭이를 빨면 죄된다. 한참 법석
    을 친 후이다. 담 도 생긴 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의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
    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떻 할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
    는 마음도 한 편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 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 없이 허덕이며 충줏집을 뛰어나간 것이
    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 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
    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으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달빛에 젖 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 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 당비처럼
    짧게 슬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 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
    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 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 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
    이 뤼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 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배
    인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 지고 안장도 떨
    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 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
    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슬 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홀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 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온통 흙을 차고 거품을 홀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
    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 지."
    아이는 앵돌아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 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
    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리워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
    아이의 웃음 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이 견딜 수 없어 채찍 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
    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 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 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
     

    들인 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이를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뭍었다. 층주. 제
    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 방도 혜매이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하러 가는 외
    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
    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 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 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
    안이나 뚜 벅뚜벅 걷고 장터있는 마을에 거의 가까웠을 때, 지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더구나 그것이 저녁녀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생원
    은 변치 않고 언제든 지 가슴이 뛰었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 나. 읍내에 백증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 안에 다 털어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끓는 정분에 그 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이를 다시 시 작할 수
    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 를 팔지 않기를 다행이었다고 길
    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 던 것이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 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보지는 못하였다. 계 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
    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 귀였다.
    그떻다고는 하여도 꼭 한번의 첫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 에도 없는 단 한번의 괴이
    한 인연 !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허생원은 오늘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 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 도 없었으나. 허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
    되풀이하고야 말 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 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 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증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
    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 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 경이다. 붉
    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 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 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
    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실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
     

    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갇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 지. 밤증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 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나.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
    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 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야.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 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는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
    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 는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
    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었으나. 성 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 련만 시집은 죽 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 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
    정이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는데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
    힌밤 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렷닥."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 끈 뒤집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 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하
    나 처녀의 꼴은 꿩 궈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 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 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나지 그러나 늘그막바지까 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계와두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이구 식구들 을 부르겠어. 사시 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 길로 퇴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 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것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섧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 나 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 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월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 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 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
    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 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 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견하여 이야
    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 끄러졌다. 허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
    으면 안 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 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쪽 씻어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 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 에 얽어매고 반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 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홀린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 "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가서 술장수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 망나니
    예요. 철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 룬들 펀한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 고 하니 집꼴이 무어겠소. 열여덟 살 때 집을 뛰쳐나와서부터 이 짓이 죠.
    " 총각 낫세론 동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 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앰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 의 건녔으나, 동이는 허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 천이었던가 ? "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
    이구 ?"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 다. 허 비 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
    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이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 다도 참
    흑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 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
    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 "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 "
    "의부와도 갈라져서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 오려고 생 각증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랬다 ?"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녔을 때에 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오, 생원 ?"
    조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이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 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
    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 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 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
    까. 그것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치울 젠 딴은 대단한 나귀 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
    은 알 수 없이 등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 에겐 더운 물을 끓여주고. 내
    일 대화 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 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 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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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5 천검 (2010-02-19 16:53:27)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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