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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6대 살인마들 피규어....왠만하면 19금..
    작성자 : ADVENT꼬장 | 조회수 : 5746 (2006-03-29 오후 6:56:22)

    빌리 더 키드 (1859.11.23~1881.7.14)
    미국서부시대에 가장 악명을 떨쳤던 킬러라고 합니다.
    본명 윌리엄 보니(William H.Bonney). 뉴욕 출생.
    21년의 짧은 생애에 21명의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본래 뉴욕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적에 양친과 함께
    캔자스로 이주하였고, 아버지가 죽자 다시
    뉴멕시코에 가서 살았다.
    13∼15세 때 어머니를 욕보이려 한 남자를 죽인 것이
    악의 길에 빠진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카우보이가 되었는데, 1878년 자기가 속한 목장과
    다른 목장과의 싸움(세칭 링컨郡의 싸움)에서
    열세인 자기편을 이끌고 대단한 싸움 솜씨를 보여
    총잡이로서의 용명을 떨쳤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무법자가 되어,
    소도둑 같은 짓을 한 것으로 전한다.
    한때 보안관 S.P.F.갤럿에게 항복하였다가
    간수를 죽이고 도망쳤으나, 끝내 갤럿에게 사살되었다.
    전설에는 그가 의적(義賊)으로 되어 있으나 근거는 없고,
    도리어 잔인하고도 비정한 젊은이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틸라 더 훈 (406년~453년)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갔던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
    406년-453년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훈족의 왕입니다.
    ROMAN EMPIRE라고 불릴정도로 전 유럽을 정복했던
    무시무시한 정복자입니다. 그 당시의 유럽인들은
    그의 예기만 들어도 집 대문을 꼭꼭 걸어 잠궜다고
    전해질 정도입니다.

    라스푸틴 (1872? ~ 1916.12.30) 
    본명은 Grigory Yefimovich Novykh.

    시베리아 태생의 농부, 신비주의자.

    혈우병(血友病)을 앓고 있던 러시아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병세를 호전시켜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궁정에서 총애를 받으며 세력을 휘둘렀다.

    농부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노비흐는 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글을 몰랐으며 방탕한 생활로 인해 러시아 말로 '방탕한 사람'이란 뜻의 라스푸틴이란 성(姓)을 가지게 되었다. 18세 때에 개종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저기 떠돌다가 마침내는 베르호투레에 있는 수도원으로 가 그곳에서 흘리스트(고행자) 종파를 알게 되었다. 그는 흘리스트 신앙을 왜곡해 인간은 '신성한 냉정함'을 느낄 때 신에게 가장 가까이 갈 수 있으며 이 상태에 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랫동안의 방탕 뒤에 느끼는 성적 소진(性的消盡)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그는 수도사가 되지 않고 포크로프스코예로 돌아왔으며, 19세 때 프로스코비아 표도로브나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결혼생활도 그를 붙잡아두지는 못했다. 그는 집을 떠나 그리스의 아토스 산, 예루살렘 등지를 떠돌며 농민들의 헌금으로 생활했고, 환자를 고치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으로 영적 지도자(starets)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렇게 떠돌다가 마침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고(1903) 상트페테르부르크 신학교의 장학관인 테오판과 사라토프 주교 헤르모겐의 영접을 받았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궁정 사교계에는 신비주의와 비술(秘術)이 유행하고 있었으므로 눈이 빛나고 비범한 치료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이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한 방랑자는 사교계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1905년 황실에 소개되었으며, 1908년 황태자의 출혈소동이 또 한차례 벌어지고 있을 때 황궁으로 불려갔다. 그는 소년의 아픔을 달래는 데 성공했는데 최면술을 쓴 것으로 추측된다. 황궁을 떠나면서 황제와 황후에게 그 소년과 왕조의 운명은 자신과 피할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로부터 10여 년에 걸쳐 황제의 집안과 국정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황제의 가족들 앞에서는 계속 겸손하고 신성한 농부의 모습을 보였으나 궁정 밖에서는 다시 예전의 방탕한 행각에 탐닉했다. 그는 자신과 육체적으로 접촉하면 정화(淨化)와 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교하며 정부(情婦)들을 얻었고 또 많은 여자들을 유혹했다. 그의 행실에 관한 얘기가 니콜라이의 귀에 들어갔을 때, 황제는 그가 성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비난한 사람들을 러시아의 오지(奧地)로 좌천시키거나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완전히 쫓아냈다.

    1911년에 이르자 라스푸틴의 추잡한 행실은 모두에게 알려졌다. 총리 P.A. 스톨리핀은 황제에게 그의 비행(非行)에 관한 보고서를 올렸다. 결국 황제는 그를 추방했으나, 알렉산드라는 몇 달도 안되어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아내를 화나게 만들고 싶지도, 아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았던 황제는 앞으로 라스푸틴을 비난하는 말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라스푸틴의 권력은 1915년 이후 절정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중 니콜라이 2세가 직접 군대 지휘를 맡아(1915. 9) 전방 부대로 떠나며 황후에게 러시아의 내정을 맡기자 라스푸틴은 그녀의 개인 고문역을 맡았다. 그는 교회 성직자 임명부터 각료 선출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력을 행사했으며(그는 종종 무능한 기회주의자들을 뽑았음), 때로는 군사문제에도 개입해 국가에 해를 입히기도 했다. 어떤 특정 정치집단을 지지하지는 않았으나 전제정치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맞섰다.

    그를 죽임으로써 러시아의 재난을 막아보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마침내 1916년 펠릭스 유수포프 공(황제의 조카사위), 블라디미르 미트로파노비치 푸리슈케비치(두마 의원),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황제의 사촌)을 포함한 극보수파 무리가 그를 제거하고 추문에 싸인 군주제를 구하기 위해 암살을 모의했다. 12월 29~30일(구력 12. 16~17) 밤 라스푸틴은 유수포프의 집으로 초대되어 독약이 든 포도주와 차, 케이크를 먹었다. 그가 죽지 않고 멀쩡하자 놀란 유수포프는 총을 쏘았다. 라스푸틴은 쓰러졌다가 일어나 앞마당으로 도망쳤고 이번에는 푸리슈케비치가 다시 그를 쏘았다. 이렇게 해서도 죽지 않자 그들은 라스푸틴을 묶어 네바 강의 얼음 구멍에다 처넣었고 결국 그는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살인사건은 전제정치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알렉산드라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지만 몇 주일 뒤 제국의 모든 체제는 혁명에 휩쓸려 쓰러졌다.


    잭 더 리퍼 (19세기? ~ ?)
    잭 더 리퍼는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연쇄살인마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가장 ‘현대
    적인’ 연쇄살인범의 범주에서는 최고 고참이다. 19세기 말 빅토리아 후기의 영국 사
    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 희대의 인물은 근대사회의 총아인 대중 매체를 통해 전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최초의 ‘스타’ 살인마였다. 또한 지문 채취나 혈액/체액 채
    취 추적 같은 근대적 수사방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당시의 법의학적 수사망은 해박
    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자행된 리퍼의 예술(!) 살인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서 범인 추적에 난항을 겪었다. 당시의 법의학, 제도, 수사망 등 국가 장치들
    을 훨씬 앞질러 가며 조롱을 던진 리퍼에 대한 연구는 미국 역사를 통틀어 대통령에
    대한 저서를 더한 숫자보다 많을 정도로, 리퍼 케이스에 대한 관심은 아직까지도 만
    만치 않다. 학문적 연구에서 단순한 호기심까지, 리퍼 케이스가 이토록 매혹적이기까
    지 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리퍼 케이스는 끝내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으
    로, 연구 자체가 ‘누가 저질렀는가?’라는 고전적인 추리소설(whodunit)의 형태를
    띌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21세기에 살고 있는 법의학자나, <프롬 헬>을 통해 호
    기심을 가지게 된 관객이나, 리퍼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가 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리퍼 케이스가 가진 최고의 매력인 셈이다.
    리퍼의 연쇄 살인은 그 시발점에서부터 분분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1888년 8
    월 31일 살해되어 런던 이스트엔드의 창녀 밀집 거주지역이었던 화이트채플
    (whitechaple) 거리에 방치된 채 발견된 메리 앤 니콜스(43)를 리퍼의 첫 번째 범죄
    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리퍼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드러나기 이전 유사한
    창녀 살인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종종 이 첫 번째 희생자에 대해서는 엠마 스미스
    등의 다른 피해자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후 메리 켈리(25)까지 5명의 창녀가 리퍼
    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이야기되어지는데, 이 다섯 명으로 압축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당시만 해도 극심한 하류층에 속한 창녀들이 살해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었다.따라서 단지 창녀만을 살해했다는 이유만으로 리퍼 케이스를
    규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 리퍼 케이스를 규정해 주는 것은 바로 리퍼의 살인방식
    (Modus Operandi). 5명의 창녀들은 각자의 정도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모두 대범하고 정교하게 사체를 유린당했다.
    대개의 사인인 칼로 목을 따는 과정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자행되었으며,
    그 이외에도 사체 유린 역시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깨끗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은 당시 런던 경찰이 인체와 해부학에 능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로 용의망을 좁히는데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블라드 더 임팰러 (15세기 ~ ?)
    바로 이사람이 오늘날 드랴큘라로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바로 루마니아의 블라드 드라큘라라는 인물로서 15세기
    루마니아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일 뿐 아니라
    오늘날 드랴큘라 얘기를 탄생시킨 장본인 이기도 합니다.
    그는 무려 10만명에 달하는 백성을 피에 굶주려 학살한
    것으로 전해 지고 있습니다

    바토리 여백작 (16세기경 ~ ??)★
    16세기경 실존했던 엘리자베스 바토리 Elizabeth Bathory는 너무나도 유명한 "피의 여
    왕"이다. Elizabeth Bathory는 1560년 Transylvania (현재 루마니아 서북부의 고원지
    방)에서 가장 유서깊고 부유하며 영향력있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집안엔 군주나
    추기경도 있었고, 사촌은 헝가리 왕국의 수상이었다. 가장 유명한 친척은 Istvan
    Bathory (1533-1586), 1575년 부터 86년 까지 트란실바니아의 군주였으며 폴랜드의
    왕이었다.
    Elizabeth Bathory는 4살이나 5살 때 경 극히 심한 발작을 일으켰었다고 한다. 집안
    의 근친결혼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유전질환인 간질이거나 기타 다른 신경 계통 질환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훗날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 행위와도 연관이 있
    을 것이다.
    15살 때 Bathory는 Ferencz Nadasdy 백작과 결혼을 하는데, 백작은 당시 26살이었
    고,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부는 Csejthe (체터) 성
    에 살았으며, 백작은 투르크와의 전쟁때문에 거의 떨어져 지냈다.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용감한 남편 Ferencz 백작은 헝가리의 검은 영웅 (Black Hero
    of Hungary)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렇듯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편때
    문에 외로워진 Bathory는 젊은 남자와 수많은 염분이 났다. 또한 Thorko라는 하인이
    Bathory에게 신비주의, 악마숭배 등등의 것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athory는 언젠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갔다가 한참 후에나 성으로 돌아온 것
    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편인 백작은 쉽게 이를 용서했다고 한다.
    거의 남편과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도 갖지 못 했고,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딸 Anna를 낳았고, 다음 9년 동안엔 딸 Ursala와 Katherina를, 그리고 1598
    년에야 비로소 외아들 Paul을 낳았다.
    바로 이 기나긴 기간 동안 Bathory는 유모인 Ilona Joo, 집사 Janos Ujvary, 하인
    Thorko, 숲에 사는 마녀 Darvula와 또 다른 마녀 Dorottya Szentes 등과 함께 수시
    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진짜 끔찍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계
    기는 남편의 죽음이었다. 남편 Ferencz 백작은 1604년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
    했고, Bathory의 남성편력또한 심해졌다.
    평소에 무척 미워했던 시어머니를 성에서 쫓아내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든다. 처음엔 말이나 동물들을 제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인간 제물을 바쳤다
    고 하는데,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진정한 목적은 젊음을 되찾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고 있는 것에 초조하던
    Bathory는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면 예전의 고운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
    했다.
    어느날 머리를 빗겨주던 하녀가 실수로 머리를 심하게 당기자, Bathory는 하녀의 얼
    굴을 마구 구타했고 그녀의 손톱에 하녀의 얼굴이 긁혀 피가 나왔다. 하녀의 피가
    Bathoty의 손에 떨어졌고, 이를 씻던 와중에 Bathoty는 순간적으로 손의 피부가 고와
    진 것을 느꼈다. 젊은 처녀의 피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해답이라 생각한 그녀는 수
    시로 처녀를 잡아다 죽여서, 그 피로 목욕을 했다. 이때부터 Bathory는 피의 백작부
    인이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발목을 밧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
    끔 아름다운 처녀 아이가 잡혀오면 특별 메뉴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 나중에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빨아마셨다고도 전한다.
    그녀의 특별한 재미를 위해 허공에 매달아놓은 철창에 처녀를 집어넣고 쇠꼬챙이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여, Bathory가 그 철창 밑에 서서 아래로 흐르는 피로 샤워를 했
    다고도 한다. 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 백작 부인이 직접 처녀들을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문을 통해 적의 정보를 캐내는 것이 빈번했던 당시 전쟁덕분에 Ferencz 백작또한
    많은 고문기구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극악한 고문기구중 하나를 이용해 처녀들을
    고문하는 것이 Bathory의 취미기도 했다. 고문은 결코 단시간에 끝나지 않고 어쩔때
    는 수주일간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1600년 부터 1610년 까지 Bathory는 끊임없이 젊은 처녀를 살해하여 모종의 악마 의
    식을 거친 후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
    지, 시체를 근처 교회로 보내 신부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까닭없이 실종된 처녀의 수가 너무나 많아지자 그 신부는 더 이상 장례를 치뤄주지
    않았고, 소문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Bathory는 신부를 불러다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 하도록 친히 협박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처녀의 피는
    처음 만큼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게다가 농촌 처녀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어
    피를 제대로 보충할 수 없었다.
    이에 측근들은 천한 농촌 처녀의 피가 아니라 귀족 처녀의 피라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추겼고, Bathory는 성 내부에 전반적인 귀족적 소양을 가르치는 일종의 '귀족 여학
    교'를 설립하고 한번에 스물 다섯명씩 학생을 받는다. 물론 이들도 농촌 처녀들 처럼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피를 빨렸는데, 이때 쯤 부터 Bathory는 조심성을 잃었던 것 같
    다. 시체는 들판이나 헛간, 성 바로 옆 강가, 성 근처 채소밭 등에 아무렇게나 묻었
    고, 한번은 시체 네구 를 성벽 밑으로 그냥 떨어뜨려 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마침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하여 정부 당국에 신고했기 때문에, Matya 왕은
    Bathory의 사촌이며 그 지방 영주인 Gyorgy Thurzo 백작 에게 명하여 진상을 조사하
    라고 명령했다.
    1610년 12월 30일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조사팀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
    다. 온몸에 피가 모두 빠져버린 젊은 여자 시체가 있었고, 꼬챙이에 찔린 채 아직 살
    아있는 여자도 몇 명 있었으며, 지하실에 내려가보니 온갖 종류의 고문으로 만친창이
    가 된 젊은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게다가 성 주변을 파보니 여자 시체가 50여구나 나
    왔다.
    재판은 1611년에 열렸지만, 정작 Bathory는 재판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유무죄에
    관해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집사인 Ujvary는 처녀 37명을 살해했으
    며, 그중 여섯은 일자리를 찾아 성에 들어왔던 여자였다고 자백했는데, 대개는 몇주
    일 심지어는 몇 달 동안이나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자백은 그러했지만, 실
    은 총 630-660명을 죽였다고 한다. Bathory는 모든 것을 일기에 써서 기록에 남겼고,
    숫자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Erzsi Majorova도 처녀를 공급하는 댓가로 돈을 받았
    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받았다.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
    가락을 잘린 후 산채로 불에 타죽었지만,정작 Bathory는 법적으로도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목숨을 건졌다. 대신 Bathory는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방이었다고 한다.
    감금 4년만인 1614년 8월 말, 54세의 나이로 Elizabeth Bathory는 어두운 감방에서
    세상을 떠난다. 죽기전 Bathory는 재산을 자신의 아이들에게 골고루 분배해 줄것을
    2명의 성직자에게 구술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그녀의 시신은 그곳에 묻힐 수 없게 되었고, 그녀가 Ecsed 혈
    통의 마지막인 것을 감안하여 헝가리 동북부 지역의 Ecsed에 묻혔다.
    Bathory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 Sadism과 흡혈귀의 소재로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Bathory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은,

    첫째, Elizabeth Bathory는 엄청나게 미인이었으며, 천사처럼 선해보이는 용모였고,
    특히 피부가 거의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우유빛이었다고 전한다.

    둘째, Bathory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여자였을 뿐 아니라 남자를 능가할 정도로 엄청
    나게 똑똑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헝가리 군주들이 거의 글을 읽지 못했던 반면,
    Bathory는 헝가리어, 라틴어, 로마어에도 능통했으며 지적 수준이 상당한 경지에 올
    라있었다고 전한다.

    셋째, 그녀가 죽은 후에도 100년 이상 Bathory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
    을 만큼, 악명이 하늘을 찔렀다.

    넷째, Bram Stoker의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군주 Vlad Dracula를 모델로 한 것이 아
    니라, 실은 Elizabeth Bathory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여럿 있다.

    다섯째, Elizabeth Bathory 백작 부인의 재판 기록은 아직도 헝가리에 보관되어 있다
    고 한다.

    여섯째,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으며, 주로 슬로바키아 출신 하녀들을 죽였기 때문에 이름 대신 'The Hungarian
    Whore'(해석하자면 "헝가리 갈보년")라고 부른다
     
     
     

     

    ....무서운 인간들의 피규어라 그런지 굉장히 정교하고 그로데스크하네요..ㅡㅡ;

    동양에도 만만찮은 인간들 많이 있죠...쿨럭..

    출처는 엠파스로 되어 있는거 같은데 퍼오기는 엽혹진에서 퍼왔습니다.

    라스푸틴은 설명이 없길래 다음 신지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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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v.7 hahay2k (2006-03-30 20:30:06)
    ;;무서워요 -_-ㅋ;;
    Lv.13 ps&psp (2006-04-07 23:46:24)
    음 정말 무섭네요 ㅡㅡ;;
    Lv.3 해와달 (2006-04-08 11:14:46)
    잭 더 리퍼같은 경우는 일본만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죠.. 쩝..-_-;;
    Lv.2 거친녀석 (2006-04-13 13:14:46)
    여기에 유영철 한놈 더해야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효..
    Lv.8 휴우가히나타 (2006-04-16 11:21:20)
    마지막에 여자 같은 경우 디아블로에 나오죠. 특별히 무서워할 대상도 아닙니다.

    잘못된 생각이 저정도 까지 가지고 올정도니까요.
    Lv.2 3838 (2006-06-07 11:26:57)
    더 많이 죽인 사람도 있을껀ㄷㅔ 안잡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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