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방에서 빈둥대고 있는데 엄마가 인터넷뱅킹을 시키셨습니다.
각종 공과금에 누나네 조카 학습지값, 다음주 있을 먼 친척 할아버지 팔순 축의금에다가
엄마 읽으실 기독 서적까지 시키려니 짜증이 밀려왔죠.
딱 컴퓨터를 켠 순간, 회사에 다니는 잘나빠진 동생이 전화를 했습니다.
"형, 지금 컴 할수 있어?"
"왜. 이 귀신같은 놈아"
"나 10만원만 보내줘"
"어따쓰게"
"모레가 경진이랑 77일 되는 날이거든. 그날 주려면 오늘 주문해야 되는데 통장이 엔꼬야"
"뭐 사주게"
"응~~ 속옷~~~~"
썩을 놈. 엄마나 가족들한테는 빨간 내복 한벌 안 사주는 인색한 놈이 여친에겐 10만원짜리 속옷이라니.
괘씸한 마음인 든 저는, '입금자' 이름에 장난을 쳐서 돈을 보내고 문자를 날렸습니다.
"야! 돈 보냈다! 이게 형의 마음이다"
그러자 동생도 "ㅋㅋㅋ. 알았어. 접수했으" 문자를 보내더군요.
그리고 전 엄마가 시키신 일들을 마무리했죠.
그런데 몇일 후. 엄마가 "야. 책 한권 시켰더니, 어디 나무 자르러 갔대니?
굼벵이가 이고 와도 벌써 왔겠다" 짜증을 부리시기에 주문을 했던
기독교서적을 파는 홈페이지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입금확인도 안했더군요.
'제대로 고객만족센터를 발라주리라' 하며 첫 화면으로 간 순간.
눈에 걸리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지사항이었죠.
" 공지사항 1 : 김경숙 성함으로 입금하신 분을 찾습니다.
2. 박해선 성함으로 입금하신 분을 찾습니다.
3. '나도 망사팬티 사줘' 성함으로 입금하신 분을 찾습니다.
헉.. 저건 내가 동생놈한테 보냈던 이름인데 저게 왜 여기에?
전 명석한 두뇌로 곧 사태파악을 할 수 있었고,
일단 그 서점으로 전화를 걸어 사태수습을 했습니다.
"저....... 나도 망사팬티 사줘로 입금한 사람인데요....."
저를 사탄의 자식쯤으로 여기는 듯한 상담원에게 입금자를 확인시켜준 뒤
인터넷 뱅킹에 들어가, 그날 동생에게 입금한 후에 이체를 했던 곳들을 체크했죠.
"여보세요. ** 아파트 관리사무소입니다"
"아.. 여기 10동 707호인데요.. 그.. 나도 망사팬티 사줘로 입금한......."
"네. ** 우유배급소입니다"
"여기 10동 707호인데요, 나도 망사팬티 사줘로 입금한 사람......."
"**학습지입니다"
"저 박옥희 어린이 삼촌인데요, 나도 망사팬티........"
뭐 대부분 ".................. 아.................... 예에...................." 하거나
"아.. 그 망사팬티요? ㅋㅋㅋ" 하는 반응이더군요.
입금자 이름에 장난 한번 쳤다가, 바꾸는 걸 깜빡한 죄로
이게 무슨 개 망신인가 싶었지만 진땀을 뻘뻘 흘리며
한건 한건 해치워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인 먼 친척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죠.
도통 저를 못 떠올리시는 할아버지께 겨우 저를 기억하시게 한 후,
용건을 말씀드렸습니다.
"저...... 얼마전에 통장에 돈 입금되셨죠? 그... 뭐냐... 나도 망사팬티 사줘로 입금됐을텐데요...
그거 저희 어머니께서 부주 보내신 겁니다"
그러자 할아버지........ 한참을 침묵하시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더군요.
".......................................................................................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