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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크 트랙 하던 날...1부.
    작성자 : 내안의너 | 조회수 : 871 (2010-03-04 오전 12:06:15)




    #1- 대구백화점 근처
    학원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대구백화점 쪽으로 걸어나왔다.
    대구백화점 옆의 'LUCAS'매장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누가 왔나? 점점 가까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그 앞에 모인 사람들이 '꺄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매장 쇼윈도우에 있던 텔레비전 앞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던 것이었다.

    사람들-'꺄아... 우리가 금메달이야!!!'

    나- '난 또.. 연예인이나 와서 그런다고, 어차피 쇼트트랙은 금메달이 정해진 거 아니었나?'

    당연한 우승이라 여기며 백화점 지하에 내려가 먹을 것을 좀 사들고 올라왔다.
    지하철을 타고 쉬엄쉬엄 걸어서 사무실로 왔다.

    #2- 사무실..
    개학을 한 후에는 서너시까진 조용하다. 봄방학을 시작한 학교도 있지만 봄방학은 거의 방학도 아니다.
    늦게까지 학교에 붙잡혀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개학을 하면 우린 정말 일할 맛 난다. ^^;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입구 데스크에 은규오빠가 앉아 있었다.

    발렌타인날 그가 나에게 고백을 한 이후, 서먹해 질 것을 우려했던 우리의 관계는 내가 바로 다음날 사범대에서 완전히 망가져서 그에게 구조 당한 이후로는 거의 대세가 기울었다.
    직접 확인은 안 해 봤지만 아예 편안해져 버렸다고 해야 되나? 마치 오래 전부터 선후배로 지낸 것인 양..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 버린 듯 했다.
    둘 사이의 적절한 긴장감은 커녕 더 이상 그의 앞에서 도도한 척 해도 통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정말... 비극이다.

    두 번이나 나를 업었고, 게다가 그렇게 애들이 많은 오리엔테이션날 '정의의 기사'처럼 그가 나타나 과방까지 찾아가 '영인이를 내놓으라'고 선포를 한 이후.. 학교에서는 '영인선배한테 애인이 있었다, 그 동안 우리가 속았다', '예사로운 사이가 아니더라', '영인선배를 업고 다닌다더라-(우와... 그 정도야? 정말 좋아하나보다.. -그 무거운- 영인선배를 어떻게 업었대?..라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고 함..)', '껴안고 눈물까지 닦아주더라..'는 억측과 과장이 무성했고, 내가 가입한 단대 친목 까페 게시판은 승기의 '사범대 괴담.. 영인누나의 애인을 만나다..'라는 글이 올라온 이후.. '김영인, 이 발칙한 것..', '데려와라, 아니면 쳐들어간다', '정말 끝내줍니다요..' 등등의 리플들이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공지사항] 자진공개 하지 않을 경우 탈퇴처리 시켜버리겠다!!'는 협박 앞에서 '차라리 죽여주시옵소서(냉무)'라고 달랑 답변을 올려 놓은 후 '버르장머리'까지 운운하는 무수한 지탄과 함께, 이후로는 '[진상규명] 관련자 및 목격자들의 증언'이라는 글까지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의 입소문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얼떨결에 엮인다고 하더니 내가 정신을 안 차리면 딱 그꼴을 당하게 생겼다.
    그 이후 나는 마음에도 없던 '발신자표시서비스'까지 신청했다.

    나.... 학교에 수강신청 하러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ㅠㅠ
    그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아니, 어찌 보면 은근히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 날 밤에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학교에 있는 승기까지 불러내서 셋이서 술까지 마시며 '잘 부탁한다. 내가 천군만마를 얻었다.' 등등의 감언이설로 형철과 승기까지 녹여놨단다. 형철과 승기가 '형, 고마워요.. 영인이 누나 잘 부탁해요. 누나가 알고 보면.. 어쩌고.. 예전에.. 어쩌고.. 시시콜콜..'...나는 이 남자의 로비 앞에서 거의 할말을 잃었다. 이 녀석들을 언젠가 내 손으로 처단하겠노라고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

    그래도 한편으로는 나와 절친한 이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릴 줄 아는 그에게 후한 점수를 준 것도 사실이다. 애인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아서 갈등을 겪는 커플들도 많이 봤는데.. 이 남자한테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만약에, 만약에 우리가 정말 사귀게 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

    나- '안녕하세요? 점심 먹었어요?'

    그- '밥이 안넘어간다.'

    나- '왜요?'

    그- '쇼트트랙 봤나?'

    나- '이겼다며.. 오다가 그냥 들었는데.. 왜? 너무 좋아서 밥이 안넘어가요?'

    그가 나를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 '(내가 뭘 잘못했지?) 왜? 이기면 안되는 거에요?'

    그- '여자 말고...'

    나- '그럼요?'

    그- '김동성 실격패 당해서 금메달 박탈됐다.'

    나- '(버럭!!) 뭐라구요? 그게 무슨 소린데? 왜?'

    그- '하여튼 실격패 당해서 오노한테 금메달 갔다. 니 잘 왔다. 안 그래도 혼자 속 터져서 죽는 줄 알았다. 내하고 같이 열 좀 내자!!'

    나- '무슨 그런 경우가 다 있어요?'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실격패라니? 그게 뭔소리란 말인가?

    나- '어디 좀 봐요.'

    뉴스사이트에 접속해서 기사를 읽으니 테러도 이런 테러가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람?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문제의 과정을 동영상으로 돌려서 봤다.
    처음부터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문제의 그 장면만 봐도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했다.

    평소에 스포츠에는 관심도 없던 내가 새삼스럽게 열을 받고 있었다.
    다름 아닌 미국한테 힘의 논리에 밀려서 졌단다. 집단적인 사기극에 약소국가인 이유로 말려들어갔단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나는 경기에서 진 것과, 진 사유를 넘어서 미국이라는 조폭, 깡패국가의 패권 앞에서 치를 떨고 있었다.
    '악의 축'이 어쩌고 하더니.. 정작 '악의 핵'은 자기들이면서!!!

    나- '(분개..)왜 이런다는데? 지들 나라에서 한다고 이래도 되는거야?'

    뒷골이 당길 지경이었다. 밥이 안 넘어갈만 하구만..

    나- '(이보다 분할 수 없다!!) 그래서 이게 끝이에요?'

    그- '부당하다고 제소할거래.. 또 사이버 시위도 한대..'

    나- '이 지경으로 만들어서도 금메달 따 간 놈들이 제소한다고 돌려줄 것 같아요? 그 놈들이 어떤 놈인데.. 걔들은 미국이야..'

    그- '미국이면? 미국이라서 안된다고?'

    나- '(내 말을 어떻게 듣는 거야?) 그 놈들이 얼마나 악랄한 것들인데... 제소해봤자 미국놈들끼리 심판할 거 아니야.. 이게 말이 되는 거에요?'

    그- '다 때려치우고 엎어야 돼. 여기서 더 참가할 이유가 없어. 내가 개막식때 위령제니 뭐니 할 때부터 알아봤다.'

    나- '그런 것도 했었어요?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거에요? 와... 짜증나..어디 힘없는 놈들 서러워서 살겠나..'

    둘 다 열을 끝까지 받았다.
    아... 우리는 다른 관계를 논하기 이전에 한민족이 맞나보다.

    나- '지네들이 자빠뜨려서 이기면 당연한 거고.. 우린 반칙을 당해도 말도 못하는 거야?'

    그- '망할 놈의 **들.. 스케이트장 얼음을 다 갈아서 팥빙수를 해 먹여야 돼!!'

    민족정신이라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쳐지지 않는다는..
    우리는 새삼스런 동지애와 민족감정에 불타고 있었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나- '(분노로 이성을 잃음..)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순 없어!!!'

    그- '(사돈 남말 할 것도 없음) 그래!! 이런 썩을..'

    나- '오빠!! 우리도 홈페이지 다운시키는거 하자!!'

    그- '당연하지!! 내가 사이버시위용 프로그램 다 깔아놨다.'

    나- '(오호.. 당신.. 그랬군요..) 그래.. 서버 엎어버리자.
    1층에 있는 컴퓨터(11대)도 다 가동시켜 버려요!! 애들(?) 풀어~~~~!!!'

    아~~~~~~~~,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

    그- '(구국의 결단!!) 영인아!!'

    나- '(경외심..) 왜요?'

    그- '우리가 할 일이 생각났다.'

    나- '뭐?'

    그- '(비장함) 우리................. 빈 라덴 팬클럽에도 가입하자!!!'

    나- '?????????????? 무쉰 팬클럽?'

    그- '오/사/마/빈/라/덴/ 팬클럽!!!'

    아..생각하는 것 하고는.. 이 비장한 남자의 농담 같은 결의 앞에서 나는 할말을 잃었다.
    이미 그가 다음까페를 열어 '오사마 빈라덴'이라고 검색어를 치고 있었다.
    몇 개가 우르르 떴다. 회원수가 이미 2000명을 넘었다.
    세상에 이런 팬클럽도 있단 말이냐?
    하기사.. 여인천하의 '엄상궁' 팬클럽도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오~~~~.. 내 맘속에서 영롱히 빛나던 나의 폴라리스(?).. 오사마 빈라덴...

    그가 회원수가 가장 많은 두개의 까페를 열어서 살펴보더니..
    그나마 '취지와 의의(?)'가 우리에게 맞다고 생각되는 까페를 골랐다.

    선정기준은 무조건 미국을 반대하거나 맹목적으로 빈라덴을 찬양만 하면 안되고..
    새로운 시각에서 라덴을 재조명하고, 좀 더 저항의 논리가 합당한 까페를 선정했단다.
    거 참.. 이유 한번 거창하다.

    차례로 자기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하고, 떡~~하니 입성했다.
    우리는 이제 같은 팬클럽 회원이기까지 했다.
    하마터면 마음만 급해서 닉네임에 실명을 쓸 뻔 했다.

    나- '빈라덴이 여기(다음까페)도 올까요?'

    그- '미쳤냐? 토굴생활 한다던데.. 또 한글이 지원이 되야 접속도 하지..'

    나- '국제적인 팬클럽은 없을까?...약소민족끼리는 언어도 통일해야해.. 그래야 설움을 덜 당하지.'

    올림픽정신이라고 하더니...
    정말 모든 걸 초월해서 단결하는데 올림픽과 민족주의만큼 강한게 없는 것 같았다.

    그- '여기서 멈추면 안되지.'

    나- '또 뭘 하게요?'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뭐..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에라도 전화를 하는 걸까?

    이 남자... 상상을 초월하는 면이 있다.
    예전에 외국인친구가 다니던 학원에서 부당하게 해고 당했다고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항의서까지 게시판에 올리고 시교육감이며, 구청장, 대구시장한테 이메일까지 보내서 해결했던 사람이다.
    해결했다기 보다는 담당공무원이 우리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글 좀 지워달라고 권고를 가장한 협박을 하다가 오빠가 눈 깜짝도 하지 않자 결국 눈물로 호소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도 오빠는 '제대로 해결 안해주면 해결 될 때까지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아, 옆에 있던 우리의 간담까지 서늘하게 했던.. 말 그대로 '불의를 참지 못하는 비분강개'의 면모를 보여줬었다.
    그 이후로 용기인지 객기인지 모를 이 남자 앞에서 '온순해보인다'는 편견을 완전히 떨쳐버렸었다.
    그런 그가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이 아니라 빈라덴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한대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 '여보세요? 형!! 어디에요?'

    전화 저 쪽에서 뭐라고 대꾸를 했다.

    그- '형, daum 아이디하고 비밀번호 좀 불러줘봐요.'

    세상에.. 정훈선배한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런걸 왜 물어보냐'고 대꾸를 했겠지..

    그- '형, 빈라덴 까페에 가입해요. 우리는 다 가입했어요.'

    푸하하하하하.... 내가 옆에서 쓰러졌다.
    쇼트트랙이고 뭐고 간에 나는 그의 유치찬란한 행각 앞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그런데 정훈선배도 수준이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같이 일을 하나?
    둘이서 한동안 울분을 토하더니 나중에 꼭 테러할 때 동참하고 빈 라덴을 숨겨주자는 결의까지 하고 있었다.

    남자들의 전우애는 이토록 대단한 것이었던가..
    그가 정훈선배에게 닉네임은 뭘로 할거냐고 묻더니 전화를 끊고 아이디를 입력하더니 별표가 가득하게 비밀번호를 채워넣었다.

    오른편 상단의 '까페'를 클릭했더니 선배가 가입한 까페가 좍~~ 떴다.
    무심코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성인영화, 실시간 감상', '오빠!! 여기야..', '범죄심리사모임', '사이코계모임.'
    뜨아.....

    나- '정말 뭐야.. 뭘 이런데 다 들어가고 그래..'

    그- '남자들은 다 그래..'

    나- '(그렇다면..) 오빠도요?'

    그- '(흠칫..발뺌.) 나? 난.. 아니지..'

    나- '그럼 댁은 언니유?'

    그- '(긴장..) 아하하하.... (관심을 돌리려 함..) 빨리 가입시키자.'

    그가 까페를 찾아서 정훈선배까지 가입시켰다.

    나- '오빠.. 정말 대단하다....'

    그- '주연이한테도 전화해야 되는데.. 일단 내려가자.'

    나- '어디요?'

    그- 1층..

    그가 몇 개의 사이트를 적은 메모지를 들고 일어섰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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