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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의 손짓
    작성자 : 땅땅치킨알바 | 조회수 : 1704 (2013-08-10 오후 4:31:31)
    어쩜 지금에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까닭은
    글로써 지난날 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면 과거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과도 같은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날 방황하던 나의 혼미한 날들에 흐트러진 이야기 조각들을
    이곳에서 꿰맞추기로 하였다.
     
     
    1.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닌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 아버지가 실직하신 후 직장생활을 하시던 어머니의
    삶은 더욱 고단해지셨고 아버지의 실직이 몇 년간 장기화로 지속되자
    어머니의 옛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앙상히 드러난 광대에 딱딱하게 들러 붙은 살가죽 위로
    이마엔 굵은 주름을 그린 어머니의 외모는 영락없이 노인과도 같았다.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어머닌 가족 외식을 빠뜨리지 않으셨다.
    매월 월급일이면 누나와 나를 따로 불러내어
    중국집이나, 햄버거 가게로 데려가 맛있는 걸 사주시곤 하셨다.
     
    그런 어머닌
    매일같이 해가 저문 후에야 집에 오셨다.
    늦은 밤 어미니의 손은 마치 번데기 허물 벗든 군데군데 손 살 껍질이 딱딱하게 굳고
    연한 살결이 돌돌 말려 벗겨져가고 있었는데, 지금껏 그런 흉측한 손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마쳤을 무렵의 나이 때
    공사현장에서 녹이 슨 길다란 철근을 어깨에 짊어지고
    일층에서 4층까지 배달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일을 삼십년 넘도록 해 왔다던
    노인들의 손도 어머니 손처럼 흉하진 않아,
    잠시 어머니의 흉측했던 손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다.
    늬들은 집안에 있으면서 아직 밥 도 안 해 놓고 또 그 tv하며 만화책이냐!!?
    엄마가 오늘 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 에잇! 되먹지 못한년!”
     
    어머닌 가족을 위해 자신은 밖에서 고생을 하는데 가족은 그것도 모른다며
    원망하는 투로 나와 누나를 향해 호통치시다간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한
    분이 떠올랐던 탓인지 격양 된 감정을 추스르지 못 해 이내 입에 욕설을 담기 시작했다.
     
    그런 어머니를 난 늘 보아오던 터라
    별로 특별하지 않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일이겠거니 하며
    그리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고양 된 이야긴 하나같이 아주 고리타분하며
    별 볼일 없는 시시한 이야기들뿐이기 때문이다.
     
    가족들 모두 이와 같은 생각 이었는지
    해가 저문 시간이라 단칸방 이었던 좁은 방 안에
    이부자리 깔아 누워 티비를 보거나
    드러누운 채 책을 보던 나와 누나, 술에 만취해 곤히 자고 있는 아빠
    그 어느 누구도 어머닐 본 채 만 채 대꾸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의 하소연과도 같은 이야긴 계속 이어져 갔다.
    아니 글쎄 요근래 옆에 새로 들어온 여자 하나가 있는데
    덩치가 큰큰한 것이 사사건건, 아줌마! 칠 매듭이 삐뚤잖아요!
    좀 야물게 하세요! 야물게 쫌!!
     
    나보단 열 살 정돈 어려보이는 것이
    아주 건방진 투로 말하는데 남들 다 아무렇지 않다는데도 자꾸 시비 걸고 또
    생긴 건 어찌나 뱀처럼 능글맞게 생겼는지. 하루 왠종일 조잘조잘 말도 많고..에휴!
    또 성격은 어찌나 억센지
    자꾸 본드칠이 더디다며 사람 많은데서 고함 빽!! 지르고 사람 망신주고
     
    접심 먹고 여럿이서 그늘터에 모여앉아 그냥 쉬면 될 것을!
    또 고새를 못 참고 쭉제비마냥 입방아질로 사람들 불러 모아선 애미 뒤에서 흉보고...
    정말 이 애미가 요즘 그 년 때문에
    일을 못 다니겠다 정말... 에휴! 마흔 나도록
    시집도 못 간, 어디서 뭐하며 굴러먹다 온, 근본 없는 년인지.... 에잇! 되먹지 못한년!!”
     
    늘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늘 부정적이며 우울한 이야기들 뿐이라 오래 듣고 있으면
    짜증이 북받쳐왔다.
    왜냐하면 제 어미가 밖에서 멸시를 당한 이야기를 어머니 입을 통해
    직접 듣다보면 처음엔 마음이 아프다가도
    당시 어렸던 나로선 이 마음 아픔이 부적절한 어머니 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었던 누나도 나와 같이 짜증이 났던지
    그럼 일 하지마! 왜 매일 여기 와서 짜증이야!!?”
    소리치듯 말했다.
     
    그 때 헝클어뜨린 퍼머 머리에 어머닌 회색 콘크리트 부엌 바닥에
    양 손으로 허리를 붙든 채 우두커니 서서는 눈가를 가늘게 찢으며 누나를 쏘아 봤는데
    그 때 어머니의 독기어린 눈은 무슨 감정을 표현하는지를 지금도 헤아릴 순 없다.
    다만 가늘게 찢어진 눈 살 틈사이서 검붉은 색을 띄며 아주 악랄한 무엇이
    내게 소곤소곤대던 소름 돋던 섬찟한 느낌만은 잊을 수가 없다.
     
    2
    바람잘날 없던 어머니의 하루하루 고통어린 하소연은 끝이 없었다.
    다음날...그 다음날도 계속 이어져갔다.
    오늘은 그년 옆으로 저 친구가 하나 왔는데 이젠 둘이서 아주 쌍으로 사람을
    괴로피고 아주 내가 피가 말라 죽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어머니의 이야긴 계속
    이어져 갔다. 가끔 짜증어린 투로 받아치던 누나의 대꾸도 점차 사라져 갔다.
    오늘은 그년과 아주 머리채를 심어서 대판 싸우고 집에 왔다!!”
    가족들의 연이은 무시와 침묵 속에 어머니의 이야긴 갈수록
    자극적이고도 극단적으로 치우쳐 갔다.
     
    오늘은 나더러 뭐라는 줄 알아!?”
    이번 이야기는 정말 색다르다는 듯 말머리를 열었다.
     
    아니 글세 이 미친것들 쌍으로 덤비며 날 죽이겠댄다! 허 참! 기가 막혀서
    엄만 그 말 듣고 가만있어!? 경찰서에 신고해버려!”
    듣고 있던 난 도무지 참을 수 없어 버럭 화내며 말했다.
    어머니는 대꾸해 주는 나의 말이 매우 기쁘다는 듯
    흐뭇해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눈가엔 평소 때와 다른 기쁜 듯 빛을 띄시며 말했다.
    이틀 뒤 엄마 월급타면 맛있는 거 사먹자 누나랑 계단 위에서 기다려
    란 말씀을 하시며 재차 여러 이야기들을 또 하소연 하듯 시작 하셨다.
    그러나 나와 누나는 누가 자신을 죽이려했단 이야기 말고는
    별 흥미 없다는 듯 어머니의 연이은 시덥잖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고
    어머니의 이야긴 평소 때처럼 어느 시점에서 잠잠해져 갔다.
     
     
    3
    다음날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그 다음날도....
    이틀 째 집에 들어오지 않자 난 어머니가 몹시 걱정 되어
    그날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내내 괴로웠다.
    지금 내가 이토록 괴로운 건 어머니를 두 번 다시 못 보면 어쩌냐는
    막연함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근래 실직한 아버지의 술주정 탓에
    크게 싸움을 한 후 하루동안 가출한 일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닌 다다음날 한 손에 검은 비닐 가득 담은 과일을 사오셔선
    나와 누나들에게 나눠 주시며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는 말을 하곤 하셨다.
    해야한다.....’ 난 어렸지만 그런 어머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선뜻 머리 속에 되내이자 이번엔 정말 누나와 나까지 버리고
    가출하면 어쩌나는 걱정이 크게 일었다.
    때문에 하교길에 곧장 어머니가 일하는 공장 주변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해질 무렵이 되자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나왔다.
    제 각기 분주하게 움직이며 어디론가 향하였다.
    조금전 까지만해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끌벅적한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거리는 온통 횡횡한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난 어머니를 볼 수 없었고 11월 늦가을 바람이 꽤 차가웠던 탓에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4
    해가 다 저물어서야 집에 도착하니
    한 손에 소주를 병 채 거머 쥐 신 아버지께선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며 솥에다 뭔가를 팔팔 끓이고 계셨다.
     
    편식이 심했던 난 음식에 별 흥미가 없었다.
    아궁이 옆으로 쭈그려 앉은 아버지 옆에 선 채
    방 안으로 통하는 창호문을 열어 방안을 살폈다.
    누나는 보이지 않았고 이불들이 천 쪼가리 마냥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엄마 오늘은 와?” 난 태평스레 술이나 마셔대는 못난 아버지를
    탐탁치않케 바라보며 물었으나 병 채 소주만 들이킬 뿐 별 대꾸는 없었다.
     
     
    방 안에 들어가려는데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버지가 고기를 장만하면서 나오는 비린내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방에 있기가 영 거북해 나가서 어머니를 더 찾아 보고자 하였다.
    나갔다 들어오면 누나도 와있을 테고 방도 정리가 되어있겠지란 생각에서였다.
    나가지 마라 아빠랑 저녁이나 먹자
    신발을 챙겨 신는 내게 술주정하듯 큰소리로 아빤 말했다.
    난 들은 채 만 채 유유히 집을 빠져 나왔다.
     
    5
    어머니를 찾아 내가 살던 마을 주변을 기웃거리며 찾아 헤맸다.
    혹시 계단 및 슈퍼에나 있을까 싶어 그 곳도 가보았다.
    아니면 산기슭 쯤 오래 된 기와지붕 집이 있는데, 트럭에서 실고 오는
    부식을 내다 파는 부식집에 놀러 가지 않았을깐 생각에 그 집도 가 보았다.
    찾을 수 없었다. 꽤 오랜 시간 찾았으니 어머니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러다 예전 어머니가 늘 노을을 등에 지고 오르시던 계단에 오게 되었다.
    계단 아래를 내려다 보니 어머니가 금새라도 계단으로 통하는 저 골목 모퉁이를 돌아나와서는
    계단을 오르실 것만 같았다.
     
    난 쭈그리고 앉아 유행가를 부르며 골목을 빠져 나오는
    모퉁이만을 주시한 채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러다간 곧 깊은 밤이 되자 계단 밑에 키 큰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희미하던 골목 모퉁이 길은 눈가에 더욱 선명히 그려졌다.
     
    6
    불이 켜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 모퉁이에선
    누군가 한 쪽 팔을 내밀더니 계단을 내려 오란 듯이
    헤엄치듯 내게 손짓해 보였다.
     
    난 보자마자 그것이 어머니 팔인 줄 알았다.
    간간이 어머니가 입고 오신 회색 공장 작업복과 팔의 크기며
    나에게 손짓하는 모양새며 그건 어머니 말곤 없을 터였다.
     
    어머니가 골목 모퉁이에 몸을 숨기신 채
    나를 부르는구나 싶어 얼른 한 걸음에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그러자 안돼 안돼라며 손바닥을 펴서는 흔드셨는데 난 그것이
    천천히 오란 어머니의 손짓임을 알 수 있었다.
    계단을 다 내려오니 조금 전 까지만해도 가로 등 밑에서
    손짓 하시던 어머니의 팔은 보이지 않았다.
    난 의아해하며 모퉁이를 돌아 골목을 샅샅이 살폈으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사막에서 사람이 힘겨운 고난을 겪다보면
    헛것을 보는데 그것이 신기루현상이라 한다는 것이다.
    난 그것과 유사한 경험을 했으리라며 별 시덥잖게 웃고선 다시 계단을 올라
    가파른 길 위에 앉아 골목 모퉁이 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전에 봤던 것과 똑같이 어머니가 팔을 내밀어
    손짓을 하였고 이번엔 그 밑으론 교복 입은 다리를 뻗었는데
    그건 분명히 누나의 다리였다.
     
    몇 미터 떨어진 거리였으나 가로등불에 비친 건 확실히 누나와 어머니란 것을
    난 단번에 알아 챌 수 있었다.
    손짓하는 팔은 어머니의 팔이고 다리는 확실히
    누나의 다리였다. 그건 파란색에 체크가 진 교복 치마와 양말 신발
    모든 것이 누나였다.
     
    난 두 모녀가 아들을 두고 짖꿎은 장난을 치나 싶어 미소를 띄며
    한 걸음에 계단을 내려 골목으로 달려 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계단을 내려 오는 사이
    골목 어딘가로 어머니와 누나가 재빨리 뛰어가 숨었을거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난 그간 마음 졸이며 어머니를 찾았던 것에 결과가 이런 괴팍한 장난인가
    싶어 감정이 몹시 상해 등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런데도 뒤에선 어머니와 누나가 달려와 주진 않았다.
    난 집으로 향하는 내내 두 자매에게 매우 서운한 감정을 가졌다.
     
    7
    집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고 매우 어수선 했다.
    경찰차 지붕위에 불빛이 맴맴 돌며 어두운 골목 동네를 환히 비췄고
    마을 사람들이 대거 몰려 와있었다.
    걔 중 나를 알아 본 마을에 한 어르신께선
    어이쿠! 살았네! 살았어!!! 라고 통곡을 하듯 소리치시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 때는 아버지가 죄를 지어 경찰에 잡혀간 탓에 내가 고아원으로 오게 된 줄 알았다.
    그러다간 아버지의 죄명이 모녀 살해임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껏 어머니의 한 쪽 팔과 누나의 한 쪽 다리 시신의 잔해는
    도무지 찾지 못 하였다고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인 이 사건은 내게 자주 상기되는 일 중 하나다.
    그러다가는 어째서 팔과 다리 뿐인지만을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아버지란 작자가 어느새 어머니와 누나를 살해 했으며
    또 왜 했는지의 생각 끝엔 항상
    그 날 밤 쭈그려 앉아 열심히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아버지와
    새까맣고 커다란 가마솥이 자꾸만 머리 속에서 맴돈다.
     
     
    199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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